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승기 하단에 영상도 있어요!

"혹시 ‘베리 뉴’라서 ‘베뉴’인가?"

현대차의 새로운 소형 SUV 이름이 ‘베뉴(VENUE)’라는 얘길 듣고 처음 들었던 생각이다. 아, 맞다. ‘베리 뉴’는 얼마 전 쌍용이 티볼리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출시하며 썼던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베뉴와 티볼리 모두 ‘소형 SUV’ 바구니에 함께 담을 수 있는 차들이다. 체급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비슷하다. 우연히 연상됐는데 둘 다 SUV라니, 인기는 인기다. 이제 SUV는 세단을 밀어내고 당당히 주류 차종으로 자리 잡았다.

현대차가 SUV를 또 출시했다. 작년 12월 팰리세이드에 이어 반년 만이다. 이번엔 막내 SUV, 베뉴다. 이로써 현대차는 소형부터 준중형, 중형, 대형까지 촘촘한 SUV 라인업을 갖췄다.

코나, 투싼, 싼타페, 펠리세이드는 모두 지명에서 이름을 따온 반면, 베뉴는 ‘장소’라는 뜻이란다. 현대차는 소비자들이 베뉴라는 ‘곳’에서 어떤 경험을 하길 바랐을까?

 

작다고 얕보지마

첫인상은 참 다부지다. 덩치 작다고 얕봤다간, 어금니 꽉 물고 들이받을 기세다. 작을수록 강해 보이고 싶은 건 사람이나 차나 매한가지인가.

캐스케이딩 그릴과 컴포지트 헤드램프, 상어 지느러미를 닮은 C필러까지 현대 SUV가 지녀야 할 특징은 빠짐없이 챙기면서, 베뉴만의 개성까지 담아냈다. 현대는 이걸 ‘현대 룩’이라고 부른다. ‘대중소’ 디자인보다는 이 편이 훨씬 낫다.

그릴 내부는 십자무늬를 비롯해, 최상위 트림인 플럭스만을 위해 역삼각형 패턴도 마련했다. 십자무늬도 셔츠에 그려진 체크무늬 같고 캐주얼해 좋은데, 확실히 삼각형이 더 멋지긴 하더라. 둘 다 크롬의 반짝임을 한 톤 죽여, 촌스럽지 않다. 만약 반짝반짝했다면 얼마나 생뚱맞고 어색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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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럭스 전용 라디에이터 그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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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럭스는 지붕을 비롯한 차체 곳곳에 다른 컬러로 조합할 수 있다

다양한 색깔 조합은 베뉴에 발랄함을 한 스푼 더한다. ‘투톤루프’를 선택하면 10가지 차체 색깔을 기본으로 세 가지 강조색을 섞을 수 있다. 가능한 경우의 수는 총 21가지. 단, 이 경우 선루프는 적용할 수 없는데, 개성이냐 개방감이냐 그것이 문제다. 심지어 둘은 가격까지 39만 원으로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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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뉴의 다양한 컬러: 인텐스 블루 / 파이어리 레드 / 코스믹 그레이 / 크리미 그레이 / 더 데님 / 폴라 화이트 / 타이푼 실버 / 애시드 예로우 (좌측상단에서 시계방향)

전면 방향지시등에서 시작해 리어램프까지 반듯하게 이어지는 캐릭터라인은 베뉴 실외 디자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차체 중앙을 길고 깊은 주름으로 양분해 큰 키(스토닉보다 65mm나 높다) 때문에 자칫 불안해 보일 수 있는 여지를 줄이며, 동시에 속도감을 더한다. 바퀴와 엔진을 품은 아래 덩어리에 창문이 달린 위 덩어리를 얹어놓은 듯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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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SUV의 상징인 컴포지트 헤드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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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티큘러 렌즈가 적용된 리어램프

현대차는 베뉴를 소개하며 리어램프를 강조했다. 아닌 게 아니라, 유달리 빛을 영롱하게 발한다. 마치 강원도 밤하늘에 박힌 별들처럼. ‘렌트큘러 렌즈’를 세계 최초로 적용한 덕분이란다. 이름은 생소하지만 우리는 이미 렌티큘러 렌즈를 본 적 있다. 평면 책받침이나 카드인데, 좌우로 움직이면 그림이 바뀌는 그거 말이다.

