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태풍 콩레이가 우리나라에 접근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습 폭우와 강한 바람을 경고하는 내용이 뉴스를 타고 흘러나온다. 걱정이다. ‘내일 ES 시승인데……’

다음 날 아침, 창문을 때리를 빗소리에 눈을 떴다. 다행히 서울은 ‘굵은 빗줄기’ 수준이다. 시승을 시작하는 잠실로 향했다. 가는 내내 궁금했다. 신형 ES 300h는 기존의 부드러운 달리기를 유지했을까, 날카로워진 외모처럼 스포티한 감성을 살렸을까? 짧은 시간 함께한 ES와의 첫 데이트 소감을 적어본다.

 

'쏜살'같은 디자인

엊그제 ES 300h 출시 행사가 열렸던 커넥트투(CONNECT TO)는 평소 모습을 되찾았다. 빼곡히 가득 찼던 기자들은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는 방문객이, 3대의 ES는 한 대만 남기고 기함 LS와 LC가 대신했다.

여유로운 공간에서 다른 모델들과 섞여있으니 새롭게 단장한 ES의 매력이 좀 더 잘 보인다. LS에서 물려받은 공통 디자인 언어와 ES만을 위해 추가한 특징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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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 50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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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 300h

커다란 스핀들그릴과 화살촉 모양 주간주행등 덕분에 딱 봐도 렉서스 식구임을 알 수 있다. 한 걸음 다가서면 보이는 세로 가지런한 그릴 패턴과, 세 갈래 삐침 없이 하나로 얌전해진 주간주행등은 ES의 특징.

윗면과 옆면을 날카롭게 접은 프론트펜더는 ‘어깨뽕’을 넣은 듯 당당하다. 트렁크 끝자락까지 완만하게 떨어지는 지붕선은 얼핏 쿠페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고 보니 묘하게 RC를 닮았다. LS의 진지함과 RC의 스포티함이 적절히 섞였다고나 할까?

캐릭터라인 아래 평평한 앞문은 뒷문을 거쳐 리어펜더로 갈수록 점점 주름이 깊어진다. 마치 리어램프가 옆면을 쫘~악 끌어당기기라도 하듯 팽팽하다. 뒷범퍼도 이와 비슷한 처리를 통해 모서리를 감쌌다.

전면 중앙 스핀들그릴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간 선들이 옆을 타고 뒤로 이어져 리어램프와 만나며 전체 흐름이 완성된다. 모든 부품과 요소가 흐름에 맞춰 일사불란하다. 중간중간 강약을 달리하고, 때론 절도 있게 꺾이며 속도감을 더한다.

 

높아진 효율, 절제된 움직임

각자 배정받은 ES를 나눠타고 주차장을 미끄러져 나선다. 동승자가 말했다. “되게 조용하네?” 내가 답했다. “아직 시동 안 걸렸어요.”

차단기를 지나 오르막을 만나자 바로 시동이 걸린다. 기어노브 뒤 ‘EV’ 버튼을 누르면 최대한 엔진 개입을 자제하지만, 작동 범위가 생각만큼 크지 않다. PHEV나 순수전기차가 아닌 이상, 배터리 용량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시승 중 살펴보니, 살짝 내리막 구간에서는 약 40km/h까지 계기반 ‘EV’ 불이 꺼지지 않았다. 평지나 약한 오르막에서는 약 20km/h에서 엔진이 깨어났다.

시동이 걸리는 과정에서 가속페달로 엔진의 기지개가 미세하게 전해진다. 소리도 전혀 안들어온다고 하면 거짓말. 엔진은 주행 중에도 수시로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지만, 살살 다루면 이때는 잘 느낄 수 없다. 오늘날 하이브리드는 참 귀신같다.

‘신통방통’ 귀신같은 걸로 치면 토요타의 하이브시스템이 으뜸이다. 2.5리터 4기통 가솔린 엔진과 모터 2개를 ‘파워 스플릿 디바이스’가 실시간으로 역할 분담하는 과정이 가히 야바위 급이다. 철저한 계산에 따라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기능을 운전자가 미처 알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요리한다.

요리의 제일 목표는 뭐니 뭐니 해도 효율. ES 300h의 복합 공인연비는 리터당 17km다. 시승 중 약 100km를 달린 후, 계기반은 리터당 약 14km를 기록했다. 3km 줄었지만, 성인 남성 3명 탑승, 장시간 공회전, 급가속 수차례, 제법 심했던 비바람을 감안하면 수긍할 수 있다. 둘이서 얌전히 탔던 다른 기자들은 20km/L 이상을 달성한 경우도 있었다.

더구나 실연비 14km/L는 이전 6세대 ES 300h의 복합 공인 연비 14.9km/L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7세대로 진화하면서 몸무게가 1,715kg으로 30kg 늘었고, 시스템 출력이 218마력으로 15마력 올랐으니 적게 먹고도 힘은 더 세다.

동일한 파워트레인을 얹은 토요타 캠리와 견줘도 ES의 승이다. 둘 다 엔진과 모터가 각각 178, 120마력을 내지만 시스템 총 출력은 ES가 7마력 더 높다. 여기에 무게도 ES가 60kg 무거운데, 휘발유 1리터로 300m 더 멀리 달린다(캠리 복합 공인 연비: 16.7km/L). 인증 과정의 오차로 평가절하하기엔 유의미한 차이다.

