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8천만 원?!"

혹자는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고, 다른 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작년 여름 렉서스가 밝힌 LC 500h의 가격에, 많은 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헐~’이었다. 벤츠도, BMW도, 포르쉐도 아닌 ‘고급 토요타’가 1억 8천만 원짜리 스포츠카를? 나 또한 그들 중 한 명이었다.

빈정거림을 빼고 냉정하게 생각해봐도, 온통 독일산 고급차가 판치는 수입차 시장에서 일본산 스포츠카에 붙은 2억 가까운 가격표는 분명 예상을 뛰어넘었다. 경쟁모델로 꼽을 수 있는 BMW i8의 기본가격은 1억 9천6백8십만 원, 포르쉐 911 카레라 S가 1억 5천4백20만 원이다.

i8의 엄청난 할인과 911의 무지막지한 옵션 값을 감안하면 세 모델의 가격차는 더 줄어든다. LC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후광의 엠블럼을 달고, 비슷하거나 더 비싼 몸값을 부른 셈이다.

2010년 단종된 SC의 뒤를 이어 7년 만에 돌아온 렉서스의 고급 스포츠카 LC는 어떤 매력을 담아냈을까? LC의 과감한 가격은 허풍일까, 자신감일까? 렉서스의 최신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품은 LC 500h를 만나봤다.

'L-피네스'의 정점

LC의 시작은 2009년 도쿄모터쇼에서 등장한 슈퍼카 LFA로 거슬러 올라간다. LFA는 ‘궁극의 렉서스’를 표방하며 과거 렉서스의 조용하고 편안하지만 지루한 이미지를 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비록 500대만 한정생산된 뒤 생을 마쳤지만, F1 머신의 울부짖음을 토해내던 V10 엔진과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카본-알루미늄 복합 차체, 독특한 디자인은 지금 기준으로 봐도 혁신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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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등장한 슈퍼카 'L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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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공개된 컨셉트카 'LF-LC'

LFA 생산이 마무리되던 2012년, 북미국제오토쇼 렉서스 부스에는 LF-LC라는 컨셉트카가 등장한다. 렉서스가 추구해온 디자인 철학 ‘L-피네스(L-Finesse)’를 썩 좋아하지 않던 나는 충격받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부분이 새롭고, 어떤 각도에서 봐도 멋진 LF-LC의 자태는 내 뒤통수를 냅다 후려쳤다. LFA가 ‘궁극의 렉서스’였다면, LF-LC는 ‘궁극의 L-피네스’라 부를만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2017년, LF-LC가 양산 모델로 환생했으니, 바로 LC다. (LC앞에 달려있던 ‘LF’는 ‘L-Finess’의 약자다.) LF-LC의 높은 완성도를 보고 짐작했지만, LC는 LF-LC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았다.

실제로 도요다 아키오 토요타 회장은 LF-LC의 양산화를 지시하면서 가장 먼저 내건 조건이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LFA의 정신과 LF-LC의 디자인까지 그대로 이어받은 LC는 영롱한 자태를 뽐내며 세상에 태어났다.

역시 오늘날 렉서스 디자인은 스핀들 그릴에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스핀들 그릴’이란는 단어에서 (차를 앞에서 봤을 때) 그릴 허리 양쪽이 움푹 들어 모양만 떠올린다. 반면 LC에 적용된 스핀들 그릴을 옆에서 보면, 가운데가 제법 뾰족하게 나왔다 아래로 내려갈 수록 안쪽으로 들어가는 볼륨을 발견하게 된다. 안쪽 패턴도 어느 구석 같은 곳이 없다. 오히려 컨셉트카 LF-LC보다 정교하고 비싸 보일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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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보이는 스핀들 그릴의 볼륨도 상당하다

헤드램프는 또 어떤가? 커다란 삼각형 커버 안에 작은 삼각형 광원 세 개가 옹기종기 자리했고, 안쪽에서 뻗어나간 화살촉 모양 주간주행등이 스핀들 그릴의 허리를 찌른다. 2013년 3세대 IS를 통해 양산차 중 처음 헤드램프에서 떨어져 나온 이 주간주행등은 복잡한 모양과 높은 생산 단가 때문에 내부에서도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아마 그들도 훗날 이만큼 멋지게 진화할 줄 미처 예상치 못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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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형 속의 삼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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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촉 모양 주간주행등이 스핀들 그릴의 허리를 찌른다

방향지시등은 헤드램프에서 모서리를 타고 흘러내려 수직으로 자리했다. 정형화된 공산품보단 자유로운 공예품에 가깝다.

