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V4?

솔직히 관심 밖의 차였다. 뚜렷한 개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디자인이 기억에 남지도 않았으며, 주행성능마저 무난한 소형 SUV로 알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니 많이 팔리긴 했나 보다. 1994년 1세대가 등장한 이래, 2018년까지 896만대가 팔렸다니 대단하긴 하다.

이제는 많아도 너무 많아진 도심형 소형 SUV. 저마다 장점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인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최근 토요타가 5세대로 진화한 ‘뉴 제너레이션 RAV4’를 국내 출시하고 시승행사를 열었다. ‘신세대 RAV4’라…… 세대가 바뀔 정도면, 이전과 완전히 선을 그을 만큼 극적인 변화가 담겼겠지?

크로스 옥타곤

신형 RAV4가 이전 RAV4를 보고 가장 세대차이를 크게 느낄 요소는 바로 디자인이다. 나란히 세워두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한핏줄인 건 짐작하겠는데,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다. 매끈함 대신 우락부락함을, 속도감보다는 단단함을 추구했다. 그렇다고 지프 랭글러나, 벤츠 G-클래스처럼 네모 반듯한 상자 형태는 아니다.

alt
4세대 RAV4
alt
5세대 RAV4

시승에 앞서 열린 출시행사에서 토요타는 RAV4에 ‘SUV의 감동’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이를 위해 정통 SUV가 가지고 있던 오프로드 감성을 강화하되, 투박하지 않고 섬세함을 유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너도나도 온로드 중심의 샌님 같은 SUV만 만들어 식상해졌기 때문이란다. 그동안 내가 RAV4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이유를 정확히 꿰뚫은 분석이다.

alt
크로스 옥타곤

 

alt
하이브리드 AWD에서 선택 가능한 다섯 컬러

신형 RAV4의 디자인 테마는 ‘크로스 옥타곤’. 차 전체를 두 개의 커다란 팔각형으로 교차시키는 개념이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봐도 이곳저곳에서 다각형을 발견할 수 있다. 헤드램프와 안쪽 꾸밈, 라디에이터 그릴과 내부 패턴, 휠하우스 등 다각형으로 이루어진 많은 부분들이 벌집처럼 차곡차곡 맞붙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D필러를 타고 내려와 리어펜더를 감싸고도는 부위다. ‘크로스 옥타곤’을 이루는 핵심 선이며, D필러에 입체감을 부여해 승객을 보다 안전하게 보호해줄 것 같다. 또 아래로 꺾인 후에는 리어펜더와 만나 볼륨을 살리고, 바로 아래 뒷바퀴 휠하우스 사이에 면을 확보해 단단한 허벅지를 연출한다.

alt
D필러를 타고 내려와 리어펜더로 이어지는 선

바퀴와 차체 하단을 감싼 플라스틱에도 의도적 변형이 들어갔다. 휠하우스 플라스틱은 이전 세대와 달리 원형이 아닌 각진 형태로 마감해 오프로더 느낌을 살렸다. 바닥과 이어지는 부분을 끊고, 차체 하단 플라스틱 가운데를 볼록 올린 건 모두 최저지상고가 높아 보이도록 하기 위함이다. 다리가 길어 보이도록 바짓단을 짧게 접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어떻게 하면 실제보다 낮게 보일지 고민하는 여느 신차들과 달라 흥미롭다. 이런 흥미로움과 ‘SUV 다움’이야말로 신형 RAV4가 의도했던 바 아니었을까?

반면, 실제 높이는 다른 신차들이 보통 그렇듯 RAV4도 20mm 낮아졌다. 전체 길이는 5mm 줄었지만 휠베이스는 30mm 늘었다. 일반적으로 네 바퀴 바깥 부분이 줄어들수록 스포티해 보이는데, RAV4가 딱 그렇다. 폭도 10mm 넓어져 더 그렇다.

넉넉한 공간

실내는 넓고 쾌적하다. 낮게 깔린 대시보드와 탁 트인 시야가 환한 실내를 만든다. 각종 기능은 사용이 편하고 마땅한 곳에 자리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라도 익숙하게 조작할 수 있다. 사나운 겉모습은 호불호가 갈릴지라도, 현대적일 뿐 특이하지 않은 실내는 누구도 불만 없겠다.

