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모터쇼는 모터쇼계 성골이다. 자동차 세상에서는 올림픽과 같다.

4년 마다 열리는 올림픽과 달리, 제네바 모터쇼는 매년 열린다는 차이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역사 속 숱한 명차들이 제네바에서 베일을 벗은 만큼, 그 권위는 모터쇼 중에서는 최고다. 

그런 만큼, 이 자리에는 전 세계 자동차 관련 기자들이 다 모인다. 마누라 생일은 물론 각종 개인사를 모두 제쳐두고 오는 곳이 바로 제네바 모터쇼다. 자동차계 라마단으로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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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제네바 모터쇼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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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제네바 모터쇼 포스터

그들은 다양한 자동차를 타고 이 곳으로 온다. 바다 건너 다른 대륙에서 오는 사람들은 모터쇼장 인근 호텔에서 걸어 오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이웃 국가 기자들은 자기네 차를 직접 타고 온다. 

만만치 않은 차 덕후인 그들은 어떤 차를 탈까 궁금했다. 모터쇼장 기자 전용 주차장에서 그들이 타고 온 차를 살펴봤다. 아참, 이곳에는 기자 뿐 아니라, 모터쇼 전시 관련 다양한 관계자들도 함께 차를 댄다. 모든 차가 기자의 차는 아니다. 

 

유럽 중심부에 등장한 미국감성

유럽 사람들은 모두 해치백이나 왜건만 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닷지 램 픽업 트럭에 거대한 트레일러를 끌고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조국 특유의 감성이 충실한 캐딜락 ATS-V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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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지 램 픽업트럭, 트레일러가 달려 있다. 시설 관계자의 차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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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고성능 세단 캐딜락 ATS-V

더 놀라운 것은 캐딜락 에스컬레이드가 심심찮게 보였다는 점이다. 유럽에서는 푸조나 폭스바겐 SUV만 탈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주차장에 있던 미국산 SUV는 주로 캐딜락이었다. 에스컬레이드와 SRX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길거리에서는 포드 쿠가, 익스플로러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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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바라보고 있던 에스컬레이드 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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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딜락 SRX

그 뿐 아니다. 크라이슬러 300C 왜건과 닷지 차저 SRT도 있었다. 픽업트럭이야 그 수요가 있을 수 있으니 그렇다 쳐도, 유럽 감성과는 매치가 잘 안 되는 머슬카 차저 SRT의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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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슬러 300C 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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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지 차저 SRT

 

프리미엄 브랜드 

주머니 두둑한 관계자들도 모터쇼를 찾았다. 유럽산 프리미엄 브랜드 차들이 적지 않았다. 사장님 차인지, 회사차인지, 자기가 직접 돈 주고 산 것인지 알 길은 없다. 메르세데스-벤츠 비율이 높았던 점을 주목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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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품있는 모습을 보여줬던 S65 AMG 쿠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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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벤츠 CLA 슈팅브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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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모델은 2시리즈 쿠페, 1시리즈 해치백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는 한 대가 잠깐 나타났다 사라졌다. 신형 BMW 5시리즈는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다. 내가 주차장에 하루 종일 있었던 게 아니라서 왔다 갔을 수도 있다. BMW는 대부분 왜건이거나 2시리즈 쿠페 같이 국내에서는 흔치 않은 차들이었다. 

유럽시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분류되는 볼보도 몇 자리 차지했다. 지난 해 출시한 플래그십 세단 S90 R-디자인과 며칠 뒤 우리나라에도 출시되는 V90이 출현했다. 두 차는 세련된 디자인 때문에 더 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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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 S90 R-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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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 V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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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

SUV의 경우 대부분 아우디 Q3 혹은 Q5였고, 가끔 포르쉐 마칸과 카이엔, BMW X5가 목격됐다. 프리미엄 브랜드 SUV 중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였다. 