LC를 보면 바퀴 크기가 소위 ‘자세’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지 확실히 알 수 있다. 물론 파워트레인과 하체 성능이 뒷받침 될 때 얘기다. 휠하우스를 가득 채운 휠은 무려 21인치. 대형 SUV쯤 돼야 종종 볼 수 있는 크기다. 디자이너들이 괜히 스케치할 때 바퀴를 크게 그리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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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넓은 차체와 21인치 휠이 당당한 자세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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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245/40R21, 뒤: 275/35R21

앞바퀴 휠하우스 정점에서 A필러를 향해 뻗어가는 곡면도 LC만의 특징. 프런트펜더의 윗면과 옆면을 나누는 경계인데, 흔치 않은 곳에서 빛이 스르륵 넘어가니 상당히 독특하다. 덕분에 앞바퀴 위 차체가 보닛 주름을 향해 급격히 안으로 모아져, 앞바퀴는 보다 바깥으로 넓게(윤거), 앞머리는 좀 더 낮게 보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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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프런트펜더의 굴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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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바퀴 휠하우스 주변 공기 흐름을 가다듬기 위한 흡기구

LFA의 C필러 흡기구는 LC로 오면서 흔적으로 남았지만, 불룩 튀어나온 리어펜더와 함께 볼륨감 넘치는 엉덩이를 빚어낸다. 특히 사이드미러에 비춰보면 마치 샤워 후 욕실 거울로 본 내 몸같이 섹시하다. LC 엉덩이는 시간이 지난 후 내려서 보거나 사진으로 봐도 여전히 섹시한 게 극명한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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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미러에 비친 엉덩이가 섹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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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에 쏙 숨어 들어가는 플러쉬 타입 도어핸들

LC의 아름다움은 뒤에서 봐도 줄지 않는다. 전면 스핀들그릴을 닮은 ‘> <’ 모양 선이 후면부의 전체 인상을 만든다. 백미는 역시 리어램프. 밝기가 다른 ‘L’자를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흐려지게 배치해 극적인 공간감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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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와 2열 시트 등받이 사이에 하이브리드 베터리가 위치했다

LFA에 쓰였던 역삼각형 3구 배기구는 아쉽게도 빠졌다. LFA만 연주할 수 있는 범접 불가 배기음을 위해 상징으로 남기고 싶었을까? 아무래도 LFA는 LC와 차원이 다른 급인 데다 LF-LC의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려다 보니, 일부 LFA의 터치는 LC에서 찾아볼 수 없다. 다음 렉서스 슈퍼카에 다시 적용해 주길 기대하기엔, 그때까지 내연기관이 위세를 떨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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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LFA / 우: LC 500h

 

현대 건축물을 닮은 실내

미국 L.A.에 가면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이 있다. 거장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작품으로, 곡선과 덩어리가 인상적인 현대 건축물이다. 나는 LC의 실내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 이곳이 떠올랐다. 큰 덩어리들이 층층이 쌓인 입체감과, 면과 면 사이 곡선들의 우아한 듯 절도 있는 모습이 닮아서다. LC의 실내는 이미 문을 여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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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

소재도 부티가 흐른다. 실내 대부분을 덮은 가죽을 기본으로, 도어트림과 시트 일부, 천장은 알칸타라를 썼다. 중간중간 들어간 금속은 반사를 줄여 은은하게 빛을 발한다. 금속 조작부와 가죽 내장재가 적절히 어울려 차가움과 따듯함, 첨단과 감성이 공존한다. 시승차 실내가 만약 검정과 빨강 조합이었거나, 베이지 사양이었다면 좀 더 고급스러웠을 텐데……

밖에서 헤드램프와 리어램프가 보여준 빛의 향연은 계기반에서 방점을 찍는다. LCD 화면을 바탕으로 중앙에 금속 원을 달았는데, 이 또한 LFA의 유산이다. 운전대 좌측 버튼을 누르면 금속 원이 우측으로 이동하며 좌측에 다양한 부가정보를 띄워준다.

