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자른 듯 날카로운 선과 앞으로 쏠린 쐐기형 차체, 벌집모양 육각 패턴은 오늘날 람보르기니 라인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디자인 특징이다. 이런 특징은 라이벌 페라리와 또 다른 매력으로 람보르기니만의 골수팬을 양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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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제네바 모터쇼에 출품된 '마르잘'

람보르기니는 1967년 제네바 모터쇼에 ‘마르잘(Marzal)’이란 이름의 컨셉트카를 전시했다. 낮고 넓은 차체를 비롯해 꾸밈없이 단순한 선과 면, 투명한 옆문은 당시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비율과 소재, 디테일 모두 50년이 지난 오늘날 시선으로 봐도 신선하다.

제작은 이탈리아 유명 카로체리아 ‘베르토네(Bertone)’에서 맡았다. 정확히는 베르토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였던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의 작품이다. 그의 손을 거친 명차에는 마르잘 외에도 란치아 ‘스트라토스 HF 제로(Stratos Zero concept)’, 람보르기니 ‘미우라(Miura)’와 ‘카운타크(Countach)’, BMW 1세대 5시리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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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치아 '스타라토스 HF 제로' (1970)

마르잘의 독특한 4인승, RR(뒤 엔진, 뒷바퀴 굴림) 구조는 미우라의 섀시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최초의 미드십 슈퍼카‘로 불리는 미우라는 매우 독특하게도 엔진을 뒷바퀴 바로 앞에 가로로 얹었다. 12기통의 커다란 엔진에도 불구하고 2명이 넓은 공간을 즐길 수 있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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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 '미우라'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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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 '미우라'의 섀시

마르잘은 미우라의 섀시를 가져다 대대적인 손질을 가했다. 휠베이스를 120mm나 늘여 2,620mm를 확보하고, 미드십에 얹혔던 엔진은 뒤로 보냈다. 그 결과, 어엿한 무릎공간을 갖춘 시트 4개를 얹을 수 있었다. 또 B필러(차체 중앙 앞뒤 문 사이 기둥)가 없는 기다란 걸윙도어는 모든 승객이 편하게 타고 내릴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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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투명 걸윙도어를 달고 B필러가 없어 개방감이 뛰어나다. 엔진은 뒷바퀴 뒤에 실었다.

미우라는 3.9리터 350마력 V12 엔진을 갖고 있었지만, 마르잘은 좌위 실린더를 반으로 잘라 2리터 직렬 6기통이 됐다. 출력도 미우라의 딱 절반인 175마력. 변속기는 미우라와 같은 5단 수동을 맞물렸다.

앞뒤 바퀴 사이를 가득 차지하는 옆문은 온통 투명하다. 걸윙도어의 대명사 메르세데스-벤츠 ‘300SL’보다 미래적이고, 2011년 BMW ‘i8 컨셉트’를 처음 봤을 때만큼 신선하다. ‘멋진 자동차 문’을 가리는 심사가 있다면 상위 후보에 오르기 충분하겠다. 투명 옆문과 천장은 마르잘의 실내를 컨버터블 못지않을 만큼 밝고 화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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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i8 컨셉트 (2011)

마르잘 디자인에는 수없이 많은 육각형 패턴을 찾을 수 있다. 뒷유리 자리의 엔진 덮개를 시작으로 계기반과 스티어링휠, 센터페시아까지 온통 벌집모양이다. 오늘날 람보르기니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는 아벤타도르와 우라칸은 물론, 머지않아 공개될 우르스에도 육각형은 여기저기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람보르기니의 육각형 사랑은 역사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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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각형 엔진덮개. 주상절리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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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구와 뒷면 통풍구 패턴에서 육각형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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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잘'의 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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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벤타도르(위)와 우라칸(아래)의 실내. 사이드미러와 운전대, 각종 스위치가 모두 육각형을 닮았다

마르잘은 비록 양산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단 1대만 제작됐지만, 1년 뒤 출시한 에스파다(Espada)에 많은 디자인 유산을 물려줬다. 그리고 그 유산은 50년이 지난 오늘까지 후손 황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오랫동안 베르토네 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마르잘은 지난 2011년 경매를 통해 약 17억 원의 몸값에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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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다(1968), 투명 걸윙도어와 엔진위치는 컨셉트카만의 멋으로 남았다

이미지:RM 소더비

이광환 carguy@carla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