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회사는 신차로 먹고산다”

번쩍 거리는 새 디자인과 첨단 기능은 오늘도 소비자들의 눈을 현혹시킨다. 기존 모델 구매자는 배가 아프겠지만, 자동차 회사 입장에서는 새차를 내놓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 

신차가 출시되면 수많은 고객들이 전시장에 방문하고, 계약이 줄을 잇는다. 차가 너무 잘 나오면 너도 나도 사려다 물량공급이 달리는 경우도 있다. ‘출시 00일 만에 000대 돌파’라는 자부심 넘치는 보도자료가 도는 것도 이 즈음이다.

하지만 이런 호시절도 잠깐. 짧게는 수개월, 길어봐야 1년 정도가 지나면 ‘신차효과’가 떨어진다. 새로운 경쟁 모델까지 등장하면 시나브로 ‘아웃 오브 안중’이 돼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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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4.5세대 패스파인더 / 우: 4세대 패스파인더

신차를 휴대전화처럼 매년 줄줄이 세대교체하면 오죽 좋겠는가. 자동차는 얘기가 완전히 다르다. 수만 가지 부품들로 이루어져 있는데다 아무리 싸도 천만 원이 훌쩍 넘는 자동차를 해마다 새로 만들기란 쉽지 않다. 제품 교체주기가 몇 년씩 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페이스리프트(Facelift)’다. 범퍼, 헤드램프 등을 새로 디자인하고, 지적받은 부분을 보완해 새로 출시하는 방법이다. 보통 페이스리프트는 얼굴이 바뀌기 때문에 마치 새차가 출시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다만, 페이스리프트가 너무 자주 이뤄지면, 해당 모델을 구입한 기존 고객들의 허탈함은 커질 수밖에 없다. 내 차가 구형이 됐다는 허탈감과 중고차 가격 하락에서 오는 박탈감을 동시에 느껴야 한다. 

지나친 모델 변경이 반복되면 ‘진작에 좀 잘 만들지?’ 혹은 ‘금방 구형되는 거 아니야?’ 같은 반응이 나오면서 결국 브랜드 충성도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성보다 감성이 구매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고가 브랜드일수록 페이스리프트에 소극적인 이유도 여기 있다.

페이스리프트의 핵심은 ‘최소 비용, 최대 효과’다. "살짝 고쳤는데 확 달라 보이네?" 사람 뿐만 아니라 자동차 역시 이런 말을 들어야 성공적인 페이스리프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자동차 회사들은 보통, (철판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돈이 드는) 플라스틱 부품을 변경하고, 장식 디자인을 바꾸는 방법을 쓴다. 앞뒤 범퍼와 램프, 휠 등이 주로 칼질을 당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쉽게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페이스리프트는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 매출을 늘려주는 1차적 효과는 물론, 브랜드 이미지 제고로 연결된다. 트렌디한 디자인과 신기술을 재빨리 반영하면 역동적인 브랜드 이미지도 심어줄 수 있다.

올해는 어떤 모델들이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는지, 성공 사례를 몇 대 꼽아봤다.

 

인피니티 더 뉴 Q50 블루 스포츠

Q50은 2013년 등장한 인피니티 최고의 인기 모델이다. 그중에서도 ‘Q50s 하이브리드’는 눈을 즐겁게 하는 멋진 디자인에 이미 성능이 검증된 3.5리터 VQ 엔진을 바탕으로 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무려 364마력 56kg.m를 발휘한다. 비슷한 가격대의 독일 경쟁자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 충분한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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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Before / 아래: After

Q50은 기본적인 비례가 너무 멋지게 나온 탓에 차세대 모델은 어떻게 바뀔까 항상 궁금했다. 그러던 올해 9월, 인피니티는 ‘더 뉴 Q50 블루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출시했다. 주요 시장인 미국의 소비자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육감적인 몸매는 그대로 유지한 채, 좀 더 공격적인 인상과 ‘있어 보이는’ 효과를 꾀한 것이 특징.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더블아치’ 그릴의 확대다. 기존보다 커진 그릴은 보다 많은 공기를 집어삼킬 듯 공격적이다. 헤드램프와 그릴 주변 주름을 더 역동적으로 디자인했고, 범퍼 양쪽 아래 스플리터를 검은색 유광 플라스틱으로 처리하면서 고성능 이미지까지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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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Before / 아래: After

리어램프는 그래픽만 변경했다. 광원을 각진 ‘L’모양으로 바꾸면서 날개형상으로 새로 디자인했다. 형님 Q70에서 사용된 방법으로 좀 더 끈끈한 패밀리룩을 이룬다. 

