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5년 2세대 XC90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이날을 기다려왔다. 지난 8월, 볼보가 S60을 국내시장에 출시했던 그날 말이다. XC90과 함께 볼보가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선보였을 때, 빨리 세단 버전을 보고 싶었고, S90이 등장했을 땐, 작고 스포티한 S60이 더 기대됐다.

화려한 조명 아래 베일을 벗고 나타난 S60은 기대만큼 아니 기대보다 멋졌다. 볼보만의 디자인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면서, 형 S90과 다른 S60만의 개성까지 녹아있었다. 멀리서 봐도 역동적인 비율을 자랑했고, 가까이 봐도 꼼꼼한 마무리가 좋았다. 밖에서 봐도, 안에서 봐도 프리미엄 이미지를 물씬 풍겼다.

이토록 말쑥했던 볼보 S60을 다시 만났다. 이번엔 행사장 무대나 미디어 시승이 아닌 일상에서 1:1로 재회했다. 조명발 없이 만난 S60은 여전히 멋졌을까? 차분하고 진득하게 몰아본 주행느낌은 어땠을까?

 

반전1: 이게 전륜구동이라고?

무릇 사람도 자동차도 비율이 첫째다. 개성 있는 얼굴의 패션모델은 많지만 다리 짧은 패션모델은 없는 것도, 키는 작지만 머리는 더 작아 화면발이 잘 받는 연예인도 같은 이치다. 방금 눈앞을 스쳐간 차가 멋져 보이는 것도 비율 때문일 확률이 높다.

사람들은 보통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 캐릭터라인 등을 놓고 평가하지만, 사실 이들은 멋진 비율을 더 빛나게 하는 조연일 뿐이다. 혹은 못난 비율을 감추기 위한 속임수이거나.

태생적으로 전륜구동은 후륜구동 대비 멋진 비율을 갖기 어렵다. 앞바퀴 너머로 얼굴이 길게 나와 바퀴가 널찍이 차체를 떠받치는 느낌이 약하고, 보닛은 짧아 엔진의 존재감이 부족하다. 후륜구동 독일 세단들이 힘 좋고, 잘 달리게 생긴 건 반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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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륜구동같은 측면 비율

S60은 전륜구동 기반이면서 후륜구동의 비율을 지녔다. 따로 알려주거나 몰아보지 않으면, 후륜구동인 줄 철석같이 믿겠다. S60에 담긴 첫 번째 반전이자, ‘외모부심’이 폭발하는 순간이다. 위에서 비율 얘기를 길게 쓴 것도 그만큼 중요한 반전이기 때문.

우리가 아무리 성형해도 타고난 체형까지 바꿀 수 없는 건 차도 마찬가지. 아무리 세부 디자인을 바꿔도 기본 뼈대로 인한 비율은 어쩔 수 없다. S60이 후륜구동 비율을 챙긴 건 온전히 형들에게 물려받은 SPA 플랫폼 덕분이다. 현재 볼보는 90과 60클러스터를 SPA로 만들고, 40클러스터는 모기업인 지리자동차와 CMA 플랫폼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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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시 보행자 안전을 위해 보닛이 위로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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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 하단 볼륨을 위해 뒷문 힌지를 낮췄다

S60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 뼈대는 물려받았지만 S60만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쉽지 않은 변화를 더했다. 차 크기에 맞춰 벨트라인을 내렸고, 또 이에 따라 보닛 힌지 위치도 조절했다. 뒷문 힌지도 차체 하단 볼륨(라이트캐치)을 위해 낮춰 달았다. 모두 엔지니어와 의견 조율을 통해 힘들게 얻어낸 결과라고, S60 출시 때 방한한 티 존 메이어(T. Jon Mayer) 수석 디자이너에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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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 존 메이어 볼보 수석 디자이너, 왼쪽은 XC60을 디자인한 이정현 디자이너

이번엔 가까이서 살펴보자. 라디에이터그릴에 늘어선 세로 크롬 선은 꺾임을 넣었고, ‘토르의 망치’ 주간주행등은 헤드램프를 뚫고나와 그릴을 찌르기 직전이다. 앞 범퍼는 S90과 더 차이가 크다. 사다리꼴 흡기구는 쩍 벌린 입처럼 공격적이고, 좌우 두꺼운 기둥이 그릴을 든든하게 떠받친다.

이 밖에도 앞뒤 둘로 나뉜 캐릭터라인, 뒷문 유리에 포함된 쿼터 글라스, 범퍼에서 트렁크로 자리를 옮긴 뒤 번호판 등 S60만의 디자인 요소가 곳곳에 숨어있다. 확실히 S60은 S90보다 젊고 역동적이다.

실내는 S60이라고 해서 달리 더할 얘기가 없다. 그동안 XC60과 크로스컨트리(V60)을 통해 본 실내와 거의 동일하다. 그렇다고 식상하진 않다. 스칸디나비안 실내는 아직 충분히 유효하니까. 단순히 유행을 좇거나 멋 부리기보다, 사람을 중심으로 한 디자인이기에 가능한 효과다.

