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르또삐-노”

아직 이태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왠지 현지인들은 포르토피노를 이렇게 읽을 것 같다. 같은 말이라도 왜 이태리어로 하면 멋있을까? 아페르타, 스페치알레, 트리뷰토, 로쏘…… 열린, 특별한, 헌사, 빨강이란 뜻인데, 알고 보면 별말도 아니면서 그냥 멋지게 들리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포르토피노의 전작은 캘리포니아T. ‘캘리포니아’는 미국, ‘포르토피노’는 이탈리아의 지명이다. 캘리포니아도 맑고 파란 하늘로 유명하지만 포르토피노 역시 날씨라면 세상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니, 그렇다면 어감상 포르토피노의 승이다. 역시 ‘캘리포니아’보단 ‘포르토피노’가 페라리 컨버터블에 더 잘 어울린다.

얼마 전 페라리 포르토피노와 함께 서울에서 강원도 인제까지 짧은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포르토피노의 붉은 차체와 검은 지붕, 여기에 경쟁이라도 하듯 미세먼지 없이 새파랗게 물든 하늘은 내 인생 최고의 드라이브를 선사했다. 

진즉 이렇게 만들지!

포르토피노가 캘리포니아T보다 나은 점은 이름 뿐이 아니다. 디자인도 훨씬 낫다. 역사상 멋없는 페라리가 어디 있었겠냐만, 캘리포니아T의 외모는 어딘가 아쉬웠다. 캘리포니아T 자체가 별로였다기 보다 페라리 전체 라인업에서 상대적으로 ‘막내스러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특히 무표정한 얼굴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슨 ‘못생긴 미남’도 아니고, 사나워 보이지 않는 페라리라니! 주범은 뚱한 눈매를 꼽고 싶다. 동시대 다른 페라리들도 세로형 헤드램프를 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정면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캘리포니아T와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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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캘리포니아T

2017년, 후속 모델 포르토피노의 사진이 처음 공개됐을 때 나는 속으로 외쳤다. ‘진즉이렇게 만들지!’ 이듬해 국내 출시현장에서 직접 보고, 나도 모르게 ‘우와~’라고 읊조렸음은 물론이다. 시승 당일, 다시 만난 포르토피노는 여전히 섹시했다. 가로로 바뀐 헤드램프는 독기를 품었고, 캘리포니아T의 살짝 살집이 붙어 보였던 차체도 기름기를 쪽 빼 탄탄하고 날렵해졌다. 그렇지! 모름지기 페라리는 이래야 한다.

앞바퀴 바로 뒤에 연결된 바람길은 포르토피노 디자인의 백미. 실제 구멍이 뚫린 검정(시승차는 이마저 카본이다) 파츠를 날개처럼 꺾인 차체로 감싸 안아 속도감과 입체감이 살아있다. 근데 가만…… 이 날개, 458 스페치알레와 라페라리 아페르타 등에 달려있던 날개 같은 변속기 버튼 뭉치랑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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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피노 앞바퀴 뒤에 달린 바람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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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 스페치알레의 기어버튼

바람길은 그 자체로도 빼어난 조형미를 자랑하지만, 한 걸음 물러나 대각선에서 보면 얼마나 전체 디자인에도 잘 녹아들었는지 알 수 있다. 옆면 캐릭터라인과 바람길의 시작이 앞 범퍼의 날카로운 가로 선과 라디에이터 그릴이었던 것. 얼굴 따로, 옆구리 따로였던 캘리포니아T와는 비교도 안된다.

헤드램프 양옆으로 뚫린 구멍을 비롯해 앞뒤 범퍼 바닥에 달린 날개, 보닛의 공기통로까지 포르토피노에는 무엇 하나 단지 멋있으려고 존재하는 요소가 없다. 윗급 페라리들에선 이게 당연하게 여겨졌는데, 포르토피노까지 그런 걸 보니 ‘역시’ 페라리다. 포르토피노가 막내이긴 하지만, 조금도 허술함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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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램프 옆에도 가늘게 바람길에 뚫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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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열기를 식히기 위한 보닛 송풍구

지붕은 두 조각으로 나뉘어 트렁크에 차곡차곡 접혀 들어간다. 열면 스파이더, 닫으면 쿠페인데, 어느 형태건 변신을 위해 실루엣을 양보하지 않았다. 열면 연 대로, 닫으면 닫은 대로 애초부터 그 상태만을 위해 만든 듯 매끈하다. 변신은 시속 40km 이하에서 14초가 걸린다.

