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를 노리듯 치켜뜬 눈매, 육감적인 캐릭터라인, 엉덩이까지 이어진 날렵한 지붕 선…… 문 2개짜리 날렵한 스포츠 쿠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지난해 제네바모터쇼에서 푸조가 공개한 세단, 508 얘기다.

푸조는 이번 2세대 508을 작정한 듯 스포티하게 만들었다. 멋과 실용성은 야식과 다이어트처럼 거리를 좁히기 쉽지 않은 개념. 넉넉한 공간이 중요한 전륜구동 중형 세단을 이렇게 스포티하게 만들기란 쉽지 않다. 마음먹기도, 기술적으로도 그렇다.

더구나 푸조는 이런 차, 저런 차, 큰 차, 작은 차 다 만드는 브랜드가 아니다. 해치백과 SUV 각 3종, 그리고 508이 전부다. 그 중 508은 푸조 라인업의 꼭짓점이자 유일한 세단이다. 쓸만한 실용성과 적당한 멋을 아울러 정공법을 써야 마땅해 보이지만, 푸조는 파격을 택했다. 적어도 첫인상은 어지간한 스포츠카 부럽지 않을 만큼 섹시하다.

 

신세대 사자의 멋

‘아니, 코끝에 이름을?’ 지난해 2세대 508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들었던 생각이다. 원래는 사자 엠블럼이 붙어있던 곳이다. ‘누가 푸조 아니랄까봐 이런 곳에도 개성을 담았구나’ 싶었다. 사실 코끝에 붙인 이름 레터링은 이번 508이 처음은 아니다. 1968년 출시했던 504을 통해 일찍이 선보였던 바 있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얼굴은 휙 지나가버리곤 해 찬찬히 볼 겨를이 없지만, 엉덩이는 멀어지거나 뒤따라가는 모습에서 좀 더 오래 살필 수 있다. 모델명이나 트림 등 글씨를 주로 얼굴 대신 엉덩이에 써 붙이는 이유이자, 508의 코끝 레터링이 독특한 까닭이다.

이름 얘기가 나온 김에 잠시 508의 계보를 되짚어보자. 푸조 작명법에 따르면 가장 앞 숫자는 차 급을, 가운데 0은 그냥 0을, 마지막 숫자는 세대를 의미한다. 508의 선조였던 504는 이후 505로 진화했지만, 90년대와 2000년대를 아랫급 405, 406, 407과 윗급 605, 607로 나뉘어 팔리게 된다. 그리고 2010년, 다시 4XX과 6XX을 합쳐 부활한 모델이 1세대 508이다.

 

오늘 시승차는 2세대 508. ‘509’로 불리지 않은 이유는 계속 세대에 따라 숫자를 올려갈 경우, 가운데 0을 쓰는 전통이 깨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 소비자들이 숫자 8을 좋아해서라는 분석도 설득력 있다. 이유야 어찌됐건 푸조는 앞으로 이름 마지막에 8보다 높은 수를 쓰지 않을 예정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508의 얼굴을 강하게 기억시키는 일등공신은 단연 주간주행등이다. 헤드램프 양 끝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며 잊지못할 인상을 만든다. 캐딜락의 여러 모델들과 시트로엥 DS7, 현대 펠리세이드 등 많은 차들이 세로형 주간주행등을 달고 나왔지만 이만큼 인상깊지는 못했다. 범퍼 하단 흡기구 양끝으로 뾰족하게 끝나는 모습이 마치 으르렁대는 사자의 송곳니를 연상시키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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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커기를 닮은 라디에이터 그릴 패턴도 스포티함을 더한다, 국내는 모든 트림에 적용된다

