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캠핑이 대세다. 어쩌면 이미 한참 전부터 인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난 ‘그 돈이면 호텔 가지’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최근, 이런 나조차도 지인들 따라 수차례 캠핑을 다녀왔다. 휴일이면 캠핑장 예약이 힘들고, 관련 박람회에 사람들이 몰리는 걸 보면서 확실히 대세임을 느낀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흉흉함에 지쳐가던 사람들이 밖으로, 자연으로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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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RS, 이비자 블루 / 중앙: 액티브, 진저 오렌지 / 우: RS, 아가타 레드

남들 다 가는 캠핑, 나도 가고 싶긴 한데 그놈의 ‘귀차니즘’이 발목을 잡는다. 오만가지 장비 싸짊어지고, 자리 펴고, 텐트 치고, 다음날이면 또 접어야 하는 과정이 보통 일은 아니다. 집에 돌아와도 끝이 아니다. 말끔히 닦고 말려서 보관까지 해야 한다. ‘어휴~’ 진정한 캠핑족이라면 이 과정 하나하나를 온전히 즐기는 자일 터다.

며칠 전 ‘차박’을 다녀왔다. 나 같은 귀차니스트들에게 딱 맞는 캠핑 방법이 바로 차박 아닐까? 차박 마니아들 입장에선, 귀찮아서라기 보다 간편해서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이유야 어찌 됐건, 차박이 편한 건 엄연한 사실. ‘여기다’ 싶은 곳에 주차하면 그만이다. 땅을 평평하게 고를 까닭도, 낑낑대며 텐트 치는 수고도 필요 없다. 멈춘 곳이 캠핑장이요, 차가 곧 텐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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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 스노우 화이트 펄

이번 차박 여행의 동반자는 트레일블레이저다. 이미 카랩 영상과 시승기를 통해 수차례 경험했기에 차 자체가 새로울 건 없었다. 차박에도 쓸만한 지가 궁금했을 뿐.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게 캠핑의 묘미이니 전천후 주행성능이 알고 싶었고, 차가 숙소를 대신하는 만큼 공간이 중요해 보였다.

챙겨간 짐은 단출했다. 여름용 침낭과 조명, 간이 의자, 차창에 씌울 모기장, 간단한 조리도구 정도가 전부였다. 사실 이 정도도 아주 적은 건 아니지만, 텐트만 빠져도 차이가 크다. 텐트가 없으니 바닥에 깔 방수포도 필요 없다.

목적지는 수풀 사이 좁다란 길을 지나야 했다. 대형 SUV라면 부담스러웠겠지만, 너비 1,810mm(아반떼는 1,825mm)의 트레일블레이저는 복잡한 도심과 같이 요리조리 잘도 지났다. 내가 평소 소형차를 좋아하는 이유다. 아, 물론 이따 밤에 자면서 허리를 접고 몸을 구겨야 한다면 ‘소형차가 차박에 적합하지 않은 이유’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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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럽다 싶으면 AWD 꾹

물기 머금은 풀과 진흙 뒤섞인 바닥은 미끄러웠다. 그냥 살살 지날 땐 별문제가 없었지만, 경사로에 섰다가 출발할 땐 앞바퀴가 헛돌기 일쑤였다. 이럴 땐 기어노브 앞 AWD 버튼을 눌러 네 바퀴 모두에 엔진 힘을 전달하면 된다. 다행히 부드럽게 탈출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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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사로잡는 이비자 블루 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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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블랙과 아가타 레드의 조화가 강렬하다

앞뒤 구동력 배분을 스스로 실시간 조절하는 차들도 있지만, 이렇게 운전자가 임의로 전륜구동과 후륜구동을 전환하는 방식도 나쁘지 않다. 트레일블레이저처럼 100마력 중반의 출력이라면 마른 포장도로에서 앞바퀴만으로도 충분히 힘을 노면에 전달할 수 있으니까. 평소엔 쓸데없이 뒷바퀴까지 굴리느라 연비 떨어뜨리지 않아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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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로드에 더 잘 어울리는 액티브

