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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빛 차체컬러가 포르토피노의 바다를 닮았다

이탈리아에 있다는 항구도시 포르토피노. 마치 그곳에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페라리가 내놓은 신형 GT 스파이더 '포르토피노 M'은 아름답고 평화롭다는 포르토피노, 딱 그 이름에 걸맞은 페라리다.

페라리는 지난 수년 동안 GT 스파이더 모델을 만들어 왔다. 2008년 선보인 캘리포니아를 통해 캘리포니아 30, 캘리포니아 T, 캘리포니아 T 핸들링 스페치알레(HS) 등 다양한 파생 모델을 만들었고 2017년에는 후속작인 포르토피노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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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요트가 된 듯한 페라리 포르토피노 M

당시 포르토피노는 전작 대비 완전히 새로워진 디자인과 가벼워진 차체, 더욱 강력한 파워트레인으로 페라리 GT 스파이더 중 가장 성공작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런 포르토피노가 '변화(Modificata)'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돌아왔다. 완벽할 것만 같던 차에 어떤 변화가 필요했던 것일까. 국내시장에 데뷔한 포르토피노 M을 용인 스피드웨이 서킷과 일반국도에서 짧게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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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포르토피노 M

/ 혁신의 재시작

부분변경 모델인 만큼 디자인 변화는 크지 않다. 그런데 전작보다 훨씬 멋진 느낌이다. 알고 보니 범퍼에 작지만 큰 변화가 있다. 우선, 범퍼 아래쪽 공기흡입구 주변에 더욱 입체감이 높은 디자인을 적용했다.

앞 펜더에서 시작해 문까지 이어지는 공기 배출구 디자인은 예나 지금이나 인상적이지만, 포르토피노 M은 해당 부분이 휠 하우스를 뚫고 전면 범퍼까지 진출했다. 덕분에 훨씬 날카롭고 역동적인 실루엣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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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포르토피노(위)와 포르토피노 M(아래)

실내 레이아웃 역시 익숙한(?) 그대로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포르토피노 배지가 대시보드 하단에서 상단으로 옮겨왔을 뿐이다. 아, 붉은색 M 이니셜이 추가됐군. 시승차는 카본 인테리어 업그레이드 패키지가 적용됐다. 덕분에 운전대 상단에서 RPM을 확인할 수도 있다.

페라리는 기존 모델 성능을 상당부분 개선했을 때 M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개인적으로 M이라는 수식어가 썩 와닿지는 않는다. 이 신형 포르토피노에게는 '변화'보다 '발전'이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말 그대로 외형 변화보다는 내실을 더 잘 다졌기 때문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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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페라리 인테리어

포르토피노 M은 2016년부터 4년 연속 올해의 엔진상을 수상한 V8 터보 엔진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러나 전작과 동일한 3,855cc 배기량을 갖췄음에도 7,500rpm에서 20마력 높아진 620마력을 뿜어낸다.

쭉 뻗은 트랙 직선주로에서 V8 엔진이 뿜어내는 엄청난 힘은 생각보다 부드럽게 다가온다. 분명 속도계가 순식간에 치솟지만 폭발적이라기보다는 우아한 느낌이다.

본디 출력상승은 힘이 부족한 차에게 간절한 법인데, 원래부터 힘이 넘치는 경주마다 보니 20마력이라는 힘이 추가됐든 말았든 크게 상관할 필요가 없다.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원하는만큼 가속페달을 밟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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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송풍구는 전체가 움직인다

오히려 출력보다 인상적인 부분은 변속기와의 조합이다. 포르토피노 M은 기존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 대신 완전히 새롭게 설계한 8단 습식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품었다.

