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트로포르테. 럭셔리 이탈리안 스포츠카 브랜드의 기함 세단이지만, 2013년에 데뷔한 노장이다. 과거 이미지는 ‘와~’였지만, 지금은 ‘음…’이 된 콰트로포르테는 한물 간 인기가수처럼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중이다. 어쩌면 내가 먼저 삐딱한 시선으로 얘기를 시작해버려 ‘악플러’들이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처음부터 콰트로포르테에 대한 이미지가 이랬던 건 아니다. 5.2미터가 넘는 늘씬한 몸매와 2억에 육박하는 몸값, 마세라티 삼지창 엠블럼이 주는 후광은 일반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도 남았다. 하지만 완전 신차 못지않은 페이스리프트가 줄을 잇고 강산이 변하는데 일 년도 멀다 하는 요즘, 8년의 시간은 콰트로포르테의 영광을 시나브로 퇴색시켰다.

오랜만에 만난 콰트로포르테는 여전히 매혹적이었다. 매서운 눈매와 날카로운 콧날은 대형 세단의 얼굴에 스포츠카의 역동성을 담았다. 긴 보닛과 휠베이스, 정직하게 자리한 트렁크가 정통 3박스 후륜구동(시승차인 S Q4는 사륜구동) 구성에 스며들었다. 창문 조각을 최소화한 DLO(옆 창문 형상)는 깔끔하며, 물 흐르듯 과하지 않은 캐릭터라인이 리어 펜더 볼륨을 은근히 강조한다.

최신 유행을 걸쳐야만 ‘패피’가 아니듯, 콰트로포르테의 외모에선 딱 떨어지는 정통 슈트를 차려입은 신사의 멋이 묻어난다. 온갖 화려한 LED 램프와 번적거리는 크롬 장식, 휘고 접고 꺾은 면으로 치장한 최신 모델과는 다른 멋이다.

프레임리스 도어도 출신 성분을 알 수 있는 요소다. 세단이건 SUV건 마세라티에게 창틀 따위는 군더더기에 불과하니까. 실내에선 플라스틱과 화학약품 냄새를 맡을 수 없다. 가죽 냄새 아니 향기가 코끝에 맴돈다. 브랜드마다 특유의 새 차 냄새가 있고 고급차일수록 덜 불쾌한데, 마세라티는 가죽 향이 난다.

가죽 얘기가 나온 김에, 시승차는 ‘펠레티스타 에디션’이다. 그냥 나무와 가죽을 쓴 일반 그란루쏘와 달리 대시보드와 시트를 펠레테스타 소재로 치장했다. 마세라티와 꾸준히 협업하고 있는 명품 패션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에서 얇은 나파가죽을 띠로 자른 뒤 이를 촘촘하게 엮어서 만들었단다.

굳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수 있지만, 원래 쓸 데 없고 사치스러울수록 명품인 법이다. 그러니까 롤스로이스도 고지대에서 키워 모기 물리지 않은 소의 가죽을 사용하고, 실내 나무 패널의 무늬를 좌우 대칭으로 만들겠지. 아무튼 콰트로포르테의 펠레테스타 마감은 남다른 고급스러움을 자랑했으며, 마세라티 아닌 다른 어떤 브랜드에서도 본 적 없어 특별함을 더했다.

그런데! 이 신사분, 겉옷은 제대로 입으셨는데 속옷이 좀 구식이다. 구석구석 버튼과 스위치, 디스플레이의 크기와 그래픽,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기타 편의장비 등 어딜 봐도 한 번쯤 크게 갈아엎을 시기가 지났다. 명품 케이스를 씌운 구형 스마트폰이랄까? 마세라티에 대한 환상이나 차 값까지 생각하면 아쉬움은 더 커진다.

이건 콰트로포르테나 마세라티만의 문제가 아니다. 마세라티가 속한 FCA(이제는 PSA 그룹과 손잡고 스텔란티스가 됐다)의 탓이 크다. 마세라티처럼 한 해 판매량이 2만 대(2020년 기준 약 1,7000대) 정도의 규모라면 모기업에서 만든 시스템을 가져다 조금 손봐서 얹기 마련인데, 위에서 뭐 제대로 해준 게 없으니 답답할 터다.