디지털에 아날로그를 버무린 방식으로, 오토매틱 시계 브랜드에서 만든 스마트워치 같은 느낌이다. 예나 지금이나 신기하고 멋져서 자꾸만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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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모드 변경에 따른 다양한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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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고보니 1세대 IS도 계기반이 꼭 시계같았다

계기반 양쪽 슈렉 귀처럼 튀어나온 뭉치는 좌측이 주행안정장치, 우측이 주행 모드를 조절하는 다이얼이다. 흔한 기능이지만 독특한 위치에 멋지게 달아놓으니 뭔가 더 대단한 장치 같다. 운전자 시야 가까이 위치해, 수시로 적극 활용하라는 렉서스의 의도도 읽을 수 있다.

특히 오른쪽 드라이브 모드 다이얼은 위로 돌리면 ‘스포트’와 ‘스포트+’를 오가고, 아래로 돌리면 ‘컴포트’와 ‘에코’ 순으로 변하며, 버튼을 누르면 ‘노멀’에서 ‘커스텀’으로 바뀐다. 어느 모드에 있건 위의 방식대로 바로 변경 가능하니, 다른 차들처럼 원하는 모드까지 계속 누를 필요 없어 직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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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안정장치 다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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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모드 다이얼

기타 사소한 부분도 돈값을 한다. 공조장치 조작부는 금속재질 가운데 기다란 액정 표시창을 품어 꼭 일본 가전제품을 닮았다. 보기도, 쓰기도 만족스럽다. 촉촉한 버튼 조작감도 일품. 센터터널에 자리한 오디오 볼륨 조절 다이얼도 마음에 쏙 든다. ‘도로록’ 단계는 없지만 묵직하고 부드럽게 돌아가는 느낌이 영락없는 하이파이 홈오디오다. 도어핸들은 똑 떼어서 내 방문 손잡이로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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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전제품을 닮은 공조장치 조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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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레빈슨 프리미엄 서라운드 오디오 시스템. 스피커 그릴을 알루미늄 깎아서 덮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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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하고 부드럽게 돌아가는 오디오 볼륨조절 다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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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 도어핸들은 형태나 소재 모두 ‘명품’이라 부를만 하다. 똑 떼어서 내 방문 손잡이로 쓰고싶다

아쉬움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렉서스가 꾸준히 밀고 있는 인터페이스 ‘RTI(Remote Touch Interface, 리모트 터치 인터페이스)’다. 노트북 터치패드처럼 생긴 곳에 손가락을 대고 그리는 방식인데, 사용 편의성이 좋지 않다. 손끝으로 10.3인치 모니터에서 한 방에 원하는 곳을 선택하기란 때 낀 볼마우스로 게임하는 것만큼 어렵다. 이럴 거면 차라리 터치방식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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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트 터치 인터페이스'는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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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인치 디스플레이

도어트림 상단, 잠김 표시등도 예사롭지 않다. 문이 잠기면 조그만 녹색등이 들어온다. 특이하지만, 야간 운전시 조금 거슬린다. 차선 변경을 위해 좌측 사이드미러를 보려고 고개를 살짝 돌리면, 이 녹색불이 시야 끝에 찔끔 들어온다. 아무리 작고 구석이라도, 어둠 속에서 반짝거리니 꼭 뒤에서 다가오는 차 불빛인 줄 의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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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 잠김 표시등

그동안 경험한 렉서스 모델들 대부분은 창문 여닫힘 동작 막바지에 속도를 줄였다. 렉서스다운 배려였다. LC는 플래그십 모델임에도 속도 변화 없이 동작을 마무리한다. 그럼 이건 ‘쿠페다움’을 위한 배려인가? 지적사항은 아니고 의아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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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S 기능이 들어간 아날로그 시계는 세계 어디를 가도 현지 시간으로 설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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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임을 상징하는 푸른색 시동... 아니 전원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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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도 멋지고, 편안하면서, 몸을 잘 붙들어 주는 시트. 요추받침 높이 조절만 넣어줬으면……

 

두 마리 토끼 다 잡은 '멀티스테이지 하이브리드'

LC 500h의 보닛 아래는 토요타가 지금까지 만든 가장 최신이고, 제일 복잡한 하이브리드 기술이 들어갔다. 3.5리터 V6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과 전기모터 2개가 들어가 합산출력 359마력을 발휘한다. 엔진의 299, 모터의 179마력이 합쳐진 결과다.