크로스 옥타곤 테마는 실내에도 이어진다. 가운데 송풍구 형태를 비롯해 대시보드와 기어노브 주변, 도어트림에 들어간 은색 장식의 꺾임에서 다각형이 보인다. 다만 실내에서는 ‘보기 좋은’ 디자인보다, ‘쓰기 편한’ 디자인을 추구했는지 꽤 자제한 느낌. 덕분에 튀지 않으면서도 겉모습과의 일관성은 챙겼다.

소재도 딱 차급에 어울리는 수준. 대시보드 상단과 센터콘솔 뚜껑을 덮은 가죽이 호사스러운 듯하면서도, 도어트림은 팔이 닿는 곳까지만 말랑말랑하게 처리해 딱 차값만큼 배려했다. 시승 중 전체적인 소재 관련 불만은 없었다. 물론 황송함도 딱히 없었고.

alt
대시보드 좌우 수납공간

 

alt
대시보드 상단을 가죽으로 감쌌다

무난한 실내에서 유난히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다. 먼저 모니터 크기. 가운데 디스플레이가 고작 7인치다. 8인치를 쓰던 차들도 10.25인치 와이드로 바꿔 다는 추세에 7인치가 웬 말인가. 요즘 잘 쓰지 않는 상단 CD플레이어 빼고, 좌우 베젤 면적을 줄이면 공간은 충분하다.

alt
7인치 모니터는 아쉽다
alt
소용돌이 패턴의 고무 다이얼

안드로이드 오토와 애플 카플레이 둘 다 지원하지 않는 점도 아쉽다. 이들은 자동차가 점점 ‘바퀴달린 IT기기’가 되어가는 마당에 쓰임새가 점점 늘어가는 기능이다. 심지어 순정 내비게이션이 국산 브랜드 대비 좋지 않은 수입차에겐 필수다. 요즘 몇몇 일본차들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보노라면, 과거 기자가 어렸을 때 ‘전자왕국’으로 불리던 나라 제품이 맞나 싶다.

그 와중에 USB 포트는 넉넉히 챙겼다. 센터패시아 무선충전 패드 앞에 하나, 센터콘솔 안에 둘, 2열 송풍구 아래 둘, 총 5곳에 마련했다. 내 휴대전화 밥 주자고, 다른 사람 휴대전화 숟가락 뺏을 일은 없겠다.

alt
센터패시아 하단 무선충전 패드
alt
넉넉한 USB 포트

동급 SUV 트렁크 용량은 대략 400L 후반에서 500L 중반이지만, RAV4는 580L를 확보했다. 2단으로 높이 조절(55mm) 가능한 트렁크 바닥을 낮게 끼웠을 때 기준이다. 키가 큰 짐은 바닥을 낮춰서 싣고, 평상시엔 문턱과 바닥이 평평하도록 위로 올려 쓰면 된다. 젖은 짐은 바닥을 뒤집자. 방수처리된 면이 나온다. 뒤 범퍼 아래를 발로 차 해치를 열거나, 열리는 각도를 저장하는 건 기본.

alt
키 큰 짐을 위해 트렁크 바닥을 낮춰 끼울 수 있다
alt
트렁크 바닥을 뒤집으면 방수처리된 면이 나온다
alt
2열 시트 등받이를 접으면 트렁크와 거의 평평하게 이어진다
alt
버튼을 오래 누르면 4번의 비프음과 함께 현재 개폐각도가 저장된다

편안한 승차감, 탄탄한 기본기

이제 거리로 나가보자. 시야가 참 좋다. 시트포지션이 껑충한 것도, 벨트라인이 낮은 것도 아닌데 차 크기를 가늠하기 쉽다. 보닛 끝 꺾임을 세밀하게 가다듬고, A필러와 사이드미러 사이에 작은 삼각 창을 내는가 하면, 잘 신경 쓰지 않는 리어 쿼터글래스(C필러와 D필러 사이) 주변 기둥까지 각을 준 덕분이다.