포르토피노는 아무리 날 선 시선으로 훑어봐도 ‘여긴 차라리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겨우 찾은 건, 앞 펜더에 뾰루지처럼 박힌 방향지시등과 도어핸들 아래 굳이 따로 뚫어놓은 열쇠 구멍 정도? 다른 페라리도 다 이런데, 이건 자존심일까? 똥고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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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개폐 여부와 상관없이 멋진 실루엣을 자랑한다

막내가 이 정도라니!

타기도 전에 너무 ‘지렸다.’ 감탄은 이쯤 하고 이제 시동을 걸어보자. 운전대 왼쪽에 박힌 빨간 시동버튼을 눌러 3.9리터 V8 터보 엔진을 깨운다. “아앙!” 양쪽 엉덩이에 달린 트윈 팁 배기구를 통해 굵고 거친 기침을 토한다. 아, 시동만 걸었는데 또 지렸다.

그런데 아무리 운전자세를 고쳐 앉아도 운전대와 계기반 높이가 다소 껑충하다. 시트는 낮게 깔려 마음에 쏙 드는데, 운전대와 계기반이 높아 전방 시야를 방해한다. 그동안 다른 페라리들을 타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뜻밖이다. 이날 함께 동승한 기자도 나중에 똑같은 소리를 했으니, 나만 영 잘못 느낀 건 아닌 듯하다. 물론 달리기 시작하면 이따위 소소한 이질감은 금세 잊힌다.

페라리는 오른쪽 시프트패들을 당겨 1단을 넣고 출발할 수 있다. 운전대 4시 방향에 달린 ‘마네티노’ 스위치는 ‘컴포트’ 모드로 설정했다. 참고로 컴포트 모드는 페라리 라인업 중 포르토피노와 GTC4 루쏘, GTC4 루쏘 T에만 있다. 대시보드 중앙에 달린 10.2인치 터치스크린도 마찬가지. GT 모델만을 위한 배려다.

시내에서 살살 달리니 생각보다 꽤 편하고 조용하다. 이 정도라면 페라리라고 해서 겁먹고 벌벌 떨 필요 없겠다. 평소에 흔히 타는 국산 중형차와 비슷한데, 차체가 낮고, 실내가 전부 가죽이며, 승차감이 훨씬 단단한 정도의 차이다. 응? 쓰고보니 많이 다르긴 하구나. 하긴, 이렇게 멋진데 어찌 타는 내내 기분이 같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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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피노의 마네티노 스위치는 '컴포트'가 기본이다

방금 편하다고 했는데, 승차감은 정말 좋다. GT카로서 포르토피노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잘 달리기로 유명한 고가의 스포츠세단을 타면서 단단하면서 묵직하고 그 와중에 퉁탕거리지 않는 하체가 인상 깊었던 적이 있었다. 포르토피노도 비슷한데, 그보다 조금 더 단단하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정도의 포장상태에서 장거리도 아무 걱정 없이 다녀올 수 있는 수준이다. 단, ‘우리나라 정도의 포장상태’는 흥부 저고리같은 누더기 길이나, 뒷동산만한 과속방지턱이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 이때만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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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하지 않으면 앞 스플리터를 긁기 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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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피로드 버튼

아, 그리고 운전대 왼쪽 ‘범피로드’ 버튼을 누르면 일시적으로 울퉁불퉁한 노면을 매끈하게 다림질해준다. 얼마나 효과 있을까 싶었는데, 차이가 확실하더라. 지붕 열고 미끄러져 달리던 중 노을을 감상 중인 옆자리 동승자의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다면 적극 활용하자.