 

억소리 나는 럭셔리 브랜드

프리미엄 브랜드보다 더 비싼 차를 가져 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신분이 기자인지 관련 업체 사람인지 궁금했으나 모두들 바삐 모터쇼장으로 들어가버리는 바람에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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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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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 기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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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 벤테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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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 르반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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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턴마틴 라피드

그들은 여러가지 차를 타고 등장했다. 애스턴마틴 라피드 같이 정말 희귀한 차부터, 롤스로이스 레이스처럼 수억원을 호가하는 모델까지 다양했다. 마세라티 기블리는 이들 중에서 가장 저렴한 모델이었다. SUV는 르반떼가 많았다. 

 

유럽에서도 전기차는 테슬라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전기차는 닛산 리프이지만 가장 화제가 되는 차는 테슬라다. 제네바에서도 테슬라는 자주 눈에 띄었다. 모터쇼 관계자들 중에서도 테슬라를 이용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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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모델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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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테슬라 모델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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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모델X, 왼편에 쌍용 티볼리 에어도 보인다

또 다른 친환경 차로는 지난 18일부터 국내에서도 계약을 받기 시작한 쉐보레 볼트EV의 유럽형 오펠 암페라가 있었다. 한 번 충전으로 최대 383km를 달릴 수 있다. 현대 아이오닉 하이브리드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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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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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아이오닉 하이브리드

 

홈그라운드에 등장한 고성능 모델들

친환경차를 살펴봤다면 연비 따위 신경쓰지 않는 고성능차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홈그라운드에 나타난 고성능 차들은 아우디 A1 튜닝카부터 람보르기니 우라칸까지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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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닝된 아우디 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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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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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 TTS

소형 모델로는 아우디 A1, BMW M2, 아우디 TTS, 포드 포커스RS 등이 눈에 띄었다. 사진속 차들은 차 뒷쪽에 이름이 온데 간데 없다. 이쪽 지역에서는 차명과 등급을 나타내는 레터링 부착을 선호하지 않는 문화가 있어 차급이 올라갈수록 레터링이 없는 차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좀 더 큰 차들로는 아우디 S6 아반트, RS7, SQ7 등이 목격됐다. SQ7은 유럽에 체류한 10일 동안 단 한 차례 목격했다. 포르쉐 911 GT3와 터보도 서너 대 등장했다. 알피나가 손본 3시리즈 투어링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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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 S6 아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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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 RS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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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 SQ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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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911 GT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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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911 터보 S 카브리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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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피나가 손본 BMW 3시리즈 투어링

슈퍼카급 차가 등장했음은 물론이다. 페라리는 없었고, 람보르기니 우라칸과 맥라렌 570S가 현장에 나타났다. 이들은 혹시 모를 문콕을 대비해 주차장 깊숙한 곳 구석진 자리에 차를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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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 우라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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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라렌 570S

 

세월을 느낄 수 있는 올드카

자동차 업계에 종사한다고 해서 늘 새차만 타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비록 늙고 기침을 자주 하더라도 자신의 손때가 묻은 오래된 애마를 타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가장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1983년 처음 등장했던 2세대 폭스바겐 골프였다. 현장에 있던 차가 정확히 몇년식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1987년에 생산됐다고 가정하면 올해로 31세다. 이곳, 저곳에 찌그러진 흔적이 있었지만 그 어떤 차보다 포스가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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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대 폭스바겐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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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대 폭스바겐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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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미니는 스틸휠을 끼운 채 등장했다

값비싼 올드카도 있었다. 오래된 포르쉐 911(964)도 모습을 드러냈다. 공랭식 수평대향 엔진 소리를 듣고 싶었으나 주인을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생산됐던 2세대 레인지로버도 있었다. 랜드로버가 BMW 식구로 편입되고 나서 처음 선보인 BMW표 레인지로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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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91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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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 레인지로버 2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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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W126)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W126)도 만날 수 있었다. W126 S클래스 역시 2세대로 1979년 데뷔했다. 자동차 역사상 처음으로 에어백이 기본사양이었던 차다. 측면 에어백을 최초 적용한 차이기도 하다. 