다만, 9인치 세로형 디스플레이는 슬슬 작아 보이기 시작했다. XC90에 처음 도입됐을 때만 해도 신선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그사이 경쟁자들이 크기를 키우고, 베젤은 줄였으며, 화려한 그래픽으로 무장했다. 역시 차에서 가장 빨리 나이 먹는 게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다.

다음으로 업데이트가 필요한 곳은 기어노브. PRND를 ‘드드득’ 오르내리는 기계식은 어느덧 구식이 됐다. 제자리에서 딸각이는 전자식이 요즘은 대세다. 고정식 2열 시트 등받이도 개선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아도 경쟁자 대비 트렁크 용량(S60:442L / 3시리즈:480L / C클래스:455L / A4:480L, VDA기준)이 작은데, 등받이는 왜 접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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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L 용량의 트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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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내부 상단도 마감재로 덮어주었으면......

반면 1열 시트는 대만족. 허벅지 길이 조절은 물론, 요추받침과 열선, 통풍, 마사지 기능까지 갖춘 시트는 장거리 여행에서 편안히 몸을 감싼다. 엉덩이에 붙은 나파가죽의 부드러운 감촉은 드리프트 우드로 만든 나무 장식, 은은하게 반짝임을 줄인 크롬, 피아노블랙 플라스틱과 어울려 흡사 스웨덴 가정집 거실에 와 있는 착각을 부른다.

‘거실스러움’의 화룡점정은 인스크립션 트림에 포함된 B&W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이다. 10채널 앰프와 스피커 15개가 들어가고, 총 출력이 1,100W라는 설명은 몰라도, 어지간한 아니 모든 동급 모델을 통틀어서 가장 좋은 소리임은 확실히 알 수 있다. 각 음역의 균형이 뛰어나고, 섬세하면서도 강력하게 실내를 채워주니 음악감상실이 따로 없다.

이 정도 소리를 감상하려면 최소 수천만 원은 더 비싼 차로 넘어가야 한다는 볼보의 자랑도, 오디오 시스템 때문에 볼보를 선택했다는 소문도 결코 허풍이 아니다. 참고로 ‘예테보리 콘서트홀’ 상태에서 내비게이션 길 안내를 받으면, 흡사 하늘로부터 계시가 내려오는 듯한 경험도 가능하다.

 

반전2: 이게 스포츠세단이라고?

국내 들어온 S60의 심장은 직렬 4기통 2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을 얹고 254마력, 35.7kgm를 발휘하는 T5 한 가지다. 해외에는 T4를 시작으로 슈퍼차저와 터보차저를 결합한 T6, 여기에 전기모터까지 더한 T8이 있으며, 최강 폴스타 엔지니어드도 고를 수 있다. 가솔린 엔진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한 셈인데, 디젤은 쏙 빠졌다. S60은 볼보 최초로 디젤을 아예 얹지 않는 모델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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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리터 4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

볼보는 전동화 움직임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 브랜드 중 하나다. 2025년까지 총 100만 대의 전기차를 팔고, 전 세계 판매량 절반을 순수전기차로 채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을 정도. 궁극에 전기차로 완전히 넘어가기 위해 차차 내연기관을 없애는 차에, 가솔린보다는 디젤을 먼저 빼는 게 당연한 요즘이다.

몸무게(공차중량) 1,700kg의 S60을 이끌기에 T5 엔진은 충분한 힘을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급가속(제원표상 0-100km/h는 6.5초)은 물론이고, 고속 영역에서도 200km/h 부근까지 시원한 가속을 선사한다. 패밀리 세단으로 더 강력한 엔진이 필요할까 싶을 정도.

인상 깊은 건 회전 질감과 음색이다. 과거에도 S90과 크로스컨트리(S90), 크로스컨트리(V60)을 통해 경험했던 같은 엔진이지만, 한결 부드럽다. 심지어 ‘요즘 볼보가 전기모터랑 어울려 다니더니 닮아졌나?’라고 별생각을 다했다.

볼보는 가솔린과 디젤을 포함한 모든 엔진을 같은 배기량으로 통일했다. 여기에 터보차저와 슈퍼차저, 전기모터를 조합해 다양한 출력을 뽑아낸다. 볼보가 ‘드라이브-E’라고 부르는 시스템이다. 다들 저배기량 고효율을 추구는, 다시 말하면 쥐어짜는 엔진이란 뜻이다.

하지만 세상만사 장단점이 있는 법. 1+1로 2 이상을 만들다 보니 잃는 게 있기 마련인데, 바로 감성이다. 적은 월급 받고, 일 많이 하면 삶의 질이 떨어지듯 말이다. 많은 다운사이징 엔진들이 메마른 감성으로 ‘밟는 맛’이 부족하지만, S60은 예외다. 회전 한계까지 매끈하게 돌고, 엔진음도 크기는 작지만 듣기 좋은 음색이다.