시승차는 RAV4 하이브리드 AWD. 가솔린과 하이브리드 2WD, 하이브리드 AWD의 세 가지 트림 중 최상위 모델이다. 첫 느낌은 여느 토요타 하이브리드 형제들과 비슷하다. 스르르 모터로 출발한 뒤 가속페달을 조금 깊이 밟거나, 오르막길을 만나면 곧바로 시동이 걸리며 힘을 보탠다. 엔진 기지개 켜는 소리는 조금만 귀 기울이면 들리지만, 차의 거동만 놓고 보면 도통 알아채기 어려울 만큼 자연스럽다.

주행 중 계기반과 센터디스플레이를 통해 보이는 엔진과 모터, 배터리, 바퀴 사이의 에너지흐름 역시 다르지 않다. 가속 중인지 감속 중인지, 가속페달은 얼마나 깊이 밟았는지, 배터리에 전기가 얼마나 남았는지, 현재 속도는 얼마나 빠른지 등 수많은 상황을 종합해 실시간으로 바뀌는 역할 분담이 현란하기 그지없다. 열심히 들여다봐도 결국 그냥 알아서 잘 해주려니 싶고, 그 결과는 15.5km/L의 복합공인연비가 증명한다.

alt
복합공인연비: 15.5km/L

힘은 충분하다. 222마력에 공차중량 1,720kg이면 충분히 여유로운 수준이고, 전기모터가 초반부터 치고 들어와 가속이 옹골차다. 하이브리드 모델에 들어간 e-CVT 변속기(가솔린은 8단 자동)도 효율 챙긴답시고 멍 때리는 일 없이 제 몫을 다한다.

RAV4에 들어간 엔진은 2.5리터 4기통 가솔린 ‘다이내믹포스(D-4S)’ 한 가지다. 가솔린 모델은 엔진밖에 없으니 207마력, 하이브리드 모델은 전기모터가 도와주니 178마력으로 설정했다. 직접분사와 간접분사를 모두 쓰고, 보어와 스트로크를 조절하는 한편, 흡기포트 입구를 가다듬는 등 많은 기술을 버무려 40%가 넘는 열효율을 자랑한다. 일반 가솔린 엔진의 열효율은 25-30%에 불과하다.

alt
가솔린 리터 4기통 '다이내믹포스(D-4S)' 엔진

다만, 급가속 시 엔진 회전수를 쭉 올리면 다소 거친 엔진 회전질감이 흥을 깎아먹는다. 이때 엔진 음색도 박력과 거칢의 중간 어디쯤으로 들린다. 다행히 꼼꼼한 방음으로 풍절음을 포함한 전체 음량은 크지 않다.

기어노브 왼편에는 주행모드 다이얼을 마련했다. 왼쪽으로 돌리면 에코, 오른쪽으로 돌리면 스포츠, 어느 모드에 있건 가운데를 누르면 노멀이다. 직관적인 조작이 가능해 렉서스를 탈 때도 똑같이 칭찬했던 부분이다. 주행모드 변경에 따른 스로틀과 변속기 반응도 차이가 확실하다. 각 모드별로 다이얼 가운데가 계기반과 색을 바꾸는 것도 재미있다.

alt
스포츠 모드로 설정하면 다이얼이 붉게 물든다

터프하지만, 네모 반듯하지 않은 외모처럼 하체감각도 탄탄하지만, 부드러움을 잃지 않았다. 아니, 부드럽지만 탄탄함을 잃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시승행사에 동행했던 개발 담당자도 승차감에 더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으니까.

시내에선 자잘한 요철을 잘 걸러주었고, 고속도로에 올라선 급차선 변경에도 좌우 쏠림을 제법 억제해냈다. 스프링과 댐퍼를 능숙하게 조화시킨 덕도 있지만, TNGA의 장점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결과다.

TNGA(Toyota New Global Architecture)는 토요타의 새로운 모듈러 플랫폼. RAV4는 캠리, 아발론, 렉서스 ES 등 전륜구동 기반, 가로배치 엔진 구조의 중형급 모델들과 함께 TNGA-K를 쓴다. 신형 RAV4가 전작에 비해 몸무게는 80kg 줄이면서, 차체강성은 57% 향상시킬 수 있었던 이유다. TNGA에 꾸준히 물려 쓰고 있는 후륜 더블위시본 서스펜션도 RAV4의 온로드 주행성능을 높이는데 한몫한다.