옆으로 한 걸음 돌아 가만히 보면, 생각보다 덩치가 크지않다. 구형과 신형의 제원표를 들여다봐도 실제로 더 작아졌다. 너비만 30mm 늘었을 뿐, 길이 80, 높이 35, 휠베이스 15mm가 줄었다. 일반적으로 후속이 나오면 이전보다 커지기 마련. 아무래도 구형보다 좁은 신형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푸조가 신형 508을 만들며 이례적으로 크기를 줄인 건, 그만큼 확실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일 터다. 공간에서 약점을 보이더라도, 야무지고 멋진 겉모습을 무기로 삼고자 했다. 길이와 휠베이스의 줄어든 비율에서도 이 점을 알 수 있다. 길이에 비해 휠베이스가 훨씬 덜 줄었다. 그만큼 앞뒤 오버행이 짧아졌단 뜻이고, 네 바퀴가 바깥으로 밀려나 ‘자세’가 당당해졌음을 의미하며, 나아가 2열 무릎 공간 손해도 최소화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당한 ‘자세’에는 시승차가 신고 나온 19인치 ‘아구스타(Agusta)’ 휠도 한몫한다. 이정도 크기면 과거 슈퍼카에나 들어가던 크기다. 나뭇가지(?)처럼 복잡하게 얽힌 투톤 다이아몬드 커팅 스포크가 지름을 더 커보이게 한다. 다만 508의 체급이나 성능으로 봤을 때, ‘GT라인’ 트림에 신겨지는 18인치 정도만 돼도 충분해 보인다.

사이드미러 아래서 시작된 캐릭터라인은 옆 창문을 데칼코마니 한 듯, 혹은 칼날 형태를 대고 그린 듯 날카롭게 면을 가른다. 특히 리어램프까지 끊김없이 이어진 위쪽 캐릭터라인은 빵빵한 리어펜더를 만나 올록볼록 육감적인 볼륨을 만든다.

옆 창문은 창틀 없는 프레임리스 타입을 쓴 덕에 B필러가 단순하다. 모름지기 옆 창문은 한장의 유리인 양 끊김이 없을수록 매끈하다. 평범하게 3획으로 나뉘는 것과 비범하게 2획으로만 잘리는 것은 차이가 크다. 프레임리스 타입 창은 문을 열었을 때 가장 섹시하지만, 닫았을 때 조차 멋을 더한다.

리어램프도 재해석했다. 두꺼운 면발광 세 줄에서 가느다란 선 네 줄씩 세 묶음으로 바꿨다. 이전 리어램프도 나쁘지 않았지만, 신형이 한결 복잡한 디테일로 첨단 느낌을 살렸다. 좌우를 마치 검정 플라스틱 커버 하나로 연결한 듯 처리한 점도 깔끔하다.

308, 3008, 5008에서 거슬렸던 ‘무늬만 배기구’도 다행히 508은 ‘진짜 배기구’를 달고 나왔다. 508 배기구에서는 추운 겨울날 실제로 김이 모락모락 나온다. 요즘 벤츠, 아우디 할 것 없이 여러 브랜드의 특히 디젤 모델들이 즐겨 쓰는 가짜 배기구는 정말이지 ‘극혐’이다.

 

겉모습 못지않은 실내

밖에서 홀린 눈은 안에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아이-콕핏(i-Cockpit)으로 불리는 실내는 그동안 만나본 여러 푸조 모델들을 통해 익히 경험했지만, 여전히 신선하다. 508의 외모에 반해 전시장을 찾은 예비 고객이라면, 운전석에 앉아본 뒤 계약서에 서명하게 될만큼 매력적이다.

HUD(헤드-업 디스플레이)가 아쉽지 않을만큼 높이 자리한 계기반, 계기반을 가리지 않도록 윗단까지 깎아낸 작은 운전대, 피아노 건반을 닮은 스위치 그리고 코브라 머리처럼 생긴 기어노브가 어울려 아이-콕핏을 완성한다.

