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젖은 스키, 물과 모래가 뚝뚝 떨어지는 서핑보드는 참 차에 싣기 꺼려지는 장비다. 기름때 묻은 체인에 진흙 범벅 산악자전거는 어떤가? 타고 놀 때야 이보다 재밌는 게 또 있을까 싶지만, 집에 갈 땐 이만큼 거추장스러운 것도 없다. 그렇다고 신나게 놀러 가면서 트럭을 탈 수도 없는 노릇.

넓은 실내 공간과 전천후 주행성능을 자랑하는 SUV가 아무리 대세라지만 못하는 건 못하는 거다. SUV가 못하는 부분을 완벽하게 채워줄 수 있는 차가 바로 픽업트럭이다. 눈, 물, 모래, 진흙 무엇이 묻었든 척척 실으면 그만이니까. 트럭은 트럭이되, ‘짐차’ 이미지는 적고 SUV 만큼 편한 게 바로 픽업이다.

그동안 국내 픽업 시장은 쌍용 ‘스포츠’ 시리즈가 독차지 해왔다. 무쏘 스포츠를 시작으로 액티언과 코란도 역시 스포츠 버전이 나왔으며, 지금은 렉스턴 스포츠가 명맥을 잇고 있다. 문제는 소비자 입장에서 달리 대안이 없었다는 점.

최근 다양한 레저가 발달하며 픽업 수요가 늘었고, SUV의 인기에 덩달아 사촌쯤 되는 픽업까지 관심이 옮겨가는 모양새다. 이제는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도 되겠다 싶어질 즈음, 쉐보레가 콜로라도를 들고 왔다. 픽업 종주국인 미국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다니 뭔가 달라도 다르지 않을까?

 

“이게 ‘시보레’에서 새로 나온 그 차요?”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큰 차를 참 좋아한다. 콜로라도를 몰고 다니며 새삼 절실하게 깨달은 사실이다. 억이 넘는 스포츠카를 몰 때도 받지 못했던 관심을 콜로라도를 타면서 많이도 받았다. 관심 보인 이들 전부가 아저씨라는 건 함정. 편하게 보셔도 된다고 하면, 가격이 얼마냐, 엔진은 뭐냐…… 많은 질문이 돌아왔다. 골목을 지날 땐, 사이드미러를 통해 고개 돌려 바라보는 아저씨들을 확인하며 괜히 으쓱했다.

콜로라도는 크다. 국내서 가장 비슷한 차체 구성을 한 렉스턴 스포츠 칸과 비교해도 10mm가 더 길고, 덩치 얘기가 나올 때마다 기준으로 꼽히곤 하는 팰리세이드와 나란히 세워도 무려 435mm나 튀어나온다. 휠베이스도 셋 중 가장 긴 3,258mm를 자랑한다. 너비와 높이는 각각 1,885와 1,830mm ‘밖에’ 안돼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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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턴 스포츠 칸과 콜로라도

덕분에 신호 대기 중 마을버스와 나란히 서도 별로 꿀리지 않는 눈높이를 자랑하고, 혹시 누가 들이받아도 넉넉히 보호받을 듯 믿음직하다. ‘큰 차=비싼 차’ 공식을 갖은 이들에겐 선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반면 불편함도 적지 않다. 마트 주차장에선 주차구역 바깥으로 앞 범퍼가 삐죽 튀어나오고, 다들 ‘생활의 달인’ 수준으로 주차하는 서울 주택가에선 비집고 다니기도, 세워둘 곳 찾기도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막히는 좁은 길에선 마치 송사리들 사이 혼자 대형 잉어라도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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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옆에 서도 눈높이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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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주차장이 좁다

사실 콜로라도가 주변 아저씨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건 크기가 커서지, 고급스럽고 화려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라고 할 정도. 요즘 그 흔한 LED 주간주행등도 없고, 헤드램프는 전부 누런빛이 나는 할로겐을 썼으며, 휠도 덩치 대비 볼품없는 17인치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탓할 생각은 없다. 픽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렇듯 수수한 외모가 되려 잘 어울리니까. 17인치 휠도 오프로드 주행을 위해 100번 양보 가능하다. 호화로운 픽업은 보석 박힌 망치일 뿐이다. 단, IIHS(미국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에서 불량(Poor) 등급을 받은 할로겐 헤드램프는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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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HS에서 불량(Poor) 등급을 받은 헤드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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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인치 휠

