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자락, 듬성듬성 눈 쌓인 강원도로 향했다. 새 단장한 뉴 디스커버리 스포츠를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올 겨우내 서울에선 제대로 된 눈을 볼 수 없었는데, 그래도 강원도는 달랐다. 성난 산세와 희끗희끗한 눈을 배경으로 선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말쑥한 외모 뒤에 숨겨왔던 오프로드 전공자의 내공을 뽐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2015년 국내 처음 공개됐다. 레인지로버와 레인지로버 스포츠의 관계처럼, 디스커버리 뒤에 ‘스포츠’를 달고 프리랜더의 뒤를 이어 막내로 자리매김했다. 어느덧 올해 들어 데뷔 6년차를 맞았고, 그동안 뒤처졌던 부위를 업데이트했다.

작은 변화, 큰 차이

요즘 점점 많은 차들이 TV프로그램 ‘렛미인’급 부분변경을 일삼아서 그렇지, 자고로 페이스리프트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신차효과를 다시 내기 위함이다. 화장만 고쳐야지, 성형수술까지 하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드니까. 주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앞뒤 램프나 그릴, 범퍼 일부를 손대는 것도 ‘최소한의 비용’ 때문이다.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외모는 딱 그만큼만 달라졌다. 기존의 동글동글한 눈망울 대신, 테두리를 따라 직선 주간주행등을 두르고 안으로 직사각형 헤드램프를 심었다. 주간주행등의 가운데 두 줄은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눈에 깊이를 더한다. 리어램프도 비슷한 변화를 거쳤다. 랜드로버의 최신 패밀리룩을 반영한 결과로, 훨씬 현대적이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크롬으로 육각 패턴을 채워 넣었고, 앞뒤 범퍼도 소소하게 형태를 다듬었다. 앞 범퍼 흡기구 내부에는 액티브 베인(Active Vane)을 적용해, 상황에 따라 바람길을 여닫도록 했다. 여기서 ‘상황’은 엔진 냉각과 공기저항 감소 중 ‘택1’을 뜻한다. 고성능보단 친환경을 드러내고 싶었을까? 밖으로 나왔던 배기구는 아예 뒤 범퍼 안으로 숨겼다. 전체적으로 크지 않은 변화를 통해 좀 더 고급스럽고, 깔끔해졌다.

이번 변화는 밖에서 보이는 겉모습보다 안에서 느끼는 활용성에 더 초점을 맞췄다. 계기반 12.3인치, 센터패시아 10.25인치 디스플레이(터치 프로2) 덕분에 이제는 2020년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게 됐다. 5년 전 쓰던 스마트폰이 벌써 고대 유물처럼 보이듯,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이제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신차라 할만하다. ‘적어도’를 강조한 건 이미 10.25인치도 충분한 크기가 아니기 때문.

공조장치 조작부도 확 갈아엎었다. 고광택 플라스틱 바탕에 터치버튼과 LCD 품은 다이얼로 마무리했다. 개인적으로 달갑지 않은 터치버튼이지만 간격이 넓어 쓰기 편하고, 미적으로도 얻은 게 많아 이만하면 성공이다. 특히 2개의 다이얼은 디스커버리 스포츠를 처음 타는 이에게 ‘오~’ 감탄사를 들을만하다. 운전석 온도와 풍량, 동승석 온도와 주행모드를 좌우 각각의 다이얼 하나로 조작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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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운전석

요즘 자동차 세상 전체로 보면 기어 변속은 점점 버튼이나 다이얼 방식이 늘어가는 추세.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변속 방식이 바뀌다 보니 과도기를 겪는 중이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다이얼이 있던 곳에 노브를 박았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뿐만 아니라 재규어 랜드로버 라인업 전체에서 진행 중인 변화다. 언뜻 시대에 역행하는듯싶지만, 본래 F-타입이나 SVO 같은 고성능 모델이 쓰던 방식이라 뭔가 더 받은 느낌이다.

