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가 국내시장에 GR 수프라(이하 ‘수프라’)를 들여왔다. 17년만에 부활한 5세대이자, 미국과 일본에서도 작년 여름부터 팔기 시작한 따끈따끈한 스포츠카다. 수프라의 명성이야 달리 수식어가 필요 없을 수준이지만, 오랜 공백기와 망가진 한일관계로 조심스럽게 베일을 벗었다.

출시 현장에는 수프라 개발을 주도했던 타다 테츠야 수석엔지니어가 함께했다. 수프라를 만들며 겪은 경험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입을 떼기 시작했을 땐 다소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막상 듣다 보니 시나브로 집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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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테츠야 수석엔지니어

수프라 개발은 2012년 5월, 토요타 본사에서 걸려온 전화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스페인에서 유럽 기자단을 대상으로 열린 86 시승행사에 참석 중이었다. 수화기 너머에선 독일 뮌헨 BMW 본사로 날아가 공동으로 차를 개발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진단해보라는 주문이 내려왔다. 극비였기 때문에 어떤 설명도 할 수 없이 갑자기 떠나야만 했고, 나중에 유럽 홍보팀으로부터 쓴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통화 중에는 특정 모델에 대한 언급이 없었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수프라 부활을 떠올렸다. 86을 출시했을 때, 많은 팬들로부터 수프라에 관한 질문과 응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BMW가 수프라의 전통인 직렬 6기통 엔진과 후륜구동으로 유명한 브랜드란 이유도 있었다.

잘 될 것 같다는 답변을 들은 본사는 덜컥 그에게 수프라 프로젝트를 맡겼다. 당시 86 개발과 출시를 막 마치고 바쁜 나날을 보내던 터라 깜짝 놀랐다. ‘수프라’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도 부담을 더했다.

독일에 개발본부를 꾸리고 본격적으로 BMW와 협업을 시작하자 미처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이 터져 나왔다. 신차 개발 시스템은 물론, 협업을 통해 만들고자 하는 차의 성격까지 서로 차이가 컸다. BMW는 볼륨 모델을 원하는 눈치였고, 토요타는 순수 스포츠카를 목표로 했으니 동상이몽이었던 셈이다.

“수프라에 대한 열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스포츠카 비즈니스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수지타산을 잘 따지지 않으면 안 된다” BMW 측 개발 책임자였던 헤르베르트 디스(Herbert Diess) 기술 부사장의 조언이었다. 개발 원가와 이윤, 원하는 성능 사이에서 갈등이 거듭됐으며 그 사이 약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슬슬 “뭐하고 있는 거냐”는 본사의 압력이 커져가던 즈음, 헤르베르트 디스 부사장이 폭스바겐 그룹 CEO로 자리를 옮겼으며 BMW 측 주요 담당 멤버들도 교체됐다. 이후 한결 수월하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고, 수프라 개발에 속도가 붙은 것도 이때부터였다.

목표는 포르쉐 카이맨과 박스터로 정했다. BMW와 토요타의 공동 프로젝트도 스포츠카를 만들기 위함이었고 목표였고 이 둘이라면 최상의 적으로 손색이 없었다. BMW Z4와 박스터, 토요타 수프라와 카이맨이 각각 로드스터와 쿠페인 쌍둥이라는 점도 맞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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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Z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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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GR 수프라

이때 타다 수석엔지니어는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엔진을 앞에 두고 미드십(엔진이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에 위치하는 구조)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그리고 포르쉐를 이기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포르쉐가 놀랄만한 스포츠카를 만들기 위해서는 완전히 다른 플랫폼이 필요했고, 결국 비율을 대대적으로 다듬어야 했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결국 휠베이스(앞뒤 바퀴 중심 사이)는 줄이고, 트레드(좌우 바퀴 중심 사이)는 늘이고, 무게중심은 양산차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처음에 이런 방향을 본사에 보고했을 때, 가능하겠냐고 되물었을 정도라고.

플랫폼 다음은 엔진과 변속기, 하체를 결정했다. ‘직렬 6기통 + FR(앞 엔진, 후륜구동)’의 수프라 전통을 고수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여기까지는 토요타와 BMW가 공동으로 작업한 게 사실이다.

“이후부터는 완전히 따로 개발이 시작됐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지금부터라며 말을 이어갔다. 디자인 스튜디오와 개발팀도 아예 다른 지역에 위치했으며, 서로 간섭하지 않은 채 튜닝을 진행해 나갔다. 처음에 공동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후반 튜닝은 각자 하기로 계약한 상태였다.

그는 주변에서 “두 모델이 뭐가 다르냐?” “어느 쪽이 더 좋냐?” 같은 질문을 자주 받았는데, 항상 “나는 Z4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본인이 Z4를 처음 타본 건 Z4 출시 직전, 마지막 프로토타입 완성 후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수프라 튜닝을 지휘하면서 지시한 건 오직 한 가지였다. 아무리 스포츠카라도 연비와 환경을 챙겨야 하는 요즘이지만, 그는 오직 하나만 신경 쓰도록 했다. 바로 ‘익사이팅한 주행감성’이었다. 그는 Z4와 수프라의 비교 영상을 보면 항상 수프라가 더 빠르더라며, 이는 아마 튜닝 방향의 차이 때문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수프라가 엔진과 변속기를 성능에 ‘몰빵’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토요타의 탄탄한 친환경차 라인업이 있다. 볼륨 모델로 자동차 회사별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를 충분히 확보한 덕분에, 수프라처럼 소량 판매되는 스포츠카가 마음껏 재미를 추구할 수 있었다. 타다 수석 엔지니어는 신형 수프라 운전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고. “길거리에서 프리우스를 만나면 고마워하세요”

한편, GR 수프라는 340마력, 51kgm의 3리터 직렬 6기통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얹었다. ‘GR’은 토요타의 모터스포츠 활동인 ‘가주 레이싱(GAZOO Racing)’을 뜻한다. 가격은 7,380만 원이며 올해 30대 한정판매된다. GR 수프라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모바일 카달로그(http://www.toyotagrsupra.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광환 carguy@carla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