평범함 속에도 몇몇 눈길 가는 곳이 있다. 적재함 후방 모서리에 파인 코너스텝과 부드럽게 여닫히는 테일게이트, 스프레이온 베드 라이너(스프레이 방식으로 적재함 표면을 마감하는 방식), 뒷자리와 적재함 사이 슬라이딩 유리 문은 별 것 아닌데 쓰임새가 쏠쏠하다. 별것 아닌데 이제야 즐길 수 있다니 슬프기도 하고. 역시 대단한 첨단기술만 능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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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범퍼 모퉁이에 달린 코너스텝과 옆으로 빠져나온 배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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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재함과 통하는 유리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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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재함 조명

헤드램프 끝 호박색 반사경, 붉은색으로 깜빡이는 후방 방향지시등, 동승석 쪽 뒷바퀴와 뒤 범퍼 사이에 빼꼼히 고개를 내민 배기구는 콜로라도가 ‘미제’임을 알 수 있는 흔적이다. 작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개정에 따라, 제작사별 연간 판매량 5만 대 이하는 미국 자동차 안전기준을 통과하면 국내 기준에 맞출 필요 없이 그대로 들여올 수 있게 된 결과다.

적재함을 볼까? 제원상 용량은 1,170L로 렉스턴 스포츠(1,011L)보다 159L 크고, 렉스턴 스포츠 칸(1,261L)보다 91L 작다. 베드의 가로세로 길이는 렉스턴 스포츠 칸과 비슷하지만 수cm 작은 수준. 최대적재중량은 400kg인데, 렉스턴 스포츠 칸이 500kg까지 실을 수 있는 5링크와 700kg까지 실을 수 있는 리프스프링 두 가지 방식으로 나왔으니 다소 적다.

다만 최대적재량은 ‘자기인증제도’를 따르고 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각 브랜드가 스스로 안전기준에 적합함을 인증하고 신고하는 제도다. 하나의 기준으로 정부에게 공인받은 숫자는 아니라는 소리.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비교적 보수적으로 신고했다는 게 쉐보레의 설명이다. 실제로 미국 제원을 찾아보면 695kg(국내사양과 가장 비슷한 크루캡+숏박스+3.6L엔진+4WD+LT 기준)으로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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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로주행과 화물적재에 적합한 일체식 리프스프링 리어 서스펜션

 

아쉽지만 괜찮아

실내도 망치요 드릴이자 드라이버다. 다이아몬드는 고사하고 큐빅도 박지 않은, 딱 도구로서의 존재 이유에 충실한 모양새다. 단순하고 기본적인 대시보드, 장갑 낀 채 누르기 쉽도록 큼직큼직한 버튼, 좀 긁히고 상처 나도 툭툭 털고 마음 편히 쓸 수 있는 싸구려 플라스틱 마감, 여기저기 파놓은 다양한 수납공간이 아쉬움과 수긍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이어간다.

콜로라도 운전석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대시보드 중앙의 8인치 디스플레이. 전체적으로 고급이나 첨단과는 거리가 먼 실내지만, 그나마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하며 불만을 잠재운다. 쉐보레 신차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시스템인데, 해상도와 메뉴 구성, 그래픽까지 불만 없다. 안드로이드 오토와 애플 카플레이도 모두 지원한다. 아, 후방카메라 화질도 불과 얼마 전 GM에 비하면 훨씬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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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치 모니터를 통해 안드로이드 오토와 애플 카플레이를 모두 즐길 수 있다 (이미지: 쉐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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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 장착을 위한 가이드라인도 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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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중저음이 특징인 보스 스피커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열쇠다. 스마트키는 고사하고, 리모컨과 따로 분리된 열쇠라니! 이게 2019년 신차가 맞나? 이건 픽업의 터프함과도 관련 없으며, 예상보다 저렴한 가격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리모컨이라도 있는 걸 감사해야 하나?’ 싶을 지경. 열쇠 따위 아무려면 어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처럼 ‘열쇠 따위’가 신경 쓰이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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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에 리모컨만 대롱대롱 달려있다고 보면 된다

콜로라도는 미국에서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 승차공간 구성에 따라 익스텐디드캡과 크루캡이 있고, 적재함 길이에 따라 숏베드와 롱베드를 고를 수 있다. 이 중 우리나라에 들어온 콜로라도는 2열 시트가 있는 크루캡에 짧은 숏배드를 달았다. 쌍용 렉스턴 스포츠 칸과 가장 비슷한 조합이다.

