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의 부산은 푸르렀다. 하늘도, 바다도, 휴가철을 맞은 피서객들의 마음도 눈부시게 푸르렀다.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 사이, 시원한 바닷바람 속에서 BMW가 새로운 4시리즈를 발표했다.

BMW의 짝수 시리즈는 유독 차덕들의 마음을 뛰게 한다. 홀수 시리즈 형제들보다 사나워 보이는 얼굴과 매끈한 몸매는 더 잘 달릴 것 같은 느낌을 주며 보다 큰 기대를 부른다. 비록 동급의 홀수 형제와 큰 차이 없는 운동성능을 보일지라도 높은 시각적 만족감은 분명 짝수 시리즈의 장점이다.

3시리즈는 분명 오늘날의 BMW를 만든 주역이자 기둥이다. 현행 4시리즈는 2011년부터 판매된 6세대 3시리즈를 기본으로 2013년 공개됐으며, 기존 ‘3시리즈 쿠페’를 대신했다. 이후 ‘컨버터블’과 ‘그란 쿠페’로 영역을 넓혔으며, ‘M 뱃지’를 달고 ‘M4’와 ‘M4 컨버터블’이 됐다.

4년 만에 변경된 4시리즈는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부산에서 행사가 열리기 전,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봤지만... 대단한 차이는 없었다. 부산에서 직접 만난 4시리즈에서도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길거리에서 슥 지나가도 ‘저 사람 새 차 샀다’며 부러워할 수 없겠다.

자세한 변경 내용은 다음 기사를 참고하자.
<BMW 코리아, 화장 슬쩍 고친 '뉴 4시리즈' 공개> 기사읽기

변경사항이 크지 않다는 점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움을 기대하던 대기 소비자들은 실망할 수 있는 반면, 이미 4시리즈를 소유하고 있는 기존 고객들에겐 희소식이다. 상대적 박탈감이 덜하고, 중고 가격 하락도 막을 수 있다.

시승차량으로는 ‘420i 쿠페’와 ‘420i 그란 쿠페’ 두 모델이 나왔다. 전체 4시리즈 판매량의 대다수를 차지할 420d가 빠진 점은 크게 아쉬웠다. 아직 인증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니 어쩔 수 없다. 4시리즈에 얹히는 파워트레인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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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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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종별 파워트레인 구성

차종별 구성은 기존과 다르지 않다. 다만 428i가 430i로 이름을 바꾸고 출력이 7마력 상승했다. M4는 ‘컴페디션 패키지’를 기본 장착해 기존 431마력에서 19마력이 향상된 450마력을 발휘한다.

‘컴페디션 패키지’에는 20인치 전용 휠과 M 어댑티브 서스펜션, M 경량시트, M전용 시트밸트, M 스포츠 배기 시스템이 포함된다.

 

원하는 시승차를 골라야 하는 순간, 기자는 그란 쿠페를 택했다. 최근 기아 ‘스팅어’ 출시로 4도어 쿠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스팅어가 경쟁상대로 지목했던 모델도 바로 BMW 4시리즈 그란 쿠페였기 때문이다.

시승차에 얹힌 4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은 184마력 27.6kgm을 발휘한다. 변속기도 여전히 8단 자동이 쓰였다. 제원표상 시속 100km 가속시간은 7.6초, 최고속도는 236km/h다. 1,665kg의 몸무게를 감안하면 평범하거나 ‘스포티’란 형용사를 슬쩍 붙일 수준이겠다.

BMW를 타고 즐기는 휴가철 초입의 부산 해안길 드라이브는 분명 콧노래가 절로 나올 법 하지만, 함께한 동승자가 시커먼 남자 둘이란 사실이 흥을 깬다. 그도 그럴 것이 성인 남자 셋이면 벌써 최소 210kg이다.

유유자적 교통흐름을 따라가면, 나긋나긋 부드러운 하체와 가솔린 엔진이 주는 정숙함이 쾌적한 주행을 약속한다. 힘의 부족도 느낄 수 없다. 뒷문을 달고 2열 승객을 배려한 그란 쿠페에 더 어울리는 태도임과 동시에 대다수 운전자들의 실제 운전 방식일 터.

하지만, 일반적인지 않은 방식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늘어난 무게 탓일까? 오른발 끝에 꾹 힘을 줘 가속페달을 짓이겨도 기대만큼 내달리지는 않았다. 엔진 회전수는 6,800RPM을 찔러대며 빠르게 치솟지만 속도계 바늘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다.

