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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까지 타고 갈 A380

아직은 쌀쌀한 봄날 아침, 나는 독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생전 처음 유럽 방문이자 상상만 하던 독일 구경이라 설렘이 앞섰지만, 이내 여행길이 아님을 떠올리며 긴장감이 뒤따랐다.

이번 독일 출장에는 MAN 공장 두 곳을 둘러보는 일정이 포함돼 있었다. 뉘른베르크 엔진 공장을 먼저 구경하고, 뮌헨으로 이동해 트럭 조립라인을 살피는 순서였다. 독일도, 자동차 공장도 모두 처음이라 출장 기간 내내 보고 듣고 느낀 모두가 새로움과 신기함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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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11시간 8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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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기차역

뉘른베르크는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주의 도시이며, 상공업이 발달했다. 회사 이름 ‘MAN’의 N도 뉘른베르크(Nurnberg)의 N이다. MAN이 뉘른베르크에 처음 터를 잡은 건 1841년. 무려 170여 년 전이다.

당시의 회사 이름은 클레트(Klett)였는데, 훗날 1898년 아우스부르크 기계제작소(Maschinenfabrik Augsburg)와 합병해 오늘날 MAN의 기초를 이루게 된다. 디젤의 아버지, 루돌프 디젤이 1897년 자신의 첫 디젤 엔진을 성공시키기까지 후원했던 기업도 아우스부르크 기계제작소였다. 디젤 엔진과 MAN은 이때부터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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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공장 입구의 DM35 디젤 엔진, MAN이 1908년 만들었다

이름 얘기가 나온 김에 잠깐 ‘MAN’이라는 회사명에 대해 짚고 넘어가 보자. 보통 국내에서는 MAN을 가리켜 ‘만’이라고 부른다. 국내 법인의 정식 명칭도 아예 ‘만트럭버스코리아’로 정했을 정도. ‘맨’이라 안 읽는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우리나라 아닌 다른 곳에서는 ‘만’이라고 하면 아무도 모른다. 독일 현지인들은 ‘엠아엔’이라고 부르며, 차라리 ‘엠 에이 엔’이라고 하면 알아듣는다. MAN은 독일어로 ‘Maschinenfabrik Augsburg-Nurnberg’의 머리글자. 우리말로 하면 ‘아우스부르크와 뉘른베르크의 기계제작소’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견학을 시작하기 앞서, 공장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MAN은 1915년부터 처음 트럭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뉘른베르크 공장에서 엔진을 만든 것만 해도 100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조그만 철공소였던 곳이 지금은 4,000명 넘게 일하는 거대 공장이 됐다. 뉘른베르크에서 가장 큰 일터로 지역 경제에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현재 뉘른베르크 공장은 온로드와 오프로드 차량용을 비롯해 선박과 발전용 디젤 엔진을 생산 중이다. 엔진의 종류는 용도에 따라 4기통에서 12기통, 50마력에서 2,000마력까지 다양하다. 공장 소개를 듣고 나오자, 앞에는 MAN에서 1917년에 만들었던 ‘Typ 1580A’ 엔진과, 최신 ‘D38’ 엔진이 나란히 전시돼 있었다. 3.7리터와 15.2리터, 12마력과 640마력 차이를 보이는 두 엔진은 뉘른베르크 공장의 발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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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1924년에 생산한 'Typ 1580A' 엔진 / 12마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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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생산 중인 D38 엔진 / 540, 580, 640마력 버전이 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본격적으로 공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엔진이 태어나는 첫 단계, 크랭크케이스를 캐리어에 장착하는 과정이다. 크랭크케이스는 엔진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엔진블록에서 아랫부분을 가리키며, 크랭크샤프트를 품는 곳이다.

이때, 로봇은 조립 전 크랭크케이스를 초음파 테이블에 올린다. 초음파를 통해 부품에 붙은 파티클(미세 입자)을 제거하기 위함인데, 공장을 둘러보는 동안 정밀도를 요하는 공정에서 수차례 더 목격할 수 있었다. 사람 대신 로봇을 쓰는 이유에도 부품의 상당한 무게뿐 아니라, 파티클 발생을 최소화시키려는 목적이 크다.

바로 옆에서는 로봇이 크랭크케이스에 들어갈 크랭크샤프트와 커넥팅로드, 베어링를 다루고 있었다. 커넥팅로드를 종류에 맞게 구분하고, 들어 옮기며, 카메라를 통해 불량을 검사하는 과정 역시 모두 로봇이 담당하고 있었다. 물론 그 로봇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건 사람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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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립 전 품질 검사 중인 커넥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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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립은 로봇의 몫

베어링은 모두 전용 트레이에 끼워져 이동, 보관한다. 베어링들 사이에 공간을 둬 마찰로 인한 파티클 발생을 피하기 위함이다. 기존엔 서로 포개진 채 다루던 걸 2016년 유로6c 기준에 대응하면서 바꿨다. 커넥팅로드에 베어링을 조립하기 전, 간섭이 생길 수 있는 주변 나사에 플라스틱 보호대를 끼우도록 한 것도 같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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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링이 나사산을 긁지 않도록 플라스틱 커버를 씌운다