공간 안배 순서로 보면 1열과 적재함 다음이었을 듯하지만, 2열도 제법 쓸만하다. 워낙 큰 덩치에 쓸만한 무릎과 머리 공간을 확보했고, 개방감도 나쁘지 않다. USB포트 2개와 파워아웃렛은 꼭 2열 승객의 편의가 아니더라도 픽업으로서 활용성을 높여주는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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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열 시트 엉덩이 받침 아래 별도의 사물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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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스텝은 꼭 달기를 권한다. 타고 내리기 훨씬 쉽다

 

트럭 주제에?!

커다란 엔진룸에 넉넉히 자리 잡은 3.6리터 V6 가솔린 엔진은 콜로라도의 주행성능을 특징 짖는 가장 큰 요소다. 시동을 걸자마자 트럭이라면 응당 들려왔던 ‘우르릉 달달달’ 거리는 진동과 소음이 없다. 점잖은 기지개 뒤 나지막한 숨소리가 넘어올 뿐이다. ‘트럭 주제에’ 고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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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리터 V6 가솔린 엔진

가솔린 엔진의 존재감은 주행을 시작하면 장점이 더 크게 다가온다. 분명 크고 육중한 차체에 묵직한 움직임인데, 힘의 원천은 매끈하고 가벼운 회전에서 비롯된다. 뻑뻑하고 무거운 디젤 박동과 다르다. 이런 차이는 소리로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대배기량 다기통 가솔린 심장의 호방한 울림이 운전 재미를 높인다.

엔진의 최고출력은 312마력, 최대토크는 38kgm. 비록 무게가 2톤을 넘지만 힘에 대한 갈증은 없다. 직선구간에서 가속페달을 깊이 밟으면, 초반부터 속도제한이 걸리는 160km/h 부근까지 느긋하지만 시원하게 밀어주며 속도를 높여간다. 비록 터보는 없지만, ‘배기량이 깡패’라는 말처럼 토크도 충분하다. 자연흡기 엔진답게 반응이 자연스러워 일상주행은 물론 오프로드에서도 힘을 원하는 만큼 꺼내 쓰기 편하다.

득이 있으면 실도 있는 법. 문제는 연비다. 실린더 6개 중 상황에 따라 2개를 꺼 연비 향상을 노린다지만, 그 ‘상황’이 아주 제한적이다. 콜로라도의 복합공인연비는 8.1km/L(4WD). 시승 중 약 309km를 달린 후 계기반상으로는 7.5km/L, 실연비로는 7.1km/L를 기록했다. 배기량과 성능, 공차중량을 고려하면 수긍할만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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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09km를 달린 후 계기반상으로는 7.5km/L, 실연비로는 7.1km/L를 기록했다

하지만 콜로라도에 관심 보이며 다가왔던 아저씨들은 수긍보다 걱정을 먼저했다. 일단 덩치에 놀라 먹성을 궁금해했고, ‘3,600cc 가솔린’ 소리를 듣는 순간 난색을 표했다. 잠시 고민하다 디젤은 없냐고 물어왔고, 미국에만 있다고 하니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의 반응은 놀랄 만큼 비슷했다.

디젤이 아무리 좋아져도 가솔린보다 부드럽기 힘들 듯, 가솔린이 아무리 발전해도 디젤보다 연비가 높기는 어렵다. 아무리 환경이 중요하고 디젤이 ‘환경의 적’ 취급받아도, 결국 내 주머니 속 돈이 먼저 생각나는 게 당연지사. 어쩌면 콜로라도의 가솔린 심장은 가장 큰 무기임과 동시에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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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쉐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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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쉐보레)

변속기는 8단 자동을 맞물렸다. GM에서 만들고 캐딜락 CT6 등 후륜구동 모델들에 고루 쓰는 변속기다. 아무 기대도 안 했는데, 반응이 빠릿빠릿하다. 추월 가속이라도 할라치면 재빨리 기어를 낮춰 물어 높아진 토크를 바퀴로 전달한다. 엔진과 함께 ‘트럭 주제에’ 의외의 운전 재미를 준다.

여느 쉐보레 차들처럼 변속기 레버 끝 왼쪽에는 +/- 버튼이 있다. 적극적인 수동조작으로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라는 용도는 아니고, L모드에서 설정한 기어까지만 단수를 묶어두기 위함이다. 긴 내리막에서 엔진 브레이크를 쓸 때 요긴하다. 오프로드 성능을 강조하지만 내리막정속주행장치가 없어 아쉬웠다면 비슷하게나마 대신 활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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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단 자동변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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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쉐보레)

