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812 슈퍼패스트! 라 페라리 같은 한정판 하이퍼카를 제외하면 페라리 라인업의 정점에 위치한 모델입니다. 끝판왕 브랜드의 끝판왕 모델이라니! ‘왕중왕’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차입니다.

이름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812의 8은 800마력을, 12는 12기통을 상징합니다. 숫자만으론 부족했던지 숫자 뒤에 ‘슈퍼패스트’까지 붙였습니다. 말 그대로 ‘매우 빠르다’는 의미죠. 그러니까 ‘812 슈퍼패스트’는 ‘800마력을 내는 12기통 엔진을 얹어 엄청 빠른 페라리’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이름만 들었을 때는 뭘 그렇게까지 호들갑스럽게 자랑하나 싶었지만, 막상 트랙에서 직접 몰아보니 전혀 허풍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기자라도 페라리를, 그것도 800마력짜리 페라리를 트랙에서 달려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글을 쓰려니 또다시 가슴이 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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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디자인_바람으로 깎은 예술

812 슈퍼패스트를 실제로 처음 본 건, 작년 여름이었습니다. 이탈리안 레드로 칠한 812 슈퍼패스트는 아스팔트 위에 타이어로 도넛을 그리며 등장했습니다. 워낙 귀하신 몸이라 예상보다 과격한 등장이 뜻밖이었죠. 페라리 특유의 카랑카랑한 엔진음과 매캐한 타이어 냄새가 묘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자태를 돋보이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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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처음 영접한 812 슈퍼패스트

1년 반 만에 다신 만난 812 슈퍼패스트는 노란색입니다. 페라리에서 ‘지알로 모데나(Giallo Modena)’라고 부르는 색깔인데, 지난번에 봤던 ‘로쏘 코르사(Rosso Corsa)’ 빨강만큼 잘 어울립니다. 국방색으로 칠해도 눈에 띌 생김새인데, 색깔까지 알록달록하니 강렬하기 그지없습니다. ‘길거리 시선은 내가 다 접수하겠다’라는 심산인 듯합니다.

 

우리가 평소 접하는 보통의 차들은 실제 성능보다 더 비싸고, 보다 강력하고, 훨씬 잘 달릴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이런저런 장식을 달고 나옵니다. 공기통로 같지만 검정 플락스틱으로 막혀있고, 삐죽 날개는 달렸지만 바람과 무관한 경우가 허다하죠. 영롱한 카본 무늬도 필름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페라리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단지 멋지게 보이기 위해 달린 요소가 하나도 없어요. 차체의 모든 곡선과 주름, 구멍, 날개가 바람을 의도대로 요리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심지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바닥에는 상황에 따라 여닫히는 플랩도 달렸습니다. 소재 역시 눈에 보이는 그대로이니 굳이 손으로 만지고 긁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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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2 베를리네타 (이미지: 페라리)

812 슈퍼패스트 바로 전에는 F12 베를리네타가 있었습니다. 프론트 펜더의 ‘에에로 브릿지’를 비롯해 바람이 조각한 듯 역동적이고 우아한 차체 곡선을 자랑했습니다. F12 베를리네타의 전신 599 GTB 역시 유리와 떨어진 날개 형태의 C필러가 특징이었죠. 812 슈퍼패스트는 이런 전 세대 모델들의 공기역학적 디자인 특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녹여 넣었습니다. 페라리가 전통과 기능, 시각적 아름다움을 하나로 합쳐 12기통 프론트미드십 최신 기함을 만들면 812 슈퍼패스트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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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9 GTB (이미지: 페라리)

실내도 기능에 충실합니다. 운전이란 행위를 스포츠로 여기고 있다는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죠. 차량 운행에 중요한 기능을 하나로 모은 운전대와 계기반 가운데 커다랗게 박힌 아날로그 엔진회전계, 센터터널 안쪽 오른발과 닿는 부위의 금속 마감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역시 페라리는 뼛속까지 레이싱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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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페라리)

반면 가죽 대시보드를 뚫고 나온 원형 송풍구와 이를 감싸고 있는 카본 프레임을 보고 있노라면, 812 슈퍼패스트는 공산품이라기보다 예술품의 경지에 다다르지 않았나 싶은 생각까지 듭니다. 형태와 소재, 컬러의 조화가 너무나 황홀해 자꾸만 보고 계속 만지고 싶습니다.