듀얼 클러치답게 번개같은 변속을 보여주지만 자동변속기만큼이나 부드러운 변속 느낌이 엔진이 주는 우아한 가속 느낌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스포티함을 추구하는 모델들은 변속충격을 인위적으로 연출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포르토피노 M은 억지스럽게 스포티함을 연출하지 않는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부드러움을 자연스레 살려 운전자가 여유를 만끽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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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피노 M의 기어버튼

이번에 탑재된 8단 습식 듀얼 클러치 변속기는 클러치 모듈이 기존보다 약 20% 작아진 반면, 토크 전달력은 35% 향상됐다. ECU와 변속기 소프트웨어도 개선해 더욱 빠르고 매끄러운 변속을 제공한다.

페라리 엔지니어들은 특히 기어변환 전략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덕분에 연료효율 개선과 배기가스 저감은 물론, 효과적인 클러치 토크제어 기술을 통해 도심 속 저속주행 환경에서도 한결 수월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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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본 옵션이 적용된 스티어링 휠

이날 시승은 인스트럭터가 운전하는 포르토피노 M에 동승해 서킷을 체험할 수 있는 '택시타임'도 진행됐다. 서킷에서의 택시타임은 정말 오랜만이다. 공교롭게도 마지막으로 택시타임을 즐겼던 모델이 람보르기니 우라칸 EVO였던 것 같다.

당시 우라칸 EVO를 동승했을 때는 너무 폭력적인 느낌 때문에 '미친 황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포르토피노 M은 그때와 정반대 쪽 끄트머리쯤에 가있는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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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을 오픈한 페라리 포르토피노 M

서킷을 주행하는 내내 우아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운다. 코너를 과감히 공략하고 직선주로를 빠르게 달려나가는 퍼포먼스가 놀랍지만 전혀 우악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쉬프트 패들을 눌러 변속하는 감각부터 가속페달을 밟아 RPM을 올리며 달려나가는 모든 과정이 한결같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트랙을 달리는 슈퍼카를 상상할 때 우리들은 흔히 폭력적이고 과시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페라리는 포르토피노 M을 통해 이와 전혀 다른 해답을 제시하고 있었다.

폭력적인 성능을 우아하게 처리하는 이 놀라운 능력은 포르토피노 M이 일상용 GT 스파이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트랙에서조차 떠올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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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패들쉬프트

코너를 칼같이 돌아나가던 인스트럭터가 차체를 미끄러뜨리기 시작했다. 옆으로 미끄러지던 차체는 카운터 스티어를 조금만 넣어도 원래 자세로 돌아와 달려나간다. '페라리 다이내믹 인핸서(FDE)' 덕분이다.

레이스 모드에서만 작동하는 FDE는 '주행 안정장치(ESC)'와는 다른 개념이며 측면으로 미끄러지는 움직임을 제어한다. 덕분에 운전자는 차량 움직임을 보다 쉽게 예측하고 제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카운터 스티어를 잘 다룰 수 있는 운전자라면, 차체를 옆으로 미끄러뜨리며 코너를 빠져나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모터스포츠에 기인한 페라리 정신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포르토피노 M이 우아하고 부드럽다지만, 페라리는 페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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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포르토피노 M

/ 평범한 일상의 재발견

아름다운 라인의 지붕을 열어젖히고 감미로운 배기음을 들으며 도로 위에서 편안함을 만끽하는 것. 포르토피노 M은 주행감성에 있어 추구하는 바가 확실하다. 그리고 페라리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몇 가지 장비를 더했다.

우선, 안락한 오픈 에어링을 위해 포르토피노 M에는 마그네슘 프레임 시트가 탑재됐다. 마그네슘 프레임 시트는 신체가 닿는 부위별로 푹신함을 달리했을 뿐만 아니라 목부분에 열선을 적용해 공기 온도와 차량 속도에 따라 온도를 지속 조절한다.

