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저래 한동안 먹구름만 끼어있던 쉐보레에 모처럼 화창한 소식이 들려왔다. 부산모터쇼에서 공개한 신차 덕분이다. 자동차 회사에 신차 출시만큼 밝고 신나고 중요한 뉴스가 또 있겠는가. 신차 이름은 ‘이쿼녹스’다.

‘에퀴녹스’다 ‘이쿼녹스’다 말이 많았지만 결국 미국인들 발음 따라 ‘이쿼녹스’로 나왔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시기’라는 뜻으로 디자인, 퍼포먼스, 안전사양이 균형을 맞췄다는 의미라고 한다. 과연 이쿼녹스는 이름처럼 뛰어난 균형미를 보여줬을까?

 

디자인

위아래가 확실하게 나뉘었던 쉐보레의 상징 ‘듀얼포트 그릴’은 최근 경계가 모호해 졌다. 위 포트와 아래 포트를 한 줄의 크롬선으로 구분할 뿐이다. 이러다 ‘싱글포트 그릴’이 되는 건 아니지 모르겠다. 그릴과 좌우 헤드램프를 하나로 아울러 정돈된 인상을 주지만, 그 속을 채운 크롬 패턴과 주간주행등의 얽힘이 복잡하다. 갑각류 등딱지를 보는 듯하다. (미드에선 이럴 때 “No offense”라고 하더라)

최상위트림 풀옵션으로 마련한 시승차는 당연하게도 LED 헤드램프를 달았다. 당연하지 않은 건 하위트림이다. 기본트림인 LS에는 할로겐이, 중간트림인 LT에는 HID가 들어갔다. 경쟁모델들과 견주면 할로겐이 부족하지는 않고, HID까지 마련한 점이 독특하다. 한 모델에서 세 가지 광원의 변천사를 다 볼 수 있는 건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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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래가 하나로 붙은 듀얼포트 그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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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차는 LED가 들어갔다

보닛과 앞펜더가 만나는 옆면 주름은 재킷의 ‘뽕’처럼 어깨를 강조한 뒤 사이드미러 아래서 밑으로 떨어진다. 크루즈에서 봤던 요소다.

이 주름의 연장선을 따라 뒷바퀴를 향해 떨어지는 첫 번째 캐릭터라인과 리어램프에서 역시 뒷바퀴를 향해 내려오는 선은 뒷바퀴의 힘을 시각적으로 강조한다. 마치 학창시절 참고서 중요 대목에 그리던 당구장표시 같다. 뒷문에서 나타난 두 번째 캐릭터라인도 뒷펜더에 볼륨을 더하며 한몫 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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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인치 휠. 트림에 따라 17, 18인치 휠이 적용된다

비록 이쿼녹스는 앞바퀴굴림 혹은 앞바퀴굴림 기반 사륜구동이지만, 어찌됐건 뒷펜더를 네 발 짐승의 탄탄한 허벅지 근육처럼 보이게 한다. 일찍이 말리부에 적용했던 이런 디자인 언어를 두고 쉐보레는 ‘린 머스큘러리티(Lean Muscularity)’이라 불렀다. 군살 없이 탄탄하고 호리호리한 근육이란 뜻이다. 마동석보다 이소룡의 몸이 여기 해당한다.

휠하우스 테두리(휠플랫)를 검정 플라스틱으로 둘러 SUV다움을 살리기보다, 그냥 차체 색깔로 마무리해 도시감각을 강조했다. 대신 차체 하단을 여느 SUV처럼 검정 플라스틱으로 감싸, 혹시 모를 험로 주행에서 자잘한 상처를 예방했다. 좀 더 날씬해 보이는 옆태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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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롬 루프렉이 멋스럽다

가파르게 기울어진 차체 색깔 C필러도 단단한 느낌과 함께 옆모습에 속도감을 더한다. C필러와 반대로 D필러는 유리 뒤로 숨어 엉덩이에서 시각적 무게를 덜었다. 비슷한 모습을 벤츠 GLE와 랜드로버 디스커버리에서 찾을 수 있다.

뒷범퍼는 볼트(BOLT EV와 VOLT모두)처럼 모서리를 꽉 꼬집어 옆면과 뒷면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 지었다. 주행 중 후면에 생기는 와류를 줄이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이고, 실제보다 커 보이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D필러와 반대 역할을 하는데, 결과적으로 아래는 크고 위는 작아 보이도록 만들어 이른바 ‘자세’를 연출하는데 유리하다.

실내는 따로 언급이 필요할까 싶을 정도다. 그동안 익히 보아왔던 쉐보레의 내부와 같다. 가운데 태블릿PC를 닮은 모니터를 두고 좌우가 분리된 듀얼콕핏 디자인이 그대로 쓰였다. 낮고 넓고 쾌적하다.