국산 브랜드는?

이쯤에서 국산 브랜드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모터쇼 주차장에 있던 국산차들은 대부분 현대기아차 모델이었다. 쏘나타나 그랜저는 유럽시장에 팔지 않기 때문에 싼타페, 투싼, 스포티지 같은 SUV가 주를 이뤘다. 기아 K5 왜건은 여럿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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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투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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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베라크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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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싼타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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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현대 싼타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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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스포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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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지와 함께 선 K5 왜건

르노삼성이 국내에서 SM6로 판매하는 르노 탈리스만은 수차례 목격됐다. 아무래도 프랑스와 인접한 곳이다 보니 프랑스차들이 많았다. 많은 국내 소비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간과 에스파스는 정말 많았다.

이 외에 쌍용 티볼리와 티볼리 에어, 렉스턴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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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 탈리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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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 탈리스만 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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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 메간 왜건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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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 메간 고성능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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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 에스파스

 

그 외 눈에 띄었던 차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나도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기사 쓰기는 정말 힘들다. 마지막으로 그 외 눈에 띄었던 차들을 살펴보자. 

A45 AMG는 위장 무늬를 입고 등장했다. 해군인지 공군인지 도통 알 수는 없지만, A45만이 이런 컬러를 소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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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벤츠 A45 AMG

1991년 처음 등장한 혼다 인테그라를 아주 좋은 상태로 타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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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인테그라

국내에서는 판매되지 않는 BMW 2시리즈 컨버터블. 소형 4인승 컨버터블로는 아주 매력적인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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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2시리즈 컨버터블

르노 클리오 RS도 등장했다. 클리오는 르노 삼성이 올해 중 국내 출시를 추진중인 소형 해치백이다. 고성능 버전인 RS가 국내에 들어올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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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 클리오RS

골프에는 5도어 해치백만 있는 게 아니다. 과거 3도어, 카브리올레, 왜건, 플러스 등, 다양한 파생모델이 있다. 고성능 버전인 골프R은 왜건으로도 생산됐다. 짐 많이 싣고 화끈하게 달리는 팔방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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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골프R 왜건

스마트 로드스터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2인승 경로드스터다. 국내에서 약 3천만 원 대에 병행수입업체를 통해 구입가능했다. 3기통 엔진이 나름 경쾌한 주행성능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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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로드스터

BMW 2시리즈는 국내에 액티브투어러와 쿠페 두 종류로만 들어왔다. 사실 유럽에서는 액티브투어러보다 엉덩이가 약간 더 큰 '그란투어러'도 팔리고 있다. 뒷자리가 액티브투어러보다 넓고 공간활용성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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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2시리즈 그란투어러

BMW, 벤츠, 아우디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렉서스는 유럽에서 그다지 자주 눈에 띄지는 않는다. 모터쇼 현장에는 렉서스 NX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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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서스 NX

이 외에도 재규어XF왜건, 오래된 피아트 세이첸토, 박스카 스즈끼 왜건R, 앵그리버드가 생각나는 알파로메오 등 다양한 자동차들이 주차장을 메우고 있었다. 

열흘간의 유럽 일정 동안 유럽인들이 주로 세단 보다는 해치백과 왜건을 선호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특정 브랜드가 시장을 독점하거나, 출시 10년이 채 안 된 차들이 도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경은 볼 수 없었다. 

적어도 스위스에서는 출시 30년이 지난 나이 많은 차와 어제 갓 출시된 어린차는 물론이요, 일본차, 한국차, 독일차 등 자동차의 국적과 종류가 각양각색이었다. 물론 자동차 문화도 깊이가 깊고, 다양했다. 자동차 구경만으로도 유럽에서 일주일이 금방 지나갔다.

유럽에서 해소했던 자동차에 대한 갈증을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시원하게 날려버릴 수 있기를. 

신동빈 everybody-comeon@carlab.co.kr