렉서스는 이번 7세대 ES의 달리기가 ‘익사이팅 엘레강스(Exciting Elegance)’를 추구했다고 밝혔다. ‘엘레강스(우아함)’이 ES를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단어임에는 어느 누구도 이견이 없을 터. 그런데 ‘익사이팅(신나는, 흥미로운)’이라고?

요즘 토요타와 렉서스는 토요타 아키오 CEO의 지휘 아래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 더 이상은 마냥 고장 없고, 무난한 차만 만들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가 제품에 반영되고 있다. 직접 카레이스에 출전할 만큼 운전을 좋아하는 그는 렉서스에 재미를 주입하는 중이다.

올 초, LS를 시승할 때도 느꼈다. ‘렉서스가 정말 달라지고 있구나’ 분명 기함 쇼퍼드리븐인데, 움찔움찔 반응하고 소리도 제법 호방한 게 신선했다. 시승기 제목도 ‘회장님은 달리고 싶다’로 지었다.

이런 변화를 ES에도 적용했을까? 그래서 ‘익사이팅’을 붙였을까? 가격으로는 IS와 GS 사이에 위치하지만 ES는 홀로 전륜구동이 아니던가? 유독 페밀리세단에 한참 치우쳐 있던 이미지는 어쩌고? 이런 궁금증과 함께 오른발에 힘을 줬다.

비 내리는 잠실 일대는 전쟁터가 따로 없다. 뒤엉킨 차들 사이로 앞서간 일행을 쫓느라 ES를 채근했다.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시원하게 속도를 높인다. 단순한 가속 시간이야 예상했던 정도지만, 직결감은 기대 이상이다. 가속페달을 미세하게 까딱거리면 바로바로 거동에 반응하니 답답하지 않다.

제동 반응도 마음에 든다. 보통 편안함을 추구하는 차들은 초반에 둔하게 작동하다 깊이 밟아야 제 성능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신경질적인 반응을 줄이기 위한 의도적 설정이다. 브레이크에 회생제동 장치를 묶은 하이브리드나 전기차들은 이질감이 들기도 한다. ES 300h는 예외다. 부드럽게 밟히지만, 정비례로 속도를 줄인다.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속도는 제한속도에 맞췄다. 와이퍼는 연신 앞 유리를 닦아대고, 바람까지 제법 불었지만 실내는 평온하다. 그러고 보니, 출발 후 여태껏 시끄럽다고 느낀 적이 없다. 터널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원래 정숙성은 렉서스의 오랜 장기다. ‘렉서스가 렉서스 했다.’

차체 바닥 흡음재를 확대하고, 노이즈 저감휠(익스클루시브, 럭셔리+)을 신겼다는 렉서스의 설명은 허풍이 아니었다. 이렇게 조용해진 실내는 스피커 17개로 구성된 마크레빈슨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익스클루시브) 소리로 채울 수도 있다.

편안한 고속주행은 낮아진 무게중심도 한몫 거든다. 무거운 배터리를 바닥 가까이 납작하게 붙인 덕분이다. 2열 시트 등받이와 트렁크 사이에 있던 기존 하이브리드 배터리를 7세대 ES 300h는 2열 엉덩이 아래로 옮겼다. 아울러 배터리 높이도 320mm에서 200mm로 낮췄다. 순수전기차의 훌륭한 주행 안정감도 대체로 같은 이유다.

목적지에 이르러 시골길로 들어섰다. 과속방지턱이 연이어 막아서지만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긴다. 푹신하면서 깔끔하다. 꿀꺽 삼키는 모습은 원래 알던 ES인데, 조금은 단단해진 그래서 보다 깔끔한 마무리에서 달라진 면모가 보인다.

돌아오는 길은 뒷자리에 앉았다. 가는 길 운전대를 잡고 느꼈던 주행감각은 뒷자리에서도 똑같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부드럽고 매끄러우면서 절제된 움직임이 엉덩이로 하여금 고급차를 타고 있다는 만족감을 준다.

운전자는 나와 비슷한 170cm 중반. 바로 뒤에 대충 앉았는데, 무릎과 1열 등받이 사이에 주먹 3개가 넉넉히 들어간다. 이전 세대보다 길이가 75, 너비는 45, 휠베이스도 50mm가 커진 덕분이다. 전륜구동의 장점까지 십분 살린 신형 ES의 뒷자리는 어디 가도 꿀리지 않겠다. 다만, 스키스루만 지원할 뿐 2열 등받이를 접을 수 없는 점은 아쉽다.

국내 수입차 시장은 독일 브랜드가 평정한 상태. 일본 브랜드 중에는 토요타와 렉서스가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그중 ES는 렉서스 판매를 견인하는 중심 효자 모델이다.

그동안 조용하고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한마디로 ‘엘레강스’한 이미지는 ES의 가장 큰 무기였다. 잠깐 만나본 7세대 신형 ES 300h는 날렵해진 디자인과, 향상된 하이브리드 효율, 절제된 하체 움직임까지 ‘익사이팅 엘레강스’가 아깝지 않았다. 적어도 기존 ES보다는.

아래는 ES 시승 영상.

이광환 carguy@carlab.co.kr

이미지: 렉서스, 카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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