운전대도 나긋나긋하다. 평소 흔하게 몰던 승용차들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 답력은 비슷하지만, 정교하게 반응하는 앞머리는 차원이 다른 일체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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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편한 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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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자리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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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송풍구 사이 벌집 모양 구멍에서도 에어컨 바람이 은은하게 나온다

‘편안한 페라리’가 아무리 좋더라도, ‘심심한 페라리, 둔한 페라리’는 절대 있을 수 없다. 포르토피노가 아무리 GT카라 해도, 페라리는 페라리다. 마음먹고 가속페달을 밟으면, 살살 달릴 때와는 전혀 다른 차가 된다. 마네티노 스위치를 ‘스포츠’로 돌렸다.

조용했던 엔진음은 어느덧 포효로 바뀌고, 커지는 엔진음과 함께 등을 떠미는 가속으로 시야를 좁게 만든다. 그 상태로 잠시 달리다 보면 어느덧 운전대를 쥔 손도 땀으로 촉촉해진다. 역시 스포츠카요, 과연 600마력이다.

고백컨대, 나는 이날 터널에서 주변 차들에게 민폐를 끼쳤다. 일부러 창문을 내렸고, 왼손 끝(-)을 까딱였다. 내려 문 기어는 RPM 바늘을 튕겨 올렸고, 터널은 포르토피노의 배기음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기어를 오르내리면 한방에, 오른발을 조작하면 미세하게 음정 조절할 수 있으니 마치 악기를 연주하는 기분이다. ‘관종’으로 보일 여지가 높았겠으나, 순수하게 나만의 즐거움을 위한 행위였다. 함께 터널을 달렸던 다른 운전자들도 부디 소음이 아닌 음악으로 느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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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마력, 77.5kgm를 발휘하는 3.9리터 V8 터보 엔진

포르토피노의 배기음은 분명 작년에 경험했던 812 슈퍼패스트와 달랐다. 12기통과 8기통, 자연흡기와 터보의 차이가 확연하다. 포르토피노가 더 굵고 거칠다. 굳이 고르라면 분명 12기통 자연흡기가 좋으나, 솔직히 당시의 나는 8기통 터보 소리를 즐기기에도 바빴다. 12기통 페라리를 소유했다면 모를까, 평소 4기통 디젤을 타는 나에겐 이미 둘 다 충분히 황홀했으니까. 엔진 회전수가 7,000RPM을 넘고, 운전대 상단에 파란 불이 들어오면 머릿속이 몽롱해진다. 마약을 해보진 않았지만, 아마 비슷한 기분이 아닐까?

벌써 목적지에 다 왔다. 지붕을 닫고 흥분을 가라앉히니 포르토피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발톱을 감춘다. ‘오토’로 설정한 변속기도 부지런히 그리고 부드럽게 바통을 넘기며 엔진을 다독인다. 조금 전, 레드존 부근에서 오른손을 까닥이면 ‘우아아~ 빠박’하고 바통을 다음 기어에 꽂아버리던 게 생각나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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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 'PS'는 이태리어 약자로 런치컨트롤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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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인치 휠을 가득 채운 앞바퀴 390mm 카본세라믹 디스크로터와 브램보 6피스톤 캘리퍼

눈에 착, 손에 착, 귀에 착

포르토피노 주인들은 좋겠다. 주변의 부러움 섞인 시선과 페라리만이 줄 수 있는 운전재미, 유유자적 ‘뚜따’의 낭만을 포르토피노 한 대로 다 즐길 수 있다. 능력만 된다면 이만한 장난감이 또 있을까?

이미 생김새만으로도 ‘게임 끝’인데, 달려보면 아직 끝이 아니다. 능청스럽게 매력을 하나하나 꺼내놔 얄밉다. 외모는 눈에, 달리기는 손에, 소리는 귀에 착 감긴다. 눈과 손과 귀에 착! 달라붙은 포르토피노의 매력은 한동안 떼어내기 쉽지 않겠다.

이광환 carguy@carla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