도로포장률이 높고, 눈도 점점 내리지 않는 데다, 그나마도 제설이 비교적 잘 이루어지는 우리나라에서 사륜구동 시스템이 얼마나 필요하겠느냐 반문할 수 있다. 괜히 더 무겁고 연비만 안 좋아져서 싫다고 할 수도 있다. 시내 출퇴근만 한다면 특히. 그래서 일부 도심형 SUV들이 전륜구동으로만 나오는 것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순간, 한 번만 효과를 봐도 절실히 고마운 게 사륜구동 시스템이다. 이건 얼마나 빨리 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갈 수 있느냐 아예 움직이지 못하느냐의 문제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날처럼 자연 속으로 한 걸음 다가서는 날이라면 사륜구동 시스템은 필수다.

호숫가에 차를 세우고 나니 비가 한두 방울 내리기 시작했다. 며칠 전 햇볕 쨍한 날 촬영하다 타죽을 뻔했던 기억이 남아있던 터라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짐을 푼 뒤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셨고, 그 사이 수면에는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시나브로 굵어진 빗방울은 우리 일행을 타프(그늘막) 안으로 옹기종기 몰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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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에 '불멍'이 빠질 수 없지

밤늦도록 이어진 ‘차쟁이’들의 대화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자정이 훌쩍 지나서야 차 안으로 입장. 여전히 내리는 비 탓인지 차 안이 더욱 아늑하게 느껴졌다. 자충매트(후~후~ 불지 않아도 부풀어 오른다. 신기하다) 위로 몸을 누이니 얼추 취침 자세가 나온다. 앞으로 확 젖혀지는 2열 시트 등받이 덕에 바닥도 ‘거의’ 평평하다.

최적의 자세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꼼지락거리다 보니 셀토스(1,605mm/18인치 기준)나 XM3(1,570mm)보다 큰 트레일블레이저(1,660mm)의 키가 고마웠다. 머리 공간과 거주성의 연관성을 확실히 깨닫게 되더라.

한 가지 아쉬운 건, 1열 동승석 시트다. 작년 LA오토쇼에서 만났던 트레일블레이저는 1열 동승석 등받이를 완전히 앞으로 접을 수 있었는데, 국내는 빠졌다. 긴 짐을 실을 때나 유용할 줄 알았는데, 차박에도 큰 도움 주겠다. 경쟁 모델엔 잘 없는 기능이니, 연식변경 때 꼭 넣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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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풀' 파노라마 선루프

밤새 내린 비 덕분인지 덥지 않게 잘 잤다. 부스스 눈 뜨니 머리 위 선루프에 맺힌 빗방울이 아침햇살을 머금었다. 트렁크 해치를 열자 발끝 호수에 건너편 산이 비치고, 그 산 정상엔 구름이 걸려있다. 잠시나마 ‘한강뷰’ 아파트가 부럽지 않다. 눈곱도 떼지 않고 잠시 경치를 즐길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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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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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짐 꺼내고 넣다 보면 전동 트렁크 유무는 하늘과 땅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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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쓰임새가 많은 1열 시트 아래 수납공간

사실 캠핑의 진짜 재미는 첫째 날이 거의 다 아닐까? 둘째 날 햇살이 정수리를 데우자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흐른다. 뚝딱 짐 챙겨 고속도로에 트레일블레이저를 올렸다. 그동안 여러 차례 트레일블레이저를 타면서 족히 1,000km 넘게 달렸지만, 항상 특유의 짱짱함이 큰 만족감을 준다. 도시에서도 자연에서도, 운전 중에도 심지어 잘 때도 제 몫을 톡톡히 했다.

빨리 돌아가 말끔히 샤워하고 싶은 마음에 발길을 재촉한다. 짐은 가볍고, 차는 생생하며, 마음은 맑았다.

이광환 carguy@carla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