콜로라도를 몰고 처음 도로에 나서자마자 당황했던 건 브레이크 감각 탓이다. 일반 승용차보다 깊게 밟아야 비로소 속도를 늦춘다. 느긋하지만 시원한 가속처럼, 감속도 비슷하게 이루어진다. 미국 시장에서 팔리는 대형 SUV들이 주로 비슷한 페달 감각을 지녔는데, 콜로라도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설정이 차의 성격이나 트레일러 견인 상황에 적합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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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트레일러 연결 시 하중에 따라 브레이크 게인(gian)을 조절할 수 있다

구동방식은 2륜구동(2H)과 4륜 하이(4H), 4륜 로우(4L), 그리고 2륜구동과 4륜구동을 스스로 오가는 오토 모드 중 고를 수 있다. 평상시 마른 노면에서는 오토도 필요 없이 2H로 다니면 충분하다. 겨울철 눈비가 오거나 가벼운 험로에서는 4H를, 바퀴가 빠져 헛돌 가능성이 있거나 본의 아니게 헤드뱅잉을 할 만큼 험한 길에서는 4L를 쓰면 된다.

바디 온 프레임을 기본으로 4L 모드까지 갖춘 픽업은 타고 있는 사람마저 ‘진짜 남자’로 보이게 할 만큼 ‘진짜 오프로더’다. ‘무늬만 SUV’인 차들과는 비교하면 섭섭하다.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모두 대응하는 타이어도 콜로라도에 딱 어울리는 신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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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시스템 다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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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로드와 오프로드를 모두 아우르는 타이어

끝으로, 콜로라도를 타는 내내 가장 놀라웠던 건 따로 있다. 승차감을 중심으로 한 전체적인 주행감각이다. 그동안 우리가 경험했던 바디 온 프레임(Body-on-frame) 차들을 돌이켜보면 ‘트럭 느낌’이 강했다. 충격이 올라오면 차체 전체가 울리며 경직된 반응을 보였고, 다리 이음매나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면 털썩거렸다.

프레임과 연결된 서스펜션은 험로 주행과 화물 적재를 고려해 승차감보다 내구성을 우선시 했다. 단단한 프레임과 그 위에 얹힌 바디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도 풀기 힘든 문제였다. ‘트럭 느낌’이 썩 좋지 못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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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쉐보레)

콜로라도는 달랐다. 똑같이 바디 온 프레임 뼈대를 지녔음에도 이토록 세련된 주행감각을 연출할 줄 미쳐 예상치 못했다. 진동은 거르고, 충격은 삼키며, 하중 이동은 버텨내는 실력이 비범하다. 출시 당시 오프로드를 달리면서도 승차감이 참 좋았는데, 온로드에서도 만족감이 줄지 않는다. 앞서 말한 ‘트럭 느낌’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 정도라면 ‘짐칸 달린 큰 승용차’쯤으로 묘사하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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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하우스 내부에 두껍게 두른 마감재도 소음을 줄이데 한몫한다

 

아재들 눈 돌아갈만하네!

콜라라도 출시 전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그간 쉐보레의 행보를 봤을 때 ‘허걱’ 할만한 가격표를 달고 나올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출시 당일 받은 자료에는 "3,855만 원부터"라고 적혀있었다. 최상위 트림 ‘익스트림 X’를 사도 4,265만 원이다.

이 정도면 렉스턴 스포츠 칸 최상위 트림에 이런저런 선택사양을 아낌없이 집어넣은 가격과 교묘하게 겹친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디젤과 가솔린, 4기통과 6기통, 200마력 이하와 300마력 이상, 6단과 8단, (상대적) 트럭 느낌과 승용차 느낌, 호화로움과 깡통스러움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연비와 기름값까지 저울질할 게 많다. 둘은 보면 볼수록 참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러다 문득 콜로라도의 등장이 고마워졌다. 이걸 살까 저걸 살까의 문제는 분명 행복한 고민이니까. 분명 쉐보레는 렉스턴 스포츠를 콜로라도의 경쟁모델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자존심과 마케팅 의도를 걷어내고 보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체급이 다르긴 하지만, 경기장에 선수가 둘뿐이니 서로 다툴밖에.

콜로라도는 갖고 싶은 차였다. 신차로서의 신선함은 딱히 없었지만, 픽업으로서의 매력은 차고 넘쳤다. 화려하지 않지만, 진국 같은 차였다. 작고 빠릿한 차를 좋아하는 내 취향과도, 회사-집을 오가며 서울 시내에 사는 내 삶과도 거리가 멀지만 한 대 소유하고 싶더라. 일단 지르면 왠지 필요해질 것처럼. 손목시계도 있고 운동도 하지 않지만, 스마트워치가 사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콜로라도에 몰려들었던 아저씨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을지 모른다.

이광환 carguy@carla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