이 밖에, 운전대도 레인지로버에서 물려받은 최신 스타일을 적용했고, 전에 없던 HUD(헤드업 디스플레이)도 추가했다. 운전대 에어백 좌우의 버튼 뭉치는 예쁜 만큼 직관성이 좋다고 볼 수 없어 그저 그렇지만, 밝고 선명한 HUD는 두 팔 벌려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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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대비 17% 늘어난 수납공간

2열 시트도 개선해 패밀리 SUV로서의 경쟁력을 높였다. 등받이 각도 조절만 되던걸, 이제는 시트 전체가 160mm 앞뒤로 움직이게 했다. 평소엔 가장 뒤로 밀어 휠베이스(2,741mm: 싼타페보다 조금 짧고, 투싼보다 훨씬 긴 정도) 대비 넉넉한 무릎 공간을 챙기고, 트렁크까지 가득 찼을 땐 사람 덩치와 짐 크기 사이에서 적당히 조절하자. 등받이는 6:4에서 4:2:4 비율로 접히게 했다. 중간에 긴 짐 찔러 넣어도 뒷자리에 둘이 편하게 앉을 수 있다.

전공은 오프로드, 부전공은 온로드

시승은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번갈아 진행했다. 먼저 온로드에서 뒷자리에 올랐다. 출발지에서 36km 가량 떨어진 오프로드 코스로 가는 길이었다. 파노라마 선루프에선 모처럼 미세먼지 없이 파란 하늘이 펼쳐지고 있었다.

2열에 앉아 굽잇길과 고속도로를 잇따라 달렸다. 국도 시골마을 어귀의 심술 맞게 생긴 과속방지턱을 지나고, 천장 손잡이를 꽉 잡아야 할 만큼 코너를 돌았다. 그리고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굳이 엉덩이에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느끼지 않아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꽤나 단단하다는걸.

평소 단단한 하체를 선호하는 내 취향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일반적인 승객들이라면 특히 뒤에서 잠들었을지 모를 아이들이라면 다소 불만일 수 있겠다. 좌우로 쏠린 무게를 잘 버텨낸다고 운전대를 마구 휘젓거나, 속도를 즐긴다고 요철을 조금만 세게 넘었다가는 뒷자리 동승자들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될지 모를 일이다. 오프로드 성능을 중히 여겼을 랜드로버일 텐데, 의외의 반응이다.

중간 기착지는 오프로드 코스로 꾸몄다. 급경사와 범피, 모래길, 자갈길, 사면 경사로 그리고 수로 코스까지 다양한 험로가 준비돼 있었다. 아무렴! 랜드로버 시승인데, 포장길만 달리면 섭섭하지. 어쩌면 이때가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본격 장기자랑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경사로 밀림방지나 내리막길 정속주행 기능 정도는 워낙 기본이니 패스. 모래와 자갈, 진흙길은 전자동 지형반응 시스템인 ‘터레인 리스폰스 2’ 다이얼만 돌려 너무 쉽게 통과했다. 포르쉐, 페라리, 람보르기니가 트랙 랩타임을 0.1초 줄이기 위해 온갖 전자장비의 소프트웨어를 연구하는 동안, 랜드로버는 각 지형별로 어떻게 구동력을 조절해야 험로를 쉽게 탈출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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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레인 리스폰스 2

솔직히 SUV 오프로드 시승행사에 여러 번 다녀보면 코스는 큰 차이가 없다. 더구나 인위적으로 만들었다면 다들 거기서 거기. 이날도 예상대로 나름 익숙한 구간들을 지났다. 이대로 끝나나 싶던 순간, 예상을 뛰어넘는 선물이 있었으니 바로 수로 코스다. 그래서 거의 마지막에 배치했나?

천천히 물에 발을 아니 타이어를 담갔다. 점점 깊어지더니 거의 바퀴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다.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최대 도강 깊이는 성인 허벅지 중간쯤 되는 600mm. 창문을 내리니 보트라도 된 기분이다. 팔을 뻗으면 손끝에 닿을 듯 수면이 가깝다. 이 정도면 그동안 다녔던 여러 오프로드 행사 중 가장 깊은 수준. 마침 무전이 왔다. “현재 수로의 깊이는 500mm입니다”

아쉽게도 이날 준비된 시승차에는 ‘클리어사이트 그라운드 뷰’ 옵션(SE부터 선택)이 적용되지 않았다. 정면과 측면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조합해 마치 투명 보닛을 내려다보듯 전방을 확인하는 기능이다. 도심의 좁은 골목과 자연 속 바위 사이에서 보다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을 터다. 증강현실을 랜드로버 맞춤으로 활용한 올바른 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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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사이트 그라운드 뷰

오프로드 주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이번엔 운전대를 잡았다. 아까 단단했던 뒷자리 승차감이 떠올라 운전석은 어떨지 더 궁금했다. 출발 후 5분도 지나지 않아 조금 놀랐다. 2열과는 완전히 다른, 말랑말랑한 승차감이 훨씬 편안하게 다가왔다.