이 당시 MAN은 베어링을 납이 포함되지 않은 소재로 교체했다. 덕분에 환경오염을 줄이고 엔진오일 교환 주기도 10만에서 14만 km로 늘릴 수 있었지만, 어디 세상 일이 장점만 있던가. 조립 공정 중 엔진의 오일 압력이 높은 곳에 들어갈 수 있는 파티클을 600마이크로미터 이하로 줄여야 하는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뉘른베르크 공장에서만 3,500만 유로(약 458억 원)를 투입했다. MAN 자체 조립 공정은 물론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와 운송 과정까지 폭넓은 변화가 필요했다. 파티클이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은 스티커로 봉인 후 조립 직전 제거하도록 했고, 작업자들은 수시로 끈끈이 롤러에 손을 문지르게 했다. 각종 차량이 드나드는 공장 입구는 바닥에 솔을 설치해 오염물질을 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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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클 유입을 막기 위한 스티커는 조립 직전 제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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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끈이 롤러

수백 kg은 족히 나가는 엔진을 생산 흐름이 맞춰 이동시키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더구나 트럭과 버스에 들어가는 엔진은 크기와 무게를 승용차와 비교할 수 없다. 이때 등장하는 이름이 있었으니, AGV다. Automated Guided Vehicle의 머리글자인데, 일종의 ‘바퀴 달린 자동 팔렛트’를 떠올리면 비슷하다.

AGV는 생산 라인에 고정돼 있지 않고 개별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유연성을 더할 수 있다. 가령 한 엔진에 문제가 생기면 해당 AGV만 따로 빼서 재작업 공간으로 이동시킬 수 있어 전체 라인의 흐름에 영향을 줄일 수 있다. 덕분에 생산량도 늘어서, 기존에는 시간당 24개 엔진을 만들 수 있었다면 지금은 27개가 됐다. MAN은 향후 2024년까지 AGV 운용 대수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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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내부 전경 / 아쉽지만 AGV 사진은 없다

올바른 토크로 엔진 나사를 조이는 일은 내구성과 성능, 일관된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일 중 하나. MAN은 엔진 조립 중 모든 토크 값을 자동으로 저장하고 있었다. 어차피 로봇이 조립하고 일정한 값으로 나사를 조일 텐데 굳이 저장할 필요가 있냐는 질문에 "신뢰도를 확보하고 불량 발생 시 문제를 추적하기 위함"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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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린더헤드와 크랭크케이스가 만나는 중

끝으로, 완성된 엔진은 테스트 절차를 거쳐야만 뉘른베르크 공장 문을 나설 수 있다. 테스트는 콜드테스트와 핫테스트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름 그대로 단순히 차갑고, 뜨거운 테스트는 아니다. 약식 테스트와 정식 테스트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

먼저 콜드테스트는 모든 엔진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연료 라인에 공기를 빼고 연료를 주입한 뒤 140초 동안 엔진을 가동한다. 1,200RPM까지 회전수를 올리며 그 사이 ECU를 비롯해, 흡기-폭발-배기 압력 등을 검사한다. 마이크와 레이저를 사용해 NVH(Noise 소음, Vibration 진동, Harshness 불쾌감)도 살핀다. 필요한 연료는 약 2.5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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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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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테스트

반면 핫테스트는 임의로 선정한 2%만 진행한다. 단, 새로운 엔진이거나, 일부 부품을 개선했다면 각각 초기 400대와 100대는 전량 핫테스트를 거친다. 배기 매니폴드를 제거하고, 와이어링 하네스와 냉각장치를 부착하면 준비 끝.

핫테스트는 1,080초(18분) 동안 진행한다. 그동안 엔진의 힘을 최대로 끌어내거나, 6분간 총중량(설계상 사람과 화물까지 모두 실은 무게) 상태와 같은 큰 부하를 걸어주기도 한다. 콜드테스트에 비해 훨씬 가혹하다. 당연히 연료 소모량도 30리터로 훨씬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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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테스트

콜드테스트는 핫테스트에 비해 현대적인 방식이다. 시간과 연료 사용량을 아낄 수 있고, 비용도 80유로(약 10만 6천 원)나 덜 든다. 그렇다고 콜드테스트만 할 수는 없는 노릇. 핫테스트로만 가려낼 수 있는 불량도 있기 때문이다.

공장 견학을 시작할 때, 크랭크케이스에서 시작한 엔진은 공정을 거칠수록 실린더와 피스톤, 밸브와 터빈, 전선과 파이프 등이 붙어가며 점점 엔진 형태를 갖춰갔다. 한낱 의미 없는 쇠뭉치들이 모여 인간의 삶을 유익하게 하는 복잡한 기계로 재탄생하는 과정이 신기하기만 했다. 화석연료를 적당한 압력과 온도에서 폭발시켜 수백, 수천 마력을 안정적으로 얻어내는 장치는 하나의 생명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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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누비게 될 트럭과 버스의 심장

다음은 뮌헨 공장을 둘러볼 차례다. 뉘른베르크에서 만든 엔진을 이식해 완성차를 만드는 곳이다. 더 ‘자동차 공장’다운 모습을 보일 터. 집채만 한 트럭은 어떻게 만들까?

이광환 carguy@carla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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