최상위 ‘프리미어 익스클루시브’ 트림인 시승차는 가죽 통풍 전동 메모리 시트,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하는 8인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스마트폰 무선충전, 파노라마 선루프, 오토 에어컨, 스피커 7개로 구성된 보스 오디오 등 얼핏 떠올릴 수 있는 편의장비는 다 달렸다. USB 충전 단자도 1열과 2열에 각각 2개씩 마련해 승객들 각자 IT기기를 배불리 충전하도록 했다. 대신 가격이 4,040만 원에 이른다. ‘ㄷㄷㄷ’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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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얼콕핏 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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햅틱, 통풍, 전동, 메모리 기능이 들어간 가죽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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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에어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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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무선충전 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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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열 송풍구 아래는 열선 버튼과 USB포트, 230V 단자를 마련했다. 열선은 등받이만 따로 켤 수 있다

마감재는 불만이다. 대시보드 중앙 크래시패드를 덮은 인조가죽과 도어트림 일부의 팔이 직접 닿는 곳을 빼면 온통 딱딱한 플라스틱으로 덮었다. 센터패시아 안쪽, 만질 일은 별로 없지만 손만 뻗으면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은 단면이 날카롭기까지 하다. 몸값만큼의 고급감을 보여주기 부족하다.

계기반 시인성은 준수하다. 좌우 태코미터와 속도계는 숫자가 큼직하고 눈금 간격도 적당하다. 테두리 아이스블루 조명도 은은하게 분위기를 돋운다. 단, 계기반 중앙 4.2인치 LCD창은 글씨체의 두께나 정보 사이 간격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이쿼녹스뿐만 아니라 해당 디스플레이가 적용된 모든 쉐보레 모델에 해당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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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라마 선루프

이쿼녹스의 광고 카피는 ‘가족의 꿈과 함께’다. 2열 거주성은 ‘가족의 꿈’을 싣기 부족하지 않다. 머리공간은 키 173cm인 기자의 정수리 위로 주먹 하나가 넉넉하게 들어간다. 무릎공간을 가늠할 수 있는 축간거리는 2,725mm. 싼타페보다는 40mm가 짧지만, QM6보다는 20mm가, 투싼보다는 55mm가 길다.

적재공간은 반듯하게 정리했다. 문턱이 없어 손쉽게 물건을 싣고 내릴 수 있다. 2열 등받이는 6:4로 접히는데, 적재공간 바닥과 평평하게 이어진다. 2열 등받이를 접을 때, 엉덩이 받침이 함께 아래로 꺼지는 덕분이다. 가운데 시트 머리받침이 두꺼워 따로 빼지 않으면 바닥에 걸리는 점은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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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열 등받이를 접으면 바닥이 완전히 평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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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열시트 가운데 머리받침이 두꺼워 떼어내지 않으면 바닥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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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콘솔은 크기가 넉넉하다

 

퍼포먼스

시트포지션은 SUV임을 감안해도 다소 높다. 덕분에 탁 트인 시야를 얻었지만, 다양한 취향을 배려해 조절 폭을 몇 cm 더 낮출 수 있지 않았을까? 복잡한 시내와 좁아터진 주차장에선 차 크기를 가늠하기 편하겠다.

국내 들어온 이쿼녹스는 1.6리터 디젤 터보 엔진 한 가지만 마련했다. 최고 출력은 136마력, 최대토크는 32.6kgm다. 변속기는 크루즈부터 임팔라까지 널리 애용하고 있는 GEN3 6단 자동을 맞물렸다. 구동방식은 전륜구동과 AWD 중 고를 수 있다. 물론, 시승차는 1,730kg 짜리 AW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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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마력을 내는 1.6리터 디젤 터보 엔진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움직임은 생각보다 산뜻하다. 가볍게 치고 나가는 느낌이 디젤이 맞나 싶을 정도. 막히는 시내에서도 답답하지 않은 발 놀림으로 신호와 다음 신호 사이를 이동한다.

고속화도로에 올라서 가속페달을 깊이 밟자, 금세 마력의 한계가 드러난다. 출력과 구동방식, 무게를 보고 우려했던 바다. 애처로운 소형 디젤엔진의 비명이 실내로 들려오는데, 속도계는 천천히 오른다. 여기에 가족 3-4명과 바리바리 캠핑장비까지 실으면 힘에 대한 갈증이 더 커질 수 있다.

대다수 운전자들이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는 경우가 많지 않거니와, 이 정도만 해도 일상 운행에 지장이 없다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쉐보레가 이쿼녹스의 경쟁모델로 지목한 르노삼성 QM6는 2.0 디젤을 얹고 177마력을 내며, 몸값이 비슷한 현대 싼타페도 2.0 디젤이 186마력을 발휘하니 상대적인 출력 열세가 부각될밖에. 아무리 출력만으로 차를 평가할 수 없다 해도, 200마력 이하 급에서 40-50마력 차이는 어제 면허 딴 초보도 느낄 만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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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국내에 없는 1.5L, 2.0L 가솔린 터보도 있다. 2.0은 9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린다

현재 미국시장에 판매 중인 이쿼녹스는 한국에 없는 1.5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과 2.0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을 선택할 수 있다. 252마력짜리 2리터 엔진은 아니더라도, 170마력짜리 1.5리터 엔진을 함께 들여오는 건 어땠을까? 출력도, 무게도, 소음도, 그리고 최근 ‘반 디젤’ 분위기를 봐도 이쿼녹스에 잘 어울리는 심장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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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3 자동 6단 변속기

부족한 엔진 힘은 GEN3 6단 자동 변속기로 채우기 무리다. 8단을 넘어 9단, 10단까지 볼 수 있는 요즘, 6단은 아무래도 허전하다. QM6는 CVT(무단변속기)를, 싼타페는 8단 자동을 짝지었다.