슈퍼리치 수집가들이 탐내는 극소수 한정 생산, 초고가 모델들이야 세월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도록 일부러 기본 인포테인먼트 장비만 넣는다던데, 그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독3사’로 대표되는 일반 프리미엄 브랜드들처럼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최첨단 시스템을 품은 것도 아니고. 럭셔리와 프리미엄 사이 어딘가에서 모기업의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한 채 100년 넘는 역사와 명품 고성능 이미지를 낭비하고 있는 듯해 아쉬움이 진하다.

씁쓸한 기분으로 시동을 건다. 콰트로포르테가 웅장한 배기음과 함께 기지개를 켠다. 내 입가엔 슬며시 미소가 번지고 씁쓸함이 조금 누그러진다. ‘역시!’ 마세라티는 마세라티다. 그동안 여러 마세라티를 시승하며 소리가 인상적이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달리면 달릴수록 소리에 대한 만족감은 점점 커진다. 울림의 크기는 보통의 4기통 차들이 넘볼 수 없는 경지고, 그렇다고 슈퍼카처럼 천지를 울리는 위압감을 주지도 않는다. 나지막한 음색이 RPM에 맞춰 톤을 올리다 금속 시프트패들을 튕기는 순간 배기압을 토하며 다음 소절로 이어진다. 가속과 변속이 운전이라기보다 악기 연주 같다.

마세라티가 설계하고 페라리에서 조립한 3리터 V6 트윈터보 엔진은 회전이 활기차다. 짊어진 껍데기가 점잖은 대형 세단이라도, 출신 가문의 특성은 어디 가지 않았다. 제원만 놓고 보면 어마어마할 것까진 없는데도, 여느 동급 엔진보다 한껏 날이 섰다. 밟으면 밟을수록 생기가 살아나며 430마력, 59.2kgm를 주저 없이 쏟아낸다.

엔진의 활기를 그대로 바퀴까지 이어주는 역할은 ZF 8단 자동변속기가 맡았다. ZF 8단 자동변속기의 성능이야 익히 알려졌으니 패스. 명불허전! 게다가 Q4 사륜구동 시스템을 통해 네 바퀴에 힘을 나눠 실어, 어지간히 오른발을 급 조작해도 안정감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하체도 즐거운 달리기에 한몫한다. 전륜 더블위시본, 후륜 멀티링크로 ‘좀 달린다’는 차들의 일반적인 구성이고, 마세라티에서 ‘스카이훅’이라고 부르는 가변 댐핑 시스템이 들어갔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예상보다 낭창낭창하다. 아무리 스포츠 세단이고, 마세라티라도 동승자 심기가 중요한 고급 대형 세단의 본분을 지킨 결과다.

그런데! 이 신사분, 외모만 말쑥한 줄 알았더니 하체 운동도 열심히 했나 보다. 편안한 승차감을 충분히 챙긴 와중에 스포츠성을 잃지 않았더라. 잔진동은 거르고 상하 충격은 슬쩍 삼키면서도, 앞뒤 좌우 기울어짐은 용케 버텨낸다. 덕분에 편안하고 기분 좋게, 동시에 빠르게 달리기가 가능하다. 설마 콰트로포르테로 브레이크 부러져라 감속하며 코너에 차를 집어던지는 사람은 없겠지?

활기찬 엔진과, 황홀한 사운드, 부드럽지만 팽팽한 하체가 선사하는 달리기는 힐링이 따로 없었다. 이만큼 큰 세단으로 이 정도의 즐거움을 주는 차는 흔치 않다. ‘그래, 이 맛에 콰트로포르테 타는구나!’ 출발하며 지은 미소는 여전히 입가에 남아있었다. 휴게소에 들러 시동을 끄기 전까지는.

차를 세우고 가만히 앉아있자니, 아까 말한 구식 실내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애써 위안 삼자면, 상대적으로 덜 좋고 덜 화려할 뿐, 콰트로포르테도 있을 건 다 있다. 안드로이드 오토와 애플 카플레이 모두 지원하고, 오디오는 무려 1,280W 바우어스 앤 윌킨스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이다. 기본적인 ADAS도 챙겼다. 적어도 무엇이 없어서 불편하지는 않다.

슈트를 차려입은 이탈리아 중년 신사의 차로는 콰트로포르테가 제격이겠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그는 평소에 몸매 관리도 열심이겠지. 주말이면 콰트로포르테를 타고 가족이나 연인과 드라이브도 즐길 테고. 부디 이런 그가 지인의 새 고급 세단을 보며 배 아파하지 않도록 하루빨리 신모델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원래 콰트로포르테가 어디 가서 꿀릴 차는 아니었으니.

이광환 carguy@carla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