이날 시승행사에는 오프로드 코스도 포함돼 있었다. RAV4 시승에 오프로드라고? 아무리 RAV4가 SUV라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다. 태생부터 도심형 SUV인 RAV4가 험로를 제대로 달릴 수 있을까? 의심이 앞섰다.

토요타가 굳이 오프로드 코스를 마련한 건 ‘트레일 모드’와 개선된 ‘E-Four’ 시스템을 자랑하기 위함이다. 코스는 단순했다. 모글과 언덕, 사면 경사로, 자갈길 정도로 구성했다.

먼저 모글에 들어섰다. 대각선 방향으로 바퀴가 공중에 뜨자 하염없이 헛발질을 하며 앞으로 갈 줄 모른다. 기어노브 옆 ‘트레일’ 버튼을 누르자, 헛도는 바퀴에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잡으며 접지력이 살아있는 바퀴로 구동력을 보내 꾸역꾸역 전진했다. 꼭 이렇게 극단적으로 연출하지 않더라도, 겨울에 빙판을 만나 비슷한 상황에 빠진다면 참으로 고마운 기능이 아닐 수 없다. ‘뭐 얼마나 쓸 일 있겠어?’싶다가도, 한 번 겪어보면 안다.

alt
험로 탈출 시 접지력을 확보해주는 트레일 모드

언덕에서는 E-Four 시스템을 체험했다. ‘E-Four’ 시스템은 뒷바퀴와 연결된 별도의 모터를 통해 네 바퀴를 모두 굴리는 AWD 시스템. 트랜스퍼 케이스와 드라이브 샤프트를 통해 엔진 힘을 뒤로 보내는 전통적인 사륜구동 방식과 다르다. 간단한 구조로 빠르고 정교하게 뒷바퀴 구동력을 조절할 수 있으며, 추가된 후륜 모터까지 발전기로 활용해 제동 시 보다 많은 전기를 거둬드리는 부가적인 장점도 있다.

기존 RAV4에도 E-Four 시스템은 있었지만, 이번엔 뒤 모터와 감속기어를 손봐 뒷바퀴 토크가 30% 강해졌다. 덕분에 가파른 언덕에서 멈췄다 출발해도 한결 가뿐하게 치고 올라간다는 게 토요타의 설명이다. 솔직히 구형과 신형을 연이어 갈아타면 모를까, 그 차이를 느낄 수는 없었다. 내 몸에 G포스 계측기가 달린 것도 아니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RAV4는 도심형 SUV다. 오프로드보다는 온로드에서 한결 활기차니까. 그런데 오늘 보니 ‘도심형’ 뒤에 ‘SUV’도 당당히 붙일 수 있겠더라. 다 같은 ‘도심형 SUV’라도 ‘SUV’로 부르기 민망한 차들과 확실히 달랐다. 토요타가 신형 RAV4에 추구했다는 ‘SUV의 감동’과도 통하는 바다.

기본기는 기본! 외모는 어머?

출발지로 돌아왔을 때, 계기반에 찍힌 연비는 14.1km/L. 비록 복합공인연비보다는 낮았지만, 이만해도 준수한 결과다. 성인 세 명이 탔고, 연비 높이려고 얌전히 달리지도 않았으니. 실제로 이날 나보다 좋은 연비를 기록한 이들도 많았다.

alt
긴급제동보조, 다이내믹 레이더 크루즈 컨트롤, 차선 추적 어시스트 등의 안전장비

편안한 승차감, 넓은 공간 그리고 훌륭한 연비. 신형 RAV4는 최신 SUV로서 갖춰야 할 세 덕목을 충실히 구현했다. 확실한 기본기에 신세대다운 디자인으로 강열한 첫인상도 챙겼다. 높은 판매량으로 쌓아온 인지도와 신뢰도도 충분하다. 다만 구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천장 조명은 ‘옥에 티’.

가격은 RAV4 가솔린이 3,540만 원, RAV4 하이브리드 2WD가 3,930만 원, 시승차로 나왔던 RAV4 하이브리드 AWD가 4,580만 원이다.

아래는 RAV4 시승영상.

디자인 살펴보기

주행 1부

주행 2부

 

이광환 carguy@carlab.co.kr

Copyrightⓒ 카랩. 본 기사의 무단 복제 및 전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