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무심코 횡단보도를 건너다 다가오는 자동차에 놀란 사람이 적잖이 있을 테다. 고개를 돌려보면 보행 신호등은 파란불이 깜박인다. 자동차 운전자는 미처 파란불을 확인하지 못한 것에 미안함을 표시하며 손을 들어 올리고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눈빛을 육두문자를 날린다. 하루에도 몇 번 마주치는 일상이다.

통행량이 적거나 아주 짧은 건널목에선 보행 신호등이 없다. 그럴 때면 좌, 우로 연신 고개를 휘저으며 건넌다. 내 발은 이미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달려오는 자동차는 멈출 기미가 안 보인다. 순간적으로 몸이 경직돼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 이 역시 일상에서 매번 마주치는 일이다.

도로교통법에선 모든 차의 운전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에는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주지 아니하도록 그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정지하도록 규정한다. ‘사람이 보이면 일단 멈춤!’ 이건 누구나 한 번쯤 보고나 들은 문구가 아니던가?

실제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올해 12월 7,2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2.1%가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의무 규정을 알고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74.8%는 가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의무 규정을 잘 지키고 있다고 답하기까지 했다. 특히, 나를 경직되게 만드는 운전자는 83.1%가 잘 지키고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왜 나는 항상 경직되는 일상을 마주할까?

운전자가 아닌 보행자 입장에서 보면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의무 규정이 준수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보행자가 인식한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의무 규정은 54.5%만 지켜지고 있다고 느낀다. 두 번 건너면 한번 꼴로 몸이 경직된다는 얘기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 거짓말의 실체는 8월에 조사한 결과로 증명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이미 8월에 보행자 횡단 안전도 실험을 했다. 무신호 횡단보도에서 80회 횡단을 시도했는데 운전자가 정차한 경우는 고작 9회였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제한속도 30km/h 도로와 50km/h 도로에서 각각 40회씩 진행했고 그중 절반은 보행자가 운전자에게 횡단 의사를 건넸다. 먼저 30km/h 도로에서 20회 시도, 횡단 의사를 건네지 않았을 때 운전자가 정차한 횟수는 2회다. 비율로 따지면 10%다. 마찬가지로 횡단 의사를 건네고 20회 실험했을 땐 조금 늘어난 6회, 30%의 비율을 보였다. 

그렇다면 50km/h 도로에서는 어땠을까? 횡단 의사를 건네지 않고 20회 진행했을 때 정차 횟수는 0회, 누구도 양보하지 않았다. 의사 표시를 했다면 달라졌을까? 조금 달라졌다. 20회 시도 중 1회 정차했다. 정차 비율 5%다. 총 80회 시도 중 실제 정차 비율은 고작 11.3%다. 83.1%도 아니고 54.5%도 아니었다. 무신호 횡단보도에서 우리가 받는 보호는 고작 11.3%다.

김상혁 cardyn@carla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