그동안 토요타와 렉서스는 하이브리드 모델에 CVT(무단변속기)를 써왔으며, CVT야말로 효율을 끌어내는데 가장 적합하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CVT 특유의 이질감과 고무줄 늘어지는 듯한 가속은 치명적인 태생적 단점. 이를 감추기 위해 최근 닛산은 ‘D-스텝’으로 불리는 가상의 변속 패턴을 적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느낌상 개선일 뿐, 실제 성능을 높여줄 수 없고 값비싼 최고급 기함에 적용하기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렉서스가 만들어낸 기술이 바로 ‘멀티스테이지 하이브리드(Multi-stage Hybrid)’다.

기존에 쓰던 CVT 변속기에 자동 4단 변속기를 조합해 10단 자동변속기 같은 느낌을 연출했다. CVT의 3단과 자동변속기의 3단을 조합해 총 9단을 만들고, 여기에 CVT와 자동변속기의 가장 높은 단을 맞물려 오버드라이브용 10단을 만드는 식이다.

효과는 확실하다. 가속페달을 짓밟자 다단화된 변속기가 숨 가쁘게 바통을 넘기며 솟구치는 RPM 바늘을 줄기차게 다독인다. CVT의 답답함은 찾아볼 수 없다. 10단으로 정속주행 중 급가속을 시도하면, 한 번에 무려 5단을 내리며 왈칵 토크를 끌어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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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네슘 시프트페들

수동모드에서 마그네슘 시프트페들을 딸깍이면, 기대 이상으로 빠른 반응이 돌아온다. LC 500h와 동일한 파워트레인을 공유하는 세단, LS 500h보다 나사를 반 바퀴 더 조인 느낌이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운전재미를 언급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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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스테이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공유하는 LC 500h(좌)와 LS 500h(우)

다만, 자동모드에서 교통흐름에 맞춰 섬세하게 가감속을 하다 보면 이질감도 든다. CVT의 이질감을 말하는 게 아니다. 변속에 무척이나 적극적이고 페달 조작에 민감하게 반응하니,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계속 기어를 바꿔 물며 엔진 회전수가 오르내린다. 당연히 엔진음도 변화무쌍하게 바뀔 수밖에. 미세한 조작에 요란한 반응이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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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고 적극적인 변속. 렉서스는 'DMI(Driver’s Mind Index)'라고 부른다

그 와중에 중간중간 큰 힘이 필요 없으면 엔진이 아이들링 상태까지 쉬었다가, 때로는 아예 꺼져버리기도 한다. 다가 아니다. 배터리 잔량이 부족하다 싶으면 시나브로 깨어나 충전까지 한다. 모터도 상황은 마찬가지. 엔진에 힘 보태랴, 한가할 땐 혼자 구동을 책임지기도 한다. 제동 시엔 발전기로 역할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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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고 복잡한 에너지 거래는 계기반으로 확인 가능하다

이렇게 엔진과 모터, 바퀴 사이의 은밀하고 복잡한 에너지 거래는 계기반을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렵다. 계기반을 본다 한들, 상황별 작동 로직은 일반인이 감히 헤아릴 수 없다. 불쾌하지는 않지만 뭔가 엄청나게 복잡한 일이 일어나고, 이를 운전자가 알아챌 수 있어 결국 미묘한 이질감으로 전달된다.

LC 500h이 멀티스테이지 하이브리드를 통해 잡은 첫 번째 토끼가 운전재미였다면, 두 번째는 준수한 연비다. LC 500h과 함께 달린 520km 중 기록한 평균연비는 7.8km/L. 비록 복합 공인연비 10.9km/L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결코 탓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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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 중 기록한 연비는 7.8km/L

2,010kg의 공차중량에 359마력, 21인치 휠, 장시간 공회전, 얌전하지 않았던 운행 패턴을 대입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다. 비슷한 조건을 순수 내연기관으로 달렸다면 아마 3km는 더 낮게 나왔을걸? 그것 조금 아낀 게 뭐가 대수냐고 물을 수 있다. 요즘은 ‘그깟 몇 km’가 아니라 ‘무려 몇 km’가 맞는 시대다.