엉덩이까지 이어진 해치도어를 열면 슈퍼카치고 넓은 수납공간이 나타납니다. 거대한 엔진을 앞쪽에 얹은 덕분입니다. 812 슈퍼패스트에 딱 맞게 만들어진 보스턴 백과 여행용 캐리어, 수트 케이스를 실을 수 있습니다. 812 슈퍼패스트에 탈 수 있는 2명분 짐이라면 충분히 품어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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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 슈퍼패스트를 위한 맞춤 가방은 시트와 동일한 가죽으로 만든다

달리기_신세계를 경험하다

자, 지금까지 812 슈퍼패스트의 아름다운 자태에 취해있었다면 지금부터는 가공할 성능에 놀랄 차례입니다. 애써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트랙에 들어섰습니다. 당연히 첫바퀴는 살살 적응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페이스카가 그리는 레코드라인(가장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는 최적 주행 코스)을 따라 달리며 812 슈퍼패스트와 친해지는 과정을 거치죠.

살살 달리고 있지만, 뒷바퀴로 전달되는 800마력의 위력은 가속페달을 살짝만 툭 쳐도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말이 살살이지 150마력을 내는 내 차였다면 이미 전력질주 수준입니다. 812 슈퍼패스트는 그저 평온하게 운전대만 슥슥 감아주면 그만입니다.

변속기를 ‘오토’로 놓고 달리면 부드럽게 기어를 바꿔 뭅니다. 엔진회전수를 3,000-4,000까지 올려도 레드존(회전 한계)이 9,000부터 시작하니 채 반도 쓰지 않은 셈입니다. 엔진음도 낮은 회전수에서는 생각보다 차분합니다.

승차감도 의외로 좋습니다. 물론 일반 세단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만, 20인치에 이르는 휠 사이즈와 800마력을 감당해야 하는 단단한 하체를 생각하면 상당히 나긋나긋합니다. 트랙에서 기록 측정을 위해 맹렬이 달리는 목적뿐 아니라, 장거리를 빠르고 편안하게 주파하기 위한 GT카의 면모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시트도 편안합니다. 아까 디자인 살펴보며 시트의 우아한 모습에 놀랐었는데, 직접 앉아서 달려보니 편하기까지 합니다. 쿠션이 두껍지도 않은데 어찌나 몸에 착 감기는지, 마치 레이싱카의 버킷시트를 아주아주 고급스럽고 편안하게 치장하면 이럴 것 같습니다. 턱시도인 줄 알았는데, 막상 입어보니 면바지에 티셔츠 같은 옷이랄까요?

승차감도 그렇고, 시트도 그렇고, 트랙 잠깐 달리고 뭘 알겠냐고요? 트랙주행 후, 일반도로와 고속도로를 1시간 반 정도 달려보고 하는 말이니 믿어주세요.

드디어 앞선 페이스카가 점점 속도를 높여갑니다. 제 오른 발끝에도 힘을 줬죠.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입술은 침이 마르기 시작합니다. 속도가 빨라서라기 보다, 얼마나 비싸고 대단한 차인지 알기에 미리 기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주행모드를 선택하는 마네티노 다이얼은 대부분 기본 모드인 ‘스포츠’에 두었습니다.

급브레이크를 밟고 왼쪽 끝으로 붙었다 거의 180도로 꺾이는 4번 코너를 돌아나갑니다. 어? 그런데 이거 좀 싱거워요. 절대 낮은 속도가 아닌데도 ‘스윽’ 돌아나가버립니다. 심지어 타이어 비명조차 없습니다. 주눅 들었던 나에게 812 슈퍼페스트가 좀 더 밟아보라고 너그러운 미소를 건넵니다.

코너가 이어지며 점점 자신감이 붙고, 보다 과감하게 가속페달을 밟습니다. 그때마다 입에선 ‘우아~’하는 감탄사가 자동으로 나왔죠. 단순히 잘나가서가 아닙니다. 800마력의 힘을 너무 쉽게 뽑아 쓸 수 있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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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페라리)

800마력. 사실 숫자만 들으면 얼마나 엄청난 출력인지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전기모터까지 합세한 최신 하이퍼카들이 1,000마력을 가뿐히 넘나드는 시대니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제 경험상 그게 그렇지 않더라고요.

제가 지금껏 경험했던 최고 출력은 캐딜락 CTS-V의 650마력이었습니다. 당시 움찔움찔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튀어나가는 CTS-V를 통해 이 정도만 해도 얼마나 폭력적인 출력인지 느꼈던 바 있거든요. 거기에 200-300마력짜리 차를 전자장비 다 끄고 타면서 내 진짜 운전실력에 겸손해졌던 경험도 있습니다. 그러니 800마력의 812 슈퍼페스트 앞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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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모드를 바꿀 수 있는 마네티노 스위치

그런데 막상 트랙에서 달려보니 우려와 다르더군요. 800마력을 너무 쉽게 뽑아 쓸 수 있었어요. 나가는 건 정말 무시무시하게 발사되는데, 반응이 엄청나게 안정적이고 세련됐습니다. 타이어와 하체, 전자장비가 허락해주는 800마력의 신세계를 맘 편히 즐길 수 있어요. ‘저 같은 일반인들도 800마력을 즐기게 해주셔서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라고 말하고 싶더군요. 너무 심했나요?