전체 구성뿐 아니라 여기저기 아기자기한 요소들도 만족감을 높인다. 12.3인치의 LCD계기반의 화려한 그래픽 변화는 자꾸만 테마를 바꾸고 싶게 만들고, 헤드램프 너머 200-250m 전방을 보여주는 나이트비전도 동급에서 볼 수 없는 장비라 신기하다. 나이트비전은 40대 한정판인 ‘라프리미어’에만 들어가니, 508의 장점으로 꼽기엔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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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비전이 보행자를 인식해 노란 박스로 표시해 준다

대시보드와 센터터널, 도어트림 일부를 덮은 가죽은 차 급 이상의 고급스러움을 제공한다. 포칼(FOCAL) 오디오 시스템은 브랜드 없는 ‘묻지마 오디오’와 격이 다른 소리로 귀를 채운다. 센터콘솔 뒤에 박힌 2열 USB 충전 포트 둘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의외로 없는 차들이 많은 친절한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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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칼 오디오 시스템

밖에서 가장 궁금했던 2열 머리공간은 어땠을까? 2열에 들어서 등을 기대면, 우려보다는 넉넉하다. 선루프 뒤 천장을 깊게 파, 173cm인 내 머리 위로 손날이 충분히 들어갈 정도가 남는다. 대한민국 남성 평균 키(약 175cm)보다 큰 사람들은 정수리와 천장이 슬쩍슬쩍 스치기 시작하겠다. 날렵한 옆모습을 위해 뒷창문을 낮게 누른 탓에 시야가 상대적으로 답답하고, 승하차 시 고개를 많이 숙여야 하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패스트백 스타일 트렁크도 508의 빠뜨릴 수 없는 특징 중 하나다. 프레임리스 도어에 이어 세단으로 부릴 수 있는 멋은 다 부린 셈. 실제 용량(기본:487L-2열폴딩:1537L)은 평범한 수준이지만, 뒷유리까지 함께 열려 트렁크 전체가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에 한결 편하게 쓸 수 있다.

눈에 거슬리는 부분도 있다. 앞서 계기반을 칭찬했지만, 검정 바탕색이 밝게 떠 보이는 점은 아쉽다. 백라이트를 밝게 하면 검은색까지 함께 환해지는 LCD의 기술적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타 브랜드 대비 정도가 유독 심하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곳은 센터 디스플레이다. 유럽에 들어간 8:3 비율의 와이드 터치스크린 대신, 국내는 평범한 8인치 터치스크린과 '와이드 베젤'을 넣었다. 그동안 다른 푸조 모델들에서 익히 봤던 디스플레이다. 508의 특별한 섹시미와 아이-콕핏의 미래적인 매력을 깎아먹는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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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8인치 디스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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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비율의 10인치 와이드 디스플레이

기어노브 아래 스마트폰 무선충전 패드는 위치가 불편하다. 운전 중에는 물론이고, 심지어 정차 중에도 아래쪽 공간으로 접근하기 쉽지 않다. 2층으로 만든 센터터널은 높아진 상단부가 운전석과 동승석을 확실하게 분리해 스포티한 실내를 연출한다. 하지만 불편한 하단부 활용성을 동반했으니 절반의 성공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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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충전 패드

 

반만 드러낸 발톱

달리기는 어땠을까? 생긴 대로 스포티하게 달렸을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일단 엔진 출력은 만족스러웠다. 177마력, 40.82kgm를 발휘하는 2.0 BlueHDi 디젤 엔진은 수치상 예상과 비슷한 성능을 보여주었다. 인상처럼 조금 더 매콤해도 좋겠지만, 100마력 후반에 40kgm가 넘는 토크라면 재미있게 드라이브를 즐길만하다.

문제는 정차 시 엔진의 진동과 소음이다. 시트와 운전대 모두로 전달되는 진동과 디젤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소음은 날렵한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는다. 섹시한 아가씨가 갑자기 걸걸한 아저씨 목소리로 말하는 꼴이랄까? 특히 진동은 최근 몰아본 디젤 차들 중 제법 큰 수준이라 의외다.

다행히 용서는 된다. 매끈하게 작동하는 ISG(Idling Stop and Go / 정차 시 자동으로 엔진 시동을 껐다 켰다 해주는 기능)가 대부분의 정차 상황에서 소음, 진동을 원천봉쇄한다. 완전히 정차하기 직전 미리 시동을 끄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는 순간 곧바로 엔진을 깨우니 거슬리지 않는다. 푸조를 탈 때마다 똑같이 칭찬했던 ISG다.