 

내가 값이 싸지, 만듦새가 싸냐?

실내는 소형차답게 수수하고 합리적이다. 여기저기 만져지는 까끌까끌 플라스틱 촉감에선 호사스러움을 조금도 찾을 수 없지만, 운전대를 감싼 가죽은 의외로 촉촉해 최소한의 고급스러움을 챙겼다. 또 대단한 기능은 하나도 없지만, 꼭 필요한 건 빠뜨리지 않았다. 무엇을 달아서 칭찬받기보단, 딱 흠 잡히지 않을 만큼 덜어낸 실내다.

계기반과 운전대, 8인치 디스플레이 등은 그간 다른 현대차를 통해 익히 접해온 공용 부품. 반대로 공조장치 조작부는 현대차에서 처음 보는 디자인이다. 동그라미 세 개로 구성했는데, 좌우 다이얼을 돌리고 누르면 가운데 상태가 표시된다. 보기에도 예쁘고,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미니의 그것처럼 차와 ‘딱 떨어지는’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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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젤을 줄인 8인치 디스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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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승석 대시보드에 마련한 수납공간. 휴대전화가 딱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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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트림에서 '멀티미디어 내비 플러스2(142만 원)' 선택 시 적용되는 풀오토 에어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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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럭스는 실외 엑센트 컬러를 실내에도 적용했다

사소한 불만이라면, 오디오와 공조장치, 주행모드 다이얼을 돌리는 느낌이 좀 ‘싼티’난다. ‘차 급의 한계’를 고려해 그냥 지나치기엔 미련이 남아 적어본다.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냐고? 원래 소비자가 그렇다. 조금이라도 더 빼려는 게 기업의 생리이 듯,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게 소비자의 생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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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스토닉에는 있던 안전벨트 높이 조절 장치와 2열 USB포트, 베뉴에는 빠졌다

동급 기아 스토닉에는 있었지만 베뉴에는 없어진 것도 있다. 먼저, B필러에는 있던 1열 시트 안전벨트 높이 조절장치가 빠졌다. 벨트 높이가 몸에 맞지 않으면 목이 쓸려 부상이 커질 수 있으며, 평소에도 꽤 신경 쓰인다.

하나 더. 뒷자리 승객을 위한 USB포트도 사라졌다. 이제는 소형차라고 해서 USB포트에 인색할 수 없는 시대다. 설마 베뉴가 ‘혼라이프’를 내세웠기 때문에 뺀 건 아니겠지. ‘낄끼빠빠’라고 했던가? 이건 ‘뺄빼’의 실패 사례로 봐야겠다.

뒷자리 공간은 걱정했던 것보다 여유롭다. 큰 키 덕분에 무릎보다 머리 공간이 넉넉했고, 덕분에 답답하지 않았다. 1열 시트 아래 발끝을 충분히 밀어 넣을 수 있었고, 등받이도 적당히 기울어 편한 자세를 만들기 수월했다. 넓지 않지만, 그렇다고 좁지도 않은…… 공간마저 수수하고 합리적이다.

 

역시 IVT는 물건이구나

베뉴는 1.6리터 스마트스트림 4기통 가솔린 엔진에 IVT 변속기를 짝지었다. 한 지붕 배 다른 형제 기아 스토닉이 1.0리터 터보 가솔린과 1.4 가솔린, 1.6 디젤 엔진을 갖추고 변속기는 7단 DCT와 6단 자동을 마련한 것과 완전히 다르다. 한 그룹사의 동급 모델인데 서로 전혀 겹치지 않는 점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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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리터 스마트스트림 가솔린 엔진

베뉴의 파워트레인은 일찍이 기아 K3와 현대 아반떼를 통해 경험한 바 있다. 123마력의 최고출력과 15.7kgm의 최대토크도 완전히 동일하다. 그런데 K3와 아반떼는 분명 베뉴보다 윗급이 아닌가? 형의 심장을 물려받았다니 괜히 뿌듯하다.