범퍼에 리어 디퓨저를 추가한 것은 신의 한수다. 시각적 성능을 확 올려준다. 이와 함께 머플러 주변을 검은색 패널로 덧대 스포티한 감각을 끌어올렸다. 마치 Q50 고성능 버전이 새로 추가된 것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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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Before / 아래: 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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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Before / 우: After

실내 역시 스포티해 보이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전반적인 실내 디자인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스티어링 휠 디자인이 완전히 새로워지고 기어레버 디자인에 디테일이 추가되면서 신차효과를 노리고 있다. 

기존 인피니티 Q50은 날렵하면서도 안정된 측면 비례가 일품이었으나, 다소 단순하게 디자인된 범퍼 등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페이스리프트에서는 아끼지 않고 만든 듯한 정성을 보여주면서 성공적인 페이스리프트 사례로 꼽히게 됐다.

 

더 뉴 쏘렌토

2014년 가을 출시된 3세대 쏘렌토는 기아차 최고의 효자 모델이다. 현대 싼타페와 엎치락뒤치락 순위 변동이 있기도 했지만, 결과는 쏘렌토의 판정승. 특히 올해 3월부터는 국산 중형 SUV 판매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지난달에는 국산차 전체 판매량 3위에 오르기도 했는데, 이는 7월 적용된 페이스리프트의 역할이 크다. 소비자들이 아쉬워 하던 부분만 족집게 식으로 보완한 덕분에 기대 이상의 내실 다지기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겉모습에서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은 헤드램프다. 기존 HID 대신 광원 3개로 구성된 LED가 자리 잡으면서 눈이 한결 밝아졌다. 운전대 방향에 따라 빛의 방향을 바꾸는 다이내믹 밴딩 라이트(DBL) 기능도 품었다. 상단부 주간주행등은 아래로 내려와 방향지시등 기능까지 겸한다.

이 밖에 리어램프도 헤드램프처럼 내부 구성을 달리했다. 앞뒤 범퍼 형상도 조금씩 바뀌었으며, 뒷 범퍼 안쪽에 숨어 있던 배기파이프는 마침내 사각형 트윈팁까지 달고 당당히 밖에 고개를 내밀었다.

실내에서는 운전대와 기어노브 디자인이 바뀌었고, 시트에 갈색 ‘브릭 브라운’ 신규 컬러와 옆구리 다이아몬드 퀼팅 처리가 추가됐다.

파워트레인도 개선했다. 기존 6단에서 8단으로 바뀐 자동변속기는 이번 페이스리프트의 핵심 변경사항으로 꼽을 수 있다. 세계적인 다단화 흐름에 발맞춰 개선된 효율을 챙겼다. 여기에 ‘차로 이탈 방지 보조 시스템’도 마련해 첨단 이미지까지 한 스푼 추가했다.

좋은 줄 알지만 가격이 비싸 쓰지 않았던, 그래서 많은 비난을 받았던 ‘R-MDPS(랙 구동형 전동식 파워스티어링)’도 드디어 적용했다. 내수 차별 논란에서 벗어나고, 실제 핸들링 성능도 개선할 수 있는 반가운 변화다.

쏘렌토는 워낙 길거리에서 쉽게 자주 볼 수 있는 모델인 만큼 금방 식상해지기 쉽다. 단기간 내에 사람들 뇌리에 ‘구형’으로 인식될 수 있다. 아무도 ‘구형’처럼 느껴지는 새 차를 사고 싶어 하지 않을 터. 그런 점에서 쏘렌토의 이번 페이스리프트는 매우 시의적절했다.