굽이굽이 코너를 돌며 시프트페들도 까딱여 봅니다. 812 슈퍼패스트에는 다른 페라리들과 같이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가 맞물려 있습니다. 변속 속도요? F1 기술을 적용했다는데, 감히 제가 지적할 수 없죠.

다만, 고속 크루징을 위한 8단의 부재가 아쉬웠습니다. 남아도는 게 힘이고 번개 같은 반응을 자랑하니 어떤 속도와 기어, RPM으로 달리고 있건 밟으면 튀어나갈 테지요. 무게 증가 때문에 7단에 머물렀다면 할말은 없습니다.

위아래로 기다란 시프트패들은 운전대와 함께 돌아가지 않습니다. 패들을 당기지 못할 만큼 운전대를 돌린 상황이라면 변속할 일도 없다는 게 페라리의 주장입니다. 운전대와 함께 돌아가는 방식에 비해서 무엇이 더 좋다고는 말 할 수 없으나, 페라리가 그렇다고 하니 상당히 설득력 있습니다.

코너 중간 일부러 연석을 타도 참 능청스럽게 처리합니다. 차돌처럼 단단한 하체는 허둥대지 않고, 바깥으로 한참 쏠린 무게도 징그러울 만큼 쫀쫀한 하체가 든든하게 받아내더군요. 뭐 이런 차가 다 있나요? 상투적인 표현입니다만 ‘레일 위를 달리는 것 같다’는 말이 딱 들어맞아요.

인제 서킷 막바지 직선주로에 들어서자, 무전이 옵니다. 812 슈퍼패스트의 가속성능을 느껴보라고 주문하네요.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니, 비현실적으로 속도를 높여갑니다. 이날 페이스카가 허락한 최고속도는 시속 220km 남짓. 제한 없이 밟으면 250km 이상도 충분히 가능할 듯합니다. 참고로 일반 승용차들은 시속 200km로 달리기도 쉽지 않은 구간이죠.

몽환적인 가속에는 오르가슴에 비유할만한 엔진음도 한몫합니다. 여기에 편안하면서도 맹렬한 회전 질감, 자연스럽고 농밀한 토크, 터보도 없이 쏟아내는 가공할 출력까지, 21세기 페라리 기술력의 정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엔진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이러니 ‘2018 올해의 엔진상’에서 ‘4리터 이상 최고의 신형 엔진’으로도 뽑힐 밖에요. 효율, 연비, 환경 따위를 이유로 이런 다기통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들이 설자리를 잃어가는 요즘이지만, 페라리 12기통 엔진은 부디 예외로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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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마력, 73.2kgm를 뿜어내는 V12 자연흡기 엔진

잠시 멍 때리며 220km/h를 찍는 순간, 내리막이 나타나며 풀브레이킹 구간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제대로 속도가 줄지 않으면 심장이 쫄깃쫄깃 해지기 마련이죠. 812 슈퍼패스트는 220에서 브레이크를 끝까지 밟아도 차분하게 속도계 숫자를 100 초반까지 뚝 떨어뜨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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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본세라믹 브레이크, 앞 디스크 지름은 398mm

서킷에서는 브레이크가 시원치 않은 차는 금방 한계가 드러납니다. 브레이크가 밀리기 시작하면 그만큼 달리기 부담스러워지고, 결국 브레이크가 식을 때까지 쉬는 수밖에 없어요. 이날 812 슈퍼패스트는 여러 운전자들이 번갈아가며 계속 몰았지만, 조금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건, 몇 번을 반복하건 그냥 밟으면 섭니다. 브레이크가 주는 이런 신뢰는 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자신감으로 이어지겠죠.

하~! 비록 하루였지만, 아직도 이날을 떠올리면 가슴이 뜁니다. ‘보기만 해도 황홀하고, 생각만 해도 가슴을 뛰게 하는 힘’ 이게 바로 ‘페라리 마법’이 아닐까요? 참 신묘하기 그지없습니다. 812 슈퍼페스트는 이런 페라리 마법의 끝판왕이었습니다.

 

이광환 carguy@carla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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