몸무게(공차중량)를 볼까? K3가 1,255(모두 17인치 휠 기준), 아반떼가 1,280kg인 반면 베뉴는 1,215kg에 불과하다. 힘은 같고, 몸무게는 줄었으니 일단 제원상으로는 아래급이라고 꿀릴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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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은 15인치를 기본으로 17인치도 고를 수 있다

실제로도 베뉴는 경쾌하게 내달렸다. 작은 엔진으로 가벼운 몸무게를 산뜻하게 밀어내는 모습이 전형적인 소형차다. 그런데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 엔진 힘을 쥐어짤 때, 속도계 올라가는 과정이 전혀 답답하지 않다. 분명 그동안 내가 알던 이 급의 가속력보다 낫다.

특히 IVT는 경쾌한 달리기를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임의로 엔진회전수를 8단계로 쪼개며 마치 자동변속기인 척 자연스럽게 힘을 전달한다. 과거 무단변속기가 보여줬던 고무줄 늘어지는 듯한 이질감은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미리 알려주지 않으면 모를 수도 있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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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T는 역시 기대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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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모드는 노멀, 에코, 스포츠 / 2WD 험로 주행 모드는 스노우, 머드, 샌드가 있다

기어노브를 운전자 쪽으로 당겨 수동조작을 해도 만족감은 줄어들지 않는다. 운전자의 명령에 망설임 없이 빠르게 반응한다. 아무 생각 없이 손목을 딸깍했다가 씩 웃었다. 그러고 보니 과거 K3를 타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정도면 운전대에 시프트페들이 없어서 아쉬운데?” 무단변속기를 타면서 이런 말을 할 줄이야.

다만, 급가속 시 실내로 가감 없이 넘어오는 엔진음은 또 한 번 차 급의 한계를 실감케 한다. 엔진음 자체도 썩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닌데다, 크기도 커서 애처로운 절규로 들린다. 하긴, 베뉴를 몰며 이렇게 오른발을 끝까지 꾹꾹 눌러댈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고속도로에서 들려오는 노면 소음도 ‘딱 소형차’다. 제조 원가의 압박이 심한 소형차이기에 제원표에 드러나지 않는 흡음재를 인색하게 쓸밖에. 이해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더 조용한 SUV를 찾으면 현대는 코나를 보여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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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바퀴(좌)와 뒷바퀴(우) 모두 휠하우스 내부에 소음을 줄이기 위한 마감재를 덧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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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션빔 후륜 서스펜션

이 날 시승은 주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제한된 코스와 시간이라 더 속속들이 알기는 어려웠지만, 베뉴와 함께 한 달리기는 충분히 즐거웠다. 엔진과 변속기는 대만족, 다른 부분은 만족, 소음은 보통 정도랄까? 이 정도 주행성능이라면 엑센트가 아쉽지 않다.

 

바이 엑센트, 이제는 베뉴다

과거 스토닉을 몰고, 담백함에 참 기분이 좋았다. 베뉴도 비슷하다. 남의 시선보다 나의 만족을 중시하는 자에게 어울리는 차다. 대형차가 판매 상위를 휩쓰는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질문에 그랜저로 답하는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가치관이다. 베뉴의 대박이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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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용량은 355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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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열 시트를 눕히면 제법 평평한 공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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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인을 위한 PET 패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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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족을 위한 공기주입식 에어카텐트

세단에서 SUV로 대세가 옮겨가는 요즘, 이런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엑센트와 베뉴다. 엑센트는 시한부 선고를, 베뉴는 새 생명을 받았다.

본래 달리기는 SUV보다 세단이, 공간은 세단보다 SUV가 유리하다. 최신 SUV는 세단이 부럽지 않을만큼 주행성능을 끌어올렸지만, 세단은 절대 SUV보다 넓어질 수 없다. 베뉴는 엑센트만큼 잘 달렸고, 엑센트보다 예뻤으며, 엑센트보다 당연히 넓었다. 베뉴의 미래가 대박까지는 아니어도 꽤 밝아 보이는 이유다.

이광환 carguy@carla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