특히 저속 구간 급가속시, 토크에 대한 갈증이 슬금슬금 피어오른다. 그란 쿠페에 들어갈 또 다른 엔진 420d와 435d가 더 궁금해지는 이유다. 이 중 640d와 같은 엔진을 품은 435d는 313마력 64.3kgm을 내 420i에서 느낀 아쉬움을 시원히 풀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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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d 그란 쿠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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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i 그란 쿠페

그렇다고 420i가 맹탕은 아니다. 밀도 있는 엔진음은 듣기 나쁘지 않고, 엔진 힘을 빠릿빠릿 뽑아주는 ZF 8단 자동변속기에선 노련미가 느껴진다. 오랫동안 BMW의 다양한 모델들과 짝을 맞춰온 만큼 숙성도가 높다. 한계속도에 다다르기까지 지치지 않고 야금야금 속도를 올려가는 모습도 독일차답다. 소음과 고속주행 안정감도 흠잡을 부분이 없다.

하체와 제동 느낌도 가속만큼 나긋하다. 시내에서 만나는 노면 충격을 걸러내는 정도는 쿠페보다 패밀리 세단에 좀 더 가깝다. 브레이크 페달도 반응도 초반보다 후반으로 갈수록 농도가 짙어져, 편안히 감속하면서 필요할 땐 강하게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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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내퍼 락스' 색상을 칠한 420i 쿠페

굽이진 해안도로를 험하게 달리니 부드러운 하체가 롤링(좌우 기울어짐)을 허용한다. BMW가 정말 부드러워졌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대목. 예전의 BMW였다면 빠득빠득 무게 이동을 거부했겠지만, 이젠 너그럽게 허용한다.

그 와중에도 타이어 마찰음이 올라오는 단계에 이르면 마냥 너그럽진 않다. 적정선을 지키며 안정된 코너링을 도모하는 게 ‘역시 BMW’임을 깨우쳐준다. 평소엔 인자하지만 화나면 엄격한 선생님 같다.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420i나 420d를 생각하는 소비자라면 '4'라는 숫자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는거다. 으레 4시리즈라고 하면 'M4'나 4시리즈 쿠페를 떠올리면서 아주 화끈한 주행성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 420은 화끈한 운동성능보다는 BMW의 기본기와 세련된 디자인을 즐기는차로 이해해야 한다.

운전대를 넘겨주고 실내를 둘러볼 차례. 기본 구성은 차이가 없고, 군데군데 소재를 개선했다. 가장 눈에 띄는 개선은 대시보드 상단을 덮은 가죽과 바늘땀이다. 시각적 만족감은 물론 플라스틱이 아무리 말랑거려도 손끝에 느껴지는 만족감이 가죽만 하랴.

센터패시아 상단 모니터는 먼저 선보인 7시리즈와 5시리즈와 같이 타일 메뉴를 제공하고, 전에 없던 3가지 실내 컬러를 선택사양에 추가했다. 공조장치 조작부 하단 USB 포트와 창문 스위치 사이 크롬 장식과 같은 사소한 개선도 있었다.

겉모습에선 앞범퍼에 두른 크롬 립스틱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최신 메르세데스-벤츠가 크롬 장식을 아낌없이 ‘처발처발’하는데서 자극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과거 BMW에 비하면 분명 과감한 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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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i 그란 쿠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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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i 쿠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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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 컨버터블

램프는 상하향등과 리어램프를 비롯해 방향지시등과 안개등까지 모든 광원에 LED를 썼다. 수십 개의 LED로 원하는 곳만 비추거나, 레이저를 사용해 수백 미터까지 밝히는 시대에 대단치 않은 자랑이다. 컬러는 '선셋 오렌지(Sunset Orange)'와 '스내퍼 락스(Snapper Rocks)' 두 가지를 추가했고, 휠은 4가지를 더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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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LED 헤드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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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댑티브 LED 헤드램프 (선택사양)

420i 그란쿠페는 분명 그 자체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은 상품성을 지녔다. 잘생긴 디자인과 기본기 탄탄한 달리기 실력, 쿠페 대비 쾌적한 2열 공간, 끝으로 BMW 엠블럼이 주는 후광 효과까지 고루고루 모난 구석이 없다.

하지만 실내 디자인은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가 부러워지는 것을 막을 수 없고, 주행성능을 뽐내기엔 3.3리터 6기통 엔진을 얹은 기아 스팅어의 370마력이 너무 큰 차이를 만든다.

페이스리프트의 특성상 개선의 여지가 좁을 수밖에 없었음을 알지만, 후발 경쟁자들의 약진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더구나 5,800만 원의 가격표는 큰 할인폭을 감안해도 쉽지 않은 싸움을 예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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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페티션 패키지'가 기본 적용된 M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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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스포츠 패키지'가 기본 적용된 420i 쿠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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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i 그란 쿠페 '럭셔리 라인'

이광환 carguy@carla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