변속기는 아이신에서 만든 자동 8단. 딱히 인상적이지도, 그렇다고 별다른 흠도 찾을 수 없다. 엔진 회전수와 힘을 손실 없이 제때제때 쪼개서 바퀴로 전달한다. 다만 운전대 뒤가 허전하다. 이 정도라면 패들을 써서 운전 재미를 끌어올릴 수 있었을텐데…… 스포츠세단이라면 적어도 패들 정도는 넣어줬어야 마땅하다.

비율에 이은 두 번째 반전은 하체다. 시승차를 받고 수백 미터를 달리자마자 느꼈다. “우와 승차감 ‘개꿀’이네?” 부드러운 엔진 회전처럼 매끄럽게 노면 위를 미끄러지고, 요철을 만나도 찰랑찰랑 사뿐사뿐 지난다. 오히려 S90보다 더 유연하다. XC60도 XC90보다 부드러웠는데. 그리고 든 의문. ‘어? 스포츠세단이라며?’

분명 볼보는 국내에 S60을 출시하며 스포츠세단이라고 소개했다. 상식적으로 이렇게 승차감이 좋으면, 코너링이나 고속에서 불안하기 쉽다. S60은 야들야들한 발목으로 굽잇길을 잘도 돌아나간다. 기본기 좋은 뼈대와 알루미늄 듬뿍 쓴 더블위시본 앞 서스펜션, 트레드웨어 280의 끈끈한 타이어가 제 몫을 다한 결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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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위시본 앞 서스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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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링크 뒤 서스펜션. 합성수지로 만든 리프 스피링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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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40R19 사이즈의 신발

S60을 몰고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렸다. 고속주행 시 안정감도 250마력대 세단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수준이다. 특히 평택 부근 확장공사 구간 지날 때 진가를 발휘했다. 단단한 하체로 서킷 공략을 전문으로 하는 스포츠카들은 고속에서 울퉁불퉁한 노면을 만나면 순간적으로 불안해지기도 하는데, S60의 부드러운 하체는 의연하게 삼키며 지나갔다. 물론 비단같이 매끈한 트랙에선 얘기가 다르겠지.

결과적으로 S60은 단단하고 예리한 스포츠세단을 편안하게 만들었다기보다, 부드럽고 여유로운 패밀리세단을 스포티하게 다듬은 쪽이다. 차체와 바퀴는 부드러운 관절로 연결해 승차감을 챙기고, 나머지 기본기로 스포티한 맛을 가미했다.

볼보답게 반자율주행기능도 충실하다. 파일럿어시스트2를 통해 130km/h까지 ‘거의’ 스스로 가감속과 차선유지를 해낸다. 한 번도 안 써본 사람은 있지만, 한 번 밖에 안 써본 사람은 없을 만큼 편리하다. 실력은 적어도 업계 평균 이상. 앞선 차량과 사람, 자전거, 큰 동물과 충돌이 예상되면 스스로 제동을 거는 시티세이프티도 기본이다.

참! 헤드램프 얘기를 빠뜨릴 뻔했다. 주행방향 따라 요리조리 빛을 보내주고, 전방 차량에만 상향등을 꺼주는 기능이야 요즘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들도 달고 나오니 놀랍지 않았다. 최신 LED라면 당연히 밝겠지 생각했고, 정말 환했다. 예상했는데도 야간주행 내내 참 신기하고 기특하더라. 차가 최후에 사고를 줄여주는 것도 좋지만, 운전자가 미리 위험을 알고 대처하는 건 더 중요하다.

 

잘 나갈만하네

S60을 몰고 나니 왜 요즘 볼보가 잘나가는지 새삼 알 수 있었다. 오래도록 쌓아온 ‘안전의 볼보’를 바탕에 깔고, 준수한 외모로 호감을 산 뒤, 스칸디나비안 실내에서 프리미엄 브랜딩에 설득력을 더하니 거부하기 어렵다.

단, 스포츠세단이란 주장은 갸우뚱했다. 차라리 ‘잘 달리는 패밀리세단’이라면 끄덕끄덕할 수 있다. 역시 볼보는 탑승자가 짜릿한 운전재미를 느끼는 것보다, 볼보 타고 호강하며 오래오래 살다가 편안히 늙어 죽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브랜드다. 이 철학은 볼보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오늘날까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근간이다.

S60은 독일 3사 세단에 슬슬 싫증 났거나, 디젤 경쟁모델과 비슷한 값에 약 60마력 더 높은 가솔린 엔진이 탐나거나, 혹은 국산차 다음 수입차로 넘어가려는 소비자들을 흡수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물량 부족으로 출고가 늦어져, 발길만 돌리지 않는다면.

이광환 carguy@carla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