 

4.5세대 패스파인더

지난 9월 닛산은 4.5세대 패스파인더를 출시했다. 패스파인더는 길이가 5미터를 넘고, 키는 나(173cm)보다 무려 65mm가 큰 닛산 대표 대형 SUV. 2012년 말 4세대 모델이 등장했으며, 거의 5년 만에 4.5세대로 거듭났다.

이번 변화는 앞모습에 집중됐다. 닛산의 상징 ‘V-모션 그릴’이 적용돼 브랜드 정체성이 보다 확실해졌다. 자세히 보면, 보닛의 형상도 달라졌다. 추가 비용 발생을 감수하더라도 그릴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신경 썼다.

헤드램프 아랫면은 꺾임을 넣고, 범퍼 양 끝은 없던 면을 추가해 평평하던 얼굴이 한결 입체적으로 보인다. 안쪽으로 부메랑 스타일 주간주행등을 품었고, 프로젝션 타입 램프를 써 또렷한 눈동자도 생겼다. 사이드미러에 추가된 방향지시등도 5년의 세월을 줄여주는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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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4.5세대 / 우: 4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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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4세대 / 우: 4.5세대

뒷면은 사소한 변화가 더해졌다. 둥글둥글하던 뒤 범퍼 모서리는 앞 범퍼처럼 면을 추가해 통일감을 살렸다. 빨간색과 흰색으로 된 리어램프를 모두 빨간색으로 덮은 것은 특정 효과를 노렸다기보다 신선함을 주기 위함으로 보인다.

 

쏘나타 뉴 라이즈

작년 말, 여기저기서 쏘나타에 대한 흉흉한 소식이 들려왔다. 2014년 봄에 태어난 7세대 쏘나타의 판매가 시원치 않다는 내용이었다. 판매량에서 르노삼성 SM6에 뒤졌다는 통계도 나왔다. 30여 년간 대한민국 대표 페밀리 세단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쏘나타로서는 치욕스러운 결과.

하지만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현대차가 아니다. 올 3월, 불과 3년 만에 LF 쏘나타를 확 뜯어고쳤다. 변화 정도가 거의 ‘완전신차’급이었다.

곡선보다 직선을, 기교보다 정석을 택해 점잖고 차분했던 LF 쏘나타의 이미지를 정 반대로 바꿨다. 페이스리프트로 디자인 방향까지 바꾸는 사례는 흔치 않다. 현대차의 위기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되는 부분.

이제는 현대차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케스케이딩 그릴이 쏘나타에 처음 적용됐고, 당연히 여기에 맞춰 범퍼와 헤드램프가 싹 바뀌었다. 그릴과 범퍼 하단, 헤드램프 주변에 크롬을 둘러 화려하고 고급스러워 보인다. 창문을 감싼 크롬 몰딩도 면을 나눠 입체감을 부여했다.

먼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변경도 있다. 전면부를 기존보다 낮춰 보닛은 좀 더 길어 보이고, 전체적으로 넓게 보이는 효과를 노렸다. 보닛과 주변 부품까지 새로 만들어 많은 비용이 들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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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LF 쏘나타 / 아래: 쏘나타 뉴 라이즈

뒷모습도 대폭 수정됐다. 번호판이 범퍼로 내려가고, 그 자리는 ‘SONATA’ 레터링이 대신했다. 약 4달 먼저 출시된 그랜저 IG와 같은 공간 배치다. 각 요소들을 넓게 배치해 시원스러워 보이고, 상급 모델의 이미지를 차용해 신분상승효과까지 얻었다.

주행 조향보조와 자동 긴급제동 등을 포함하는 현대 ‘스마트 센스’를 포함시켜 안전사양도 확충했다. 주행 중 후방영상 디스플레이와 혼유 방지 연료주입구, 스마트폰 무선충전기 등 소소한 개선도 대폭 포함돼 전체적인 상품성 향상을 도왔다.

지난달 쏘나타는 K5(16위), SM6(22위), 말리부(23위)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전체 국산차 판매량 3위에 올랐다. 대대적인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뉴 라이즈’ 덕분에 이름처럼 새롭게 떠올랐다.

이광환 carguy@carla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