본디 세단보다는 SUV가 앞뒤 승차감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만,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거의 다른 차로 느껴질 정도였다. 1열보다 2열이 단단하고 통통 튀는 건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겠지만, 두 승차감의 중간쯤에서 비슷하게 통일했으면 참 좋았겠다.

시승차는 D180 SE. 180마력, 43.9kgm를 발휘하는 직렬 4기통 디젤 터보엔진을 얹었고, 자동 9단 변속기와 짝지었다. 한 가지만 빼면 이 급의 SUV로서 무난한 제원이다. 문제는 2,130kg에 달하는 공차중량이다. 같은 체급에 비슷한 엔진을 얹은 BMW X3와 메르세데스-벤츠 GLC 모두 2톤이 채 되지 않으니, 디스커버리 스포츠가 적어도 100kg 이상 무겁다. 새롭게 적용된 마일드하이브리드의 배터리 무게를 감안해도 가장 무겁다. 그래서일까? 가속은 부드럽게 진행된다. 제원상 0-100km/h 가속시간은 9.7초. 살짝 아쉽지만 납득할만한 수준이다.

참고로 D180 아래로는 D150도 있다. 같은 엔진을 디튠해 150마력, 38.8kgm의 성능을 내며, 무게는 2,095kg이다. D180의 달리기 실력으로 미루어, D150보다는 D180의 심장이 디스커버리 스포츠에 보다 적합해 보인다. 복합공인연비도 D150보다 오히려 D180(11.4km/L)이 0.1km/L 좋다. 낮은 힘으로 같은 성능을 내기 위해 가속페달은 더 깊게, 엔진 회전수는 더 높게 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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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V 마일드하이브리드

이번 변화의 핵심은 48V 마일드하이브리드다. 진공 배력장치와 스티어링 시스템, 에어컨 등 그동안 엔진 힘을 야금야금 뺏어 먹던 부품들을 전동화해 부담을 덜고, 결국 연비 향상과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를 노리는 기술이다.

겉으로는 절대 알 수 없고 심지어 운전해봐도 눈치채기 어려운 기술이지만,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이를 위해 구동계통을 대폭 갈아엎었다. 기존 구조로는 차체 바닥에 48V 배터리를 깔고,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BiSG(Belt integrated Starter Generator)를 넣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BiSG는 시동 모터와 발전기의 역할을 겸하고, 가속 시 잠깐이지만 14.3kgm의 토크를 보태기도 한다.

주행 중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버려지는 에너지를 알뜰살뜰 긁어모으며, 시속 17km 이하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엔진을 잠재운다. 랜드로버에 따르면 이렇게 얻은 연비 향상은 6%, 덜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km당 8g이다.

클리어사이트 룸미러도 자랑이다. 캐딜락 CT6의 ‘리어 카메라 미러’와 동일한 기능. 지붕 위 샤크핀 안테나에 달린 카메라로 담은 영상을 9.5인치 룸미러에 1600x320 해상도로 비춰준다. 평소에도 밝고 넓은 후방 시야를 제공하지만, 트렁크에 짐을 천장까지 실었을 때에도 방해받지 않고 뒤를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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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사이트 룸미러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편안하고 강력했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편안함은 1열에 집중됐고 강력함은 오프로드에서 빛났다. 2열이 불편하고, 온로드는 약하다는 뜻이 아니니 오해 마시길.

원래 잘하던 오프로드 성능은 그대로 이어가고, 구식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말끔히 개선했다. 값비싼 마일드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얹었지만 가격 상승은 최소화했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적당히 잘생겼고, 적당히 넓고, 적당히 잘 달렸다. 참 중의적인 표현이긴 한데, 실제로 그랬다. 이제는 브랜드 이미지도 적당히 끌어올리기 바란다.

이광환 carguy@carla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