달리기 시작하면 소음에 대한 불만도 잦아든다. 가상으로 만든 엔진음이 낮고 굵게 실내를 채우며 오른발 까딱임에 재미를 더한다. 소리는 크지 않지만 ‘쌩’ 디젤 소리를 감추기 충분하다. 단, 주행 중 창문은 내리지 말자. 확 깬다.

최근 푸조가 속한 PSA 그룹은 기존 6단 자동변속기를 8단으로 바꿔 다는 중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이제라도 엔진 회전수를 잘게 나눠 쓸 수 있어 다행이다. 당연히 508도 2단을 추가했다. 요즘 유행하는 DCT가 아니라고 해서 아쉽지는 않다. 최신 자동변속기라면 성능과 내구성에서 별 부족함이 없다.

신형 508에 들어간 아이신 8단 자동변속기도 무난한 성능을 보였다. 스스로 기어를 바꿔 물 때도, 시프트 패들로 태코미터 바늘을 들썩일 때도 모두 평범했다. 평범한 성능은 평범한 차에게 흉이 아니다. 평범한 성능에 어울리지 않는 508의 평범하지 않은 외모가 흠이라면 흠이다.

운전대 돌리는 맛은 푸조의 오랜 장기. 작은 지름의 운전대는 마치 튜닝카를 타는 듯 손에 착 감기고, 부드러우면서도 찰진 하체가 머릿속으로 그린 원을 끈질기게 부여잡는다. 코너를 감아 도는 기분이 참 좋다. 무게 중심 이동을 꾸역꾸역 거부하는 소위 ‘독일차스러움’과 다른 맛이다. 굳이 선호하는 쪽을 고르라면 독일 스타일이겠지만, ‘개취’일 뿐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다.

큰 휠 때문일까? 승차감은 저속에서는 통통 튀는 듯 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부드러워 비즈니스 세단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얌체공을 깔고 앉은 듯 짱짱하고 쫀쫀했던 1세대 508 GT 대비 여유로운 반응이다. 고속주행 안정감도 타이어를 노면에 꾹꾹 누르며 착 붙어 달린다기보다, 매끄럽게 활주하는 쪽에 가깝다.

반자율주행 기능은 제법이다. 앞차와의 거리나 차선 중앙을 부드럽게 유지한다. 동시대 경쟁자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차가 경고하기 전까지 공식적으로 운전대에서 손을 뗄 수 있는 레벨3의 도입은 법과 제도의 문제로 쉽지 않은 상황. 그 탓에 최근 신차들의 레벨 2 반자율주행 기능은 어느 정도 상향평준화 돼가는 모양새다.

 

프랑스 '패피'의 매력

508은 패션의 나라 프랑스에서 온 '패피'같은 차였다. 문 4짝 달린 세단치고 상당한 섹시함을 뽐냈다. 아무리 갑남을녀, 장삼이사라도 508을 타는 것만으로 '훈남미녀' 될 것만 같다. 그렇다고 너무 앞서간 패피들처럼 난해한 모습도 아니다. 누가 봐도 수긍하고 “옷 잘 입었다” 칭찬할만하다.

겉옷만 잘 입은 줄 알았더니 속옷까지 신경 썼다. 아이-콕핏으로 단장한 실내까지 날카롭게 ‘엣지’를 유지했다. 안팎 모두 신경 쓴 진짜 멋쟁이다.

물론, 멋진 옷이 편한 옷은 아니 듯 실내 공간은 손해 봤다. 508은 루즈핏 대신 슬림핏을 입었다. 508이 추구한 바를 충분히 이해하고, 평가할 부분이다. 달리기 실력도 조금만 더 매콤했으면 좋겠다. 절대적인 성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디자인만큼 인상적이지 않아서다.

한때 독특함을 넘어 누군가에겐 괴상함으로 보이기도 했던 푸조였지만, 이제는 개성을 강조하면서 불호의 여지는 싹 걷어냈다. 그리고 최신 푸조 디자인의 정점에 508이 있다.

이광환 carguy@carla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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