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의 삶이란 참 피곤하기 그지없다. 온전한 내 시간이란 걸 갖기가 도통 쉽지 않으니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온갖 전화와 메일, 메시지가 날아드니 말이다. 그중 입금 알림 같은 건 마스크 쓰지 않은 행인만큼 보기 힘들고, 상당수가 스팸이거나 직장 상사다.

완벽한 휴식이란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른다. 휴대전화도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는 곳이 아니라면. 가만, 그래도 문제다. 그런 곳에선 충분한 휴식에 앞서 심심함에 내가 먼저 질식할 수 있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현대인이다.

그래 어차피 얽매여있을 영혼, 몸이라도 자유를 찾아 옮기는 곳이 카페다. 달달한 음악이 고막을 어루만지고, 쌉쌀한 커피는 목젖을 적신다. 내 삶은 비극일지라도, 희극 속 등장인물처럼 보이는 생면부지 타인들과 섞여 있으면 어쩐지 중화되는 듯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망할 바이러스의 기세는 꺾일 줄 몰랐고, 급기야 아예 카페에 앉아 있을 수조차 없게 됐다. 디지털 유목민의 단골 초원마저 앗아간 셈이다. 카페 아닌 갈 곳, 이제 그 어데란 말인가!

고민 끝에 출장 아닌 출장을 떠나기로 했다. 출장지는 경기도 모처 저수지 옆, 업무 공간은 쉐보레 트래버스다. 같이 갈 동료 기자들을 몇 모았다. 그들의 처지도 나와 다를 바 없었기에, 다들 반기는 눈치였다.

트래버스를 고른 건 순전히 공간 때문이었다. 트래버스는 2019년 여름 출시 당시, 현대 펠리세이드, 쌍용 G4 렉스턴과 함께 대한민국 대형 SUV 시장을 놓고 자웅을 겨뤘다. 물론 최종 승자는 펠리세이드였지만, 덩치와 공간만큼은 트래버스가 우세했다. 특히 2-3열 공간은 ‘미국차’ 다운 스케일을 자랑했다.

제원표만 봐도 수치상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전체 길이는 펠리세이드가 4980, 렉스턴이 4850, 트래버스는 무려 5200mm다. 트래버스 혼자 5미터가 넘는다. 실내 공간과 좀 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휠베이스를 보자. 펠리세이드가 2900, 렉스턴이 2865, 트래버스는 3073mm다. 역시 혼자 3m 이상이다.

놀러 온 게 아니니 일이나 해야지.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2열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앞서 말한 치수의 우위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머리, 어깨, 무릎, 발 어디서도 좁다는 느낌은 없다. 자세 잡고, 노트북 펴고, 꼼지락거리다 보면 공간의 여유가 곧 마음의 여유임을 깨닫는다. 똑같은 행위를 작은 차에서 했다면 트래버스보다 훨씬 빨리 짜증 게이지가 찼을 터다.

트래버스의 공간은 넓기만 한 게 아니다. 여기저기 파인 수납공간은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정리하기(혹은 쑤셔두기) 좋고, 센터터널 없이 평평한 바닥은 발들에게 자유를 준다. 노트북이나 휴대전화가 꼬르륵거리면 센터콘솔 뒤 230V 콘센트와 USB 단자에 물리면 해결이다. 카페가 별로 부럽지 않은 업무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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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사무실

노트북 자판을 토닥이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문다. ‘수면 위로 지는 노을은 서울 시내 빌딩 사이로 지던 것과 다르구나’ 좀 더 붉고 보드라우며 훨씬 평온하다. 일하다 말고 느끼는 캠핑의 운치가 색다르다. 잠시 한눈파는 사이, 떨어지는 해와 함께 근무 의욕도 사라졌다. 그냥 영화나 봐야겠다.

이럴 줄 알고 챙겨온 프로젝터를 노트북에 물렸다. 해치 도어 뒤로 적당히 스크린을 펼치니 자동차극장이 따로 없다. 해도 다 졌겠다 밝기는 충분하다. 2열 시트를 눕히면 트렁크 바닥과 완전히 평평해져서 침대처럼 누워서도 볼 수있다. 요즘 자동차극장이 주목받는다던데, 이 또한 ‘나 홀로 자동차극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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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자동차극장

일도 했고, 영화도 봤으니 이제 퇴근해야지. 이 정도면 ‘훌쩍’ 아니고 ‘홀짝’ 떠나온, 막간의 일탈이다. 거창한 계획도, 바리바리 준비물도 필요 없다. 오늘 출장은 마치 오아시스 같았다. 초원 잃고 떠돌던 유목민이 우연히 찾은 오아시스.

코로나가 완전히 없어지면 나는 다시 카페를 찾아다니겠지. 그러다 문득 오늘을 기억하며 또 와보련다. 그때도 트래버스처럼 넓고 크고 편한 차를 타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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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부터 대시보드까지 기~인 짐도 실을 수 있다

이광환 kwanghwan.lee@carla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