오픈 에어링의 또 다른 즐거움은 배기음이다. 이를 위해 포르토피노 M은 기존 배기 시스템의 전체 구조를 재설계했다. 새로운 배기 시스템은 과감하게 양쪽 소음기를 모두 없애버렸다. 대신, 바이패스 밸브를 타원형으로 가공함으로써 배기관 내 압력을 줄여 소리를 증폭하고 균일한 배기음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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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S 기능 조작부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사실, 페라리 운전대를 잡고 있는데 운전이 귀찮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배려를 굳이 사양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포르토피노 M은 스톱 앤 고를 포함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잠재적 충돌 위험을 경고해 충격을 완화해 주는 예측 긴급 제동 시스템, 사각지대 모니터링, 차선 이탈 경고, 자동 하이빔, 3D 디스플레이 서라운드 뷰, 후측방 경고 등을 옵션으로 제공한다. 이제 보니 공짜 배려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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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포르토피노 M

용인 스피드웨이 주변 도로는 노면 상태가 매우 안 좋다. 굽이진 길은 포장이 갈라지거나 파인 부분도 많고 험악한 과속방지턱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좋지 않은 노면을 달리자니 주행모드에 따른 승차감 변화가 궁금했다. 부드러웠던 포르토피노 M은 주행모드에 따라 어디까지 단단해질까. 마네티노 스위치로 시선을 옮기니 레이스(RACE)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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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티노 스위치

사실 이전 모델인 포르토피노에는 레이스 모드가 없었다. 그동안 페라리는 GT 스파이더 모델에 레이스 모드를 지원하지 않았다. '이건 여유로운 GT 모델이니까 조급하게 레이스 할 필요없다'라는 페라리의 고집이었을까.

아무튼 포르토피노 M에는 페라리 GT 스파이더 라인업 최초로 마네티노 스위치에 레이스 모드가 추가됐다. 새롭게 추가된 기능은 당연히 즐겨주는 것이 인지상정.

웨트, 컴포트, 스포츠, 레이스, ESC-OFF 등 총 다섯 가지를 지원하는 마네티노 스위치를 옮겨가면 한 단계가 변할 때마다 눈에 띄게 변하는 태도를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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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포르토피노 M

승차감 역시 단계마다 눈에 띄게 달라진다. 다만, 승차감이 점점 단단해지는 중에도 부드러움이라는 기본 가치는 절대 놓지 않는다.

코너를 돌아나가는데 갑작스레 우악스러운 방지턱이 나타났다. 속도를 많이 줄이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버렸다.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승차감이 단단한데 부드럽다. 딱딱하지 않고 우아하다. 이 느낌을 어떻게 글로 설명할 수 있을까.

고작 한 시간. 포르토피노 M을 느끼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운전석에서 내리는 게 아쉬웠던 이유는 그 때문이었을까. 사실 열 시간을 운전했어도 아쉬운 마음은 같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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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설레게 하는 페라리 로고

/ 어쩌면 변화란

페라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이탈리아 공장 가동을 한동안 멈춰야 했었다. 포르토피노 M은 지난 5월, 이탈리아 공장 가동 재개 이후 선보이는 첫 번째 모델이다.

페라리는 포르토피노 M을 '평범한 일상'의 재발견을 상징하는 모델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우리도 코로나19 이후 많은 부분에서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렸다.

그 속에서 평범했던 일상이 얼마나 감사하고 위대했던 것인지 깨달아가고 있다. 하물며 이런 멋진 GT 스파이더와 함께라면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특별함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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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포르토피노 M

포르토피노 M은 평범한 일상을 함께 하기 위해 많은 것을 배려한 페라리다. 우악스러울 수 있는 퍼포먼스를 우아하게 표현하고 스포티함을 드러낼지언정 부드러움이라는 기본 가치를 절대 놓지 않는다.

상상해보라. 운전자는 그저 열린 지붕을 통해 바람을 만끽하고 감미로운 배기음을 즐기면 된다. 밟으면 밟는 대로 돌리면 돌리는 대로 언제나 우아하게 달려나간다. 남들의 부러운 시선 정도는 덤이 되겠다.

그러면 어느 지점에선가 평범하기 짝이 없던 일상을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포르토피노 M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했던 변화는 단순히 디자인이나 퍼포먼스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미지 : 페라리

박지훈 jihoon.park@carla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