가속은 딱 300마력 중반대 느낌이다. 과거 경험했던 제네시스 G70 3.3T나 기아 스팅어 GT와 비슷하다. 가격을 생각하면 한 100마력쯤 더 높았어도 좋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사실 일상에서 재밌게 타기 충분하다.

제법 ‘스포티’한 출력을 200마력대라고 한다면, 300마력대부터는 본격적으로 ‘밟는 대로 나가는’ 영역이다. 400마력대부터는 잉여로움이 부담스럽기 시작한다. 효율을 포기할 수 없는 하이브리드 GT, LC 500h는 ‘잉여롭지 않으면서 밟는대로 나가는’ 딱 그 정도로 달린다.

멀티스테이지 하이브리드 못지않게 LC 500h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하체다. 럭셔리 GT에 어울리도록 승차감과 운동성능 사이 균형을 맞춘 뒤, 양 끝단을 연장했다. 하체 대응 폭이 그만큼 넓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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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멀티링크 서스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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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멀티링크 서스펜션

LC 500h는 서두에서 언급했던 포르쉐 911은 물론이고, BMW i8보다도 훨씬 너그럽고 상냥하게 탑승자의 엉덩이를 배려한다. 눈 감고 타면 스포츠세단이라고 해도 일말의 의심 없이 믿을 정도다. 네 모퉁이 거대한 21인치 휠과 딱딱한 런플랫 타이어까지 생각하면 더 놀랍다.

21세기 고급 GT에게 뛰어난 승차감은 부족한 운동성능의 핑계가 될 수 없다. LC 500h는 과격한 조작에도 짧은 스트로크(상하 움직임의 폭)로 간결한 움직임을 보인다. 절제된 롤링(좌우 기울어짐)과 피칭(앞뒤 기울어짐)으로 과감한 코너링에서 신뢰를 높인다. 다만 2톤이 넘는 무게 부담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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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중심을 낮추는 카본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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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80km에서 자동으로 솟아 나오는 리어윙. 실내 버튼으로도 펼 수 있다

앞 6피스톤, 뒤 4피스톤 구성의 브레이크는 힘든 기색 없이 LC 500h를 멈춰 세운다. 전체적으로 LC 500h는 제동력과 하체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이는 LC 500h보다 118마력 강력한 LC 500까지 염두에 두고 개발했기 때문이 아닐까? LC 500은 V8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을 얹고 477마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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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6피스톤, 뒤 4피스톤 브레이크

 

근거 있는 자신감!

LC 500h는 승차감도 훌륭했지만, ‘하차감’이 특히 뛰어났다. 신호대기 중이거나 복잡한 골목을 지날 때면, 신기하게 바라보는 주변 시선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곤 했다. 그런 시선 속에서 문을 열고 내리는 일이란 보통 으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졸부라 흉봐도 좋다. 좋은 건 좋은 거니까.

LC 500h의 디자인은 그만큼 타는 사람, 보는 사람 모두에게 신비롭고 황홀한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했다. 차에 별 관심 없는 사람도 LC를 보고 렉서스 엠블럼을 기억하게 될 터다. 그들의 기억이 모이고 쌓여, 렉서스의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 결국 다른 렉서스 형제 모델들도 언젠가 그 덕을 보게 된다.

현대기아차도 LC처럼 상징적인 모델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제네시스라면 더 어울리겠지? 몇 대 팔지 못하거나 별로 남기지 못하더라도, 길거리에서 고개 돌려 쳐다보며 동경의 시선을 보낼 수 있는 모델 말이다.

당장은 어려울 수 있겠으나, 준비는 필요하다. LC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듯, 현대기아차도 LFA 같은 모델을 만들어 토대를 다져야 한다. 최근 공개한 컨셉트카 ‘에센시아’를 첫 단추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아! 그래서 LC 500h가 돈값 하냐고? 솔직히 시승을 모두 마친 지금도 가격이 다소 높은 감은 지울 수 없다. 단, 한 가지 바뀐 생각은 렉서스가 붙인 LC 500h의 가격표가 만용이 아니라 자신감이란 점이다. LC 500h는 렉서스가 추구하는 디자인과 기술로 꽉 들어찼다. 매끈하고 아름다우며, 효율적이고 재미있다. 충분히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이광환 carguy@carla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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