천천히 올라가는 속도계를 다그치고자 수동으로 변속해도 두 박자 느린 업시프트 때문에 이내 그만두고 말게 된다. 고집스레 고수하는 기어노브 정수리의 +,-스위치만 봐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의도가 애초부터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심한 경사로에서 자동변속기의 판단을 차단하고 내 뜻대로 특정 단수에 고정하는 용도로나 써야겠다.

스티어링 감각은 다분히 여유 있는 설정이다. 운전대를 좌우로 휘저으면 기어비가 느슨하다. 단점은 아니고 오히려 이쿼녹스의 성격에 맞게 의도된 설정일 터다. 감각이 흐리멍덩하진 않으니 R-EPS(렉타입 전자식 파워스티어링)을 썼다고 자랑할만하다. 이제는 칼럼타입을 쓰는 경쟁자가 많이 사라져 상대적 우위로 꼽기 애매해졌음이 아쉬울 따름이다.

승차감은 낭창거리기 보다 통통거린다. 자잘한 요철을 굳이 감추지 않고 엉덩이에 전하는데, 불쾌한 정도는 아니다. 전반적으로 준중형세단보다는 묵직하지만, 중형세단만큼 부드럽지는 못하다.

고속 코너나 급차선 변경 시, 우려보다 롤링(좌우 기울어짐)이 적었던 점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상대적으로 무게중심이 높은 SUV를 타면 차종 특정과 용도를 감안해 적당한 롤링은 이해하자는 마음가짐인데, 이쿼녹스는 이를 비웃듯 가뿐하게 거동을 다스렸다.

이는 그동안 경험했던 여러 쉐보레 모델들과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다. 이쿼녹스의 탄탄한 하체는 부족한 출력을 더 아쉽게 만든다.

 

안전사양

이쿼녹스에는 전방충돌경고와 시티브레이킹(저속 자동 긴급제동), 차선유지보조 시스템이 들어갔다. 전방충돌경고처럼 위급한 상황은 빛과 소리로 단호한 신호를 보냈지만, 주행 중 슬쩍 차선을 벗어나거나 주차 중 장애물이 가까워지는 경우는 햅틱시트를 통해 진동만 울려주는 매너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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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추돌 경고는 3단계로 거리를 조절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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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추돌이 예상되면 앞유리에 붉은빛을 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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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유지보조시스템은 버튼 위치가 쌩뚱맞다

차선유지보조 시스템은 차선을 벗어나야 비로소 안으로 슬쩍 밀어 넣어주는, 말 그대로 ‘보조’ 수준이다. 차선 중앙을 유지하는 단계는 아직 아니다. 자율주행기술에 있어 1-2위를 다투는 GM이지만 아직 양산차에는 비교적 기초적인 수준을 적용하고 있다.

균형 맞추려면 출력 보강해야

그동안 국내 SUV 생태계는 현대기아차가 만들어놓은 차급이 견고하게 자리 잡은 상태다. 모하비와 맥스크루즈, 싼타페와 쏘렌토, 투싼과 스포티지, 그리고 코나를 거쳐 스토닉까지 크기와 가격별로 줄을 세웠다.

르노삼성 QM6가 이 기준에서 살짝 벗어난 구성으로 싼타페와 투싼 사이를 파고들었고, 나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전반적인 가격이나 구성을 보면 쉐보레 이쿼녹스는 QM6와 싼타페 사이를 노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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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M6, 이쿼녹스, 싼타페 (좌에서 우로)

이 틈을 성공적으로 비집고 들어가려면 이쿼녹스는 더 강력한 엔진이 필요하다. 9단 자동 변속기도 탐나지만 미국에서도 2.0 가솔린 터보에만 들어가는 터라, 1.5 가솔린을 기다리는 마당에 그것까지 요구할 수 없다.

디자인, 퍼포먼스, 안전의 균형을 추구했다는 이쿼녹스. 퍼포먼스만 빼면 나머지는 수긍할 수 있다. 퍼포먼스도 하체만 놓고 보면 합격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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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단, 나머지 하나가 균형을 깬다. 가격이다. 더 가벼우면서도 강한 차체, 6년 연속 충돌테스트 최고 점수를 받은 안전성 등 기본기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지만, 대중 브랜드에서 가장 민감한 영역 '가격'이 너무 높게 책정됐다는 인상은 피할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 투자할 수 있다면 이쿼녹스가 좋은 대안이 된다. 

데일 설리번 한국지엠 부사장은 "가격보다 가치를 봐 달라"라며 이쿼녹스의 가치를 강조했다. 과연 이쿼녹스는 가격보다 뛰어난 가치를 보여줄 수